'디 워'가 정말 재밌을까?
OSEN 기자
발행 2007.08.05 10: 11

'디 워'가 '오 마이 갓?' [손남원의 영화까기] 한 영화전문지의 개봉영화 20자평에서 '디 워'는 완전히 찬밥이다. 어지간히 못만든 영화도 기본 예의상 별 2개를 받곤 하는데 '디 워'에는 달랑 별 한개를 준 외국인 전문가까지 있다. 그의 20자평은 'Oh My God'이니 우리말로 옮기면 '기가 차다'는 뜻일 게다. 다른 한국 평론가들의 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곱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극장가는 '디 워' 열풍이다. 지난 여름 봉준호 감독의 '괴물'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다른 점은 '괴물'의 경우 평단과 관객이 함께 열광했고 이번에는 양자가 완전히 따로 논다는 것. 심형래 감독의 오랜 팬들은 '디 워'에 대한 사소한 비판에도 기존 충무로 영화세력의 음해라며 돌팔매질을 하는 중이고, 급기야 이송희일 감독이 "'디 워'는 영화도 아냐"라고 히스테리칼 단발마를 외쳤다가 궁지에 몰렸다. 이송 감독의 '디 워' 비판은 비난에 가깝고 감정에 쏠렸다. '그 돈 갖고 왜 그 정도 영화밖에 못만드냐'는 힐난에다 '내가 그 돈 갖고 만들었으면 더 잘만들어' 투정이 겹쳐져 여론이 곱지 않다. 역시나, 지난 여름 김기덕 감독이 '괴물'의 흥행 질주를 보고 "한국 관객 수준"을 운운했던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디 워'가 과연 재밌을까. 영화 담당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건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당장 가족 단위로 '디 워'를 보고 왔다는 이웃집과 저녁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부모왈, "애들은 재밌다네요"다. 자신들은 "아이들이 좋아하니 편했고, 짧은 시간 볼만은 했다"는 평가다. 초등학교 5학년과 2학년 짜리 두 아들. "재밌냐?"는 질문에 "재밌다"고 바로 대답한다. 평소 쑥스러워서 옆집 아저씨에게 인사만 겨우 하던 애들이 주저함이 없다. "뭐가 재밌던?"이라는 다음 질문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냥 전부 다 재밌어요"다. 우문에 현답이다. 깊은 생각을 하면서 보라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단지 1시간 30여분을 극장 안에서 훌훌 기분좋게 날리다 오라는 제작 의도였다면, 이는 분명 성공작이다. 평소 동네 학부모들과 교분이 두터운 이웃의 증언 또 한가지. "애들 가진 집들은 이번 방학 때 '디 워' 안보고 넘어가기 힘들 것"이란다. 입소문이 개봉 불과 며칠만에 사방팔방으로 빠르게 퍼졌다는 증거다. 기자 시사회 때의 썰렁하고 냉소적 분위기가 떠올랐다. "스토리가 말도 안된다. 도대체 시나리오를 갖고 만든거야?" "이래서는 '용가리'보다 발전한게 없잖아" "심 감독은 또 잠수타야겠군" 등 비판 아닌 비난이 줄을 이었다. 기자의 생각도 그들과 별로 다를게 없었다. 분명히 좋아졌지만 기대에는 못미쳐서 아쉬움이 많았다. 기자 시사회의 분위기가 흥행과 직결되는 경우는 사실 50% 정도에 불과하다. '두사부일체' 시리즈를 보고 "조폭 쓰레기 영화"라며 흥분하고 악평을 썼던 기자들이 즐비했지만 영화는 대성공을 거둔 게 일례다. 영화 선택은 관객의 몫이고 흥행의 원동력은 결국 입소문이다. 주말인 4일 오후 용산 CGV에서 가족과 다시 '디 워'를 봤다. 영화에 대한 관객의 평가는 현장에서 듣는 게 정직하다. 오후 2시 35분 상영임에도 전날 오후 인터넷 예매는 벌써 동이 나서 극장으로 직접 가 표를 끊을 수 있었다. 토요일 오후라지만 용산 CGV는 평소보아 훨씬 많은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상영관이 가장 많은 '디 워'가 거의 전회 매진 행렬에 들어갔고 '화려한 휴가'와 '라따뚜이'도 표를 구하기 어려웠다. 마치 잔칫집에 온 듯한 분위기. 드디어 '디 워' 시작. 관객 몇명이 박수를 치지만 아직 호응은 없다. 영화는 시사회 때와 다름이 없다. 뚝뚝 끊기는 스토리에 부족한 나레티브. CG는 훌륭해도 앵글과 구도는 '우뢰매' 시리즈를 연상시키고 주연급 배우들의 연기력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이 부분은 기자 혼자만의 생각이다. 하이라이트 격투신이 끝나고 아리랑이 흘러나오면서 객석 분위기는 뭔가 숙연해졌다. 이어 심 감독의 '디 워' 제작 고난사가 자막으로 찍혀나오는 중에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앞다퉈 일어나는 게 보통 아니었던가. 큰 박수가 터지지는 않았지만 출구로 빠져나오는 동안 주위를 살펴보니 만족스런 표정이 다수다. 자신이 느낀걸 바로 표현하는 게 아이들의 특징이다. 화장실 앞에 몰려든 그들은 큰소리로 "재밌다. 굿이야" 칭찬 일색이다. 나이든 관객들의 얼굴에는 뿌듯함도 엿보인다. 심 감독의 에필로그 호소문은 극중 어느 장면보다 국내 성인 관객의 마음 한구석을 진하게 감동시킬만 했다. 심 감독은 자신만의 노하우로 '디 워'를 만들었고 여기서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지난 십수년동안 주류 영화계의 관심 밖인 아동용 SF 영화 제작에 전념해온 그로서는 '디 워' 장르가 가장 자신있는 분야고 잘할수 밖에 없는 일이다. 스토리를 희생해가며 러닝타임을 확 줄여서 어린 관객들의 집중력을 최대한 살린 것은 그의 결단이다. '한국영화의 힘으로 할리우드를 이기자'는 애국심 호소 전략도 제대로 먹혔다. 무엇보다 '디 워'가 재밌다는 관객 평가가 가장 중요한 영화의 흥행 요소일게다. mcgwire@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