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현상이다. 올 여름 극장가의 흥행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운데 스타는 사라졌다. 영화는 뜨는 데 스타는 지다니, 도대체 무슨 일일까. 심형래 감독의 화제작 '디 워'는 지난 주말 개봉 11일만에 500만명 관객을 돌파하며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다. 현재의 흥행 기세라면 한국영화 사상 5번째 1000만명 관객 동원이 곧 이뤄질 전망이다. 현대사의 아픈 상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디 워'의 흥행 속도에는 못미치지만 손익분기점 420만명 관객을 일찌감치 넘어섰다. 5~7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주도했던 국내 극장가 흥행의 주도권은 8월들어 두 편의 한국영화에게 완전히 넘어왔다. '디 워'와 '화려한 휴가'의 쌍끌이 장세로 상반기 지난해 대비 10% 정도의 관객 감소를 보였던 국내 영화 시장이 되살아났을 정도다. 지난해 비슷한 시기 '한반도'와 '괴물'의 원투펀치가 반복되는 상황이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돌풍을 일으킬 즈음에는 특급 스타 송강호는 물론이고 변희봉 박해일 배두나 등의 출연진도 동시에 인기 상한가를 기록했다. 신인 고아성은 괴물에게 잡혀가는 한강 노점상 송강호의 딸 역으로 열연을 펼쳐 화제를 모으는 등 영화와 배우가 함께 주가를 올렸다. 그러나 올해 흥행 장세의 특징으로는 스타 배우의 실종을 꼽을수 있다. 관객들에게 선택받은 '디 워'의 진짜 주연은 CG로 탄생한 전래의 용, 드래곤이다. 용이 되고픈 이무기, 악역 부라퀴조차 뜨거운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미국의 제이슨 베어와 아만다 브룩스, 한국의 현진과 반효진 그리고 민지환 등의 국내외 출연진은 사실상 용들을 돋보이게 하는 조 단역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300억원 제작비의 ‘디 워’가 출연진의 고액 개런티 논란으로 눈총을 사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거꾸로 출연진 비중 보다는 CG 등 볼거리에 올인한 탓에 개봉전부터 영화의 스토리가 약하다는 지적에 시달렸다. ‘디 워’에서 용을 뺀다면 스포트라이트는 감독 심형래에게 집중돼 있다. '디 워'를 만든 이에 대한 관심이 등장한 인물들 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할리우드의 기술력, CG를 따라잡기 위해 십수년 한 우물을 팠던 그에게 쏟아지는 네티즌의 찬사가 뜨겁다. 여기에는 2000년 한국영화 부흥기 이후, 기존 충무로 영화인들이 여론을 무시하고 외곩으로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에 나선데다 스타 출연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은데 대한 반감까지 더해진 분위기다. 충무로와 따로 떨어져 독자 노선을 걸으며 SF 판타지 영화로 세계 시장을 노리겠다는 심 감독이 반사 이익을 얻는 게 당연했다. '화려한 휴가'도 5.18이란 소재와 이슈의 강한 힘에 가려준 안성기 김상경 이요원 등 주연들을 향한 조명은 미약하다. 조연으로 나선 박철민이 특유의 감칠 맛 나는 연기로 새롭게 부각됐지만 영화의 성공도에 비해 배우들의 활약상은 두드러지지 못한 실정이다. 흥행몰이를 한 외화도 이와 비슷했다. 8월 극장가의 할리우드 복병인 애니메이션 '라따뚜이'는 당연히 스타로 내세울 배우가 없고, 지난달 외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던 '트랜스포머' 역시 배우보다 CG로 만들어진 로보트에 포인트를 뒀다. ‘한번 올라가면 절대 떨어질줄 모른다’는 스타 개런티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게 요즘 극장가의 관객 정서인 셈이다. mcgwir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