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이 정말 잘해줬어요. 팬들에게 죄송합니다”. 박경훈 감독(46)의 얼굴에선 아쉬움과 함께 평온함을 읽을 수 있었다. 부담스러웠던 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 한편으로는 홀가분함마저 느껴졌다. 한국 청소년대표팀이 끝내 17세 이하 FIFA 세계 청소년월드컵 16강 탈락의 쓴 잔을 들고 말았다. 페루(0-1)와 코스타리카(0-2)에 연이어 패한 게 결정적이었다. 24일 울산서 열렸던 토고와의 A조 최종전에서 2-1의 짜릿한 역전승을 거둬 ‘와일드카드’를 조심스레 기대했으나 운이 따르지 않았다. 탈락 여부가 아직 가려지지 않았던 지난 25일 오후 박 감독은 울산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취재진과 단독으로 만나 “2년여간 선수들과 함께한 시간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며 “그간 믿고 따라준 선수들이 너무 고맙고, 열심히 성원해준 팬들께도 감사하다”고 자신의 마지막 소감을 전했다.(결국 한국은 26일 탈락이 확정됐다.) 이날 박 감독은 “그동안 신앙이 없었는데 이제 다시 믿음을 갖고 싶다”면서 “언론이나 팬들 모두 격려와 질책을 함께 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2연패 뒤 토고를 꺾고, 첫 승을 거뒀다. 뒤늦게 시동이 걸려 아쉽다. 선수들이 너무 잘해줘서 고맙다. 경기를 시작할 때 선수들의 눈빛이 전혀 달랐다. 아직 어리다보니 분위기에 잘 휩쓸린다. 먼저 실점해도 역전골을 뽑아냈는데, 마지막 경기인만큼 유종의 미는 거두자는 각오가 대단했었다. ▲ 내용도 많이 달라졌다. 정신력도 한층 높아졌는데. 부상 선수들이 회복되며 다시금 정상적인 전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 비록 한국영 등 몇몇 선수들이 경고누적 등을 이유로 토고전을 뛰지 못했으나 복귀한 선수들로 잘 풀어갈 수 있었다. 정신력도 살아났다. 또한 윤석영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뛸 수 있는 선수들이 잘해줘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다. ▲ 김민우의 조기 탈락이 아쉬웠다. 김민우는 오른쪽 풀백으로 대회가 개막하기 전까지 우리 디펜스진의 핵심 요원이었다. 빠르고 좋은 테크닉을 지녀 이번 대회에서 뭔가 보여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른쪽 발목이 부러지는 바람에 나설 수 없었는데 그 바람에 포메이션 구축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오재석이 그 위치를 맡았지만 아무래도 주 포지션이 센터백이다보니 측면이 살아날 수 없었다. ▲ 학원 축구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은 것을 느꼈다. 다른 국가 선수들 상당수가 프리미어리그, 프리메라리가 등 세계적인 곳에서 축구를 배워왔다. 기량면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학원 축구다. 성적 부담도 대단하다. 지도자들이나 선수들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체력이나 조직력은 금세 키웠지만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 월드컵, 아시안컵 등 굵직한 다른 이벤트가 많아 청소년팀이 이슈가 되지 못했다. 축구협회의 지원은 충분했다. 여러 차례 해외로 전지훈련을 다녀왔고, 손발을 맞춰볼 시간이 많았다. 선수들도 오래전부터 선발해 호흡을 맞췄다. 부상이 아쉬웠다. 축구팬들에게는 고맙다는 생각뿐이다. 청소년팀이 성인팀에 비해 관심이 덜한 것은 당연하다. 유럽이나 남미든 어디나 똑같다. ▲ 정보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페루, 코스타리카, 토고에 대한 전력분석은 충분히 했다. 기술위원회도 많은 도움을 줬다. 그러나 청소년 축구는 분위기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 특히 코스타리카는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후반 중반까지 몰아치고도 종료 몇분을 넘기지 못해 무너졌다. 꼭 이겨야 한다는 심리적인 요인이 컸다. 공격적으로 나서고도 골을 넣지 못하자 선수들이 스스로 당황한 부분도 있다. ▲ 2년7개월간 선수들과 함께 했는데, 결과가 아쉽다. 모두 아들같은 선수들이다. ‘감독님’이란 호칭대신 ‘선생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코칭스태프나 선수들 모두 각별한 사이다. 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 스스로도 좋은 경험이었다. 선수들도 자신이 뭐가 부족한지, 어떻게 경기를 풀어가야할지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팬들도 질타와 격려를 함께 해줬으면 한다. yoshike3@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