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한화 외국인투수 세드릭 바워스(29)가 지난 28일 삼성과의 대전 홈경기에 선발 등판, 7이닝 3피안타 6사사구 5탈삼진으로 호투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시즌 10승째. 세드릭 개인에게는 매우 의미가 큰 승리였다. 선수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한 시즌 개인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기 때문. 하지만 세드릭 못지않게 한화에도 그 의미가 남다른 승리였다. 10승은 세드릭에게도 개인 최다승이지만 한화 구단 역대 외국인투수 최다승이기도 했다. ▲ 한화의 외국인투수 잔혹사 한화는 외국인선수 덕을 본 팀이다. 외국인선수 제도가 도입된 첫 해인 1998년 마이크 부시와 조엘 치멜리스는 당초 기대와 달리 ‘공갈포’ 이미지를 남긴 채 떠났지만 이듬해인 1999년에는 제이 데이비스라는 호타준족과 다니엘 로마이어라는 거포가 장종훈과 함께 막강한 중심타선을 형성하며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위업을 주도했다. 특히 데이비스는 2003년을 제외한 지난해까지 7년간 한화에서 근속하며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외국인타자로 남았다. 데이비스의 통산 타율(0.313)은 장효조(0.331)-양준혁(0.319) 다음으로 높다. 전통적으로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탓이었는지 몰라도 한화는 유독 외국인투수와 인연이 없었다. 한화가 외국인투수를 데려온 것은 외국인선수 제도가 ‘3명 보유-2명 출전’으로 늘어난 2001년. 데이비스를 남겨둔 채 투수력 강화를 명목으로 데이비드 에반스와 호세 누네스를 영입했다. 그러나 한화는 그해에만 외국인투수를 무려 4번이나 교체하는 악운을 겪었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데려온 브랜든 리스가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키며 7승7패 방어율 3.16이라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는 동안 6피안타 1볼넷으로 7실점하며 무기력하게 조기강판돼 결국 재계약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리스의 7승은 한화의 역대 외국인투수 중 가장 많은 승수였다. 물론 2002~2003년, 마무리투수로 활약한 파나마 출신 레닌 피코타가 2년간 9승 12패 29세이브 방어율 3.63을 기록했으나 9회만 되면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조마조마한 피칭으로 애간장을 태웠다. 마무리 투수의 방어율이 3점대 중반을 넘어섰다는 것 자체가 신용불량이나 다름없었다. 2002년 호세 파라, 2003년 에밀리아노 기론 등 전 소속팀에서 핵심투수로 활약한 선수들도 한화에서는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2003년 피코타와 기론을 끝으로 한화의 외국인투수 인연은 잠시 끊겼다. 3년간 한화를 거쳐간 10명의 외국인투수는 도합 28승 29패 41세이브 방어율 5.63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한화팬들이 외국인투수에게 느끼는 체감탁도와 상실감은 더욱 컸다. ▲ 세드릭의 존재 이유 올 시즌 한화는 4년 만에 외국인투수를 영입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첫째는 한화의 선발진은 세드릭이 없더라도 충분히 위력적이었다는 점, 둘째는 세드릭이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 소속으로 2군에서 2경기를 뛴 것이 전부라는 점 때문이었다. 따라서 한화의 세드릭 영입은 물이 가득채워진 유리컵에 물을 더 따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기우였다. 지난해 포스트시즌부터 몸에 이상 조짐을 보인 송진우가 스프링캠프 막판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안영명이 취약한 불펜으로 옮기면서 세드릭의 존재이유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6월에는 문동환마저 허리디스크 및 고관절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해 세드릭의 존재와 가치가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세드릭은 올 시즌 23경기에서 136⅓이닝을 던져 10승 11패 방어율 4.03을 기록하고 있다. 한화의 외국인투수라는 것을 감안해도 크게 돋보이지 않는 성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 한 차례도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으며 경기당 평균 5.93이닝을 소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퀄리티 스타트를 12차례나 해냈으며 5회 이전 조기 강판은 2차례에 불과하다. 전체에서 가장 많은 볼넷(91개)은 아무 이유없이 들쭉날쭉한 세드릭의 제구력을 잘 나타내지만 9이닝당 탈삼진 7.92개는 세드릭의 구위가 얼마나 좋은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세드릭의 9이닝당 탈삼진은 풀타임 선발투수 중 가장 많다. 물론 탈삼진과 피칭은 절대적인 연결고리는 아니지만, 부분적인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물론 올 시즌 달라진 스트라이크존에 적합한 커브라는 위닝샷을 무시할 수 없지만 기본적인 스터프가 받쳐주지 않으면 많은 탈삼진을 잡아낼 수 없다는 것을 고려할 때 세드릭의 구위는 훌륭한 편이다. 세드릭은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탈삼진을 잡는 데 남다른 능력을 발휘했다. 마이너리그에서 8년간 기록한 9이닝당 탈삼진은 무려 8.99개. 2005년 일본 프로야구 요코하마에서도 9이닝당 탈삼진이 7.67개에 달했다.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 1군 경기 기록이 없는 것도 어깨 부상이 아니라 어머니 병환으로 미국과 일본을 오간 탓이라는 항변도 항변이 아니라 사실로 판명났다. 물론 올 시즌 활약 덕분이다. 세드릭은 올 시즌을 앞두고 26차례 선발 등판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며 등번호 26번을 달았다. 앞으로 3번만 더 선발 등판하면 세드릭의 목표는 실현된다. 처음 한화에 입단할 때만 하더라도 '잘못될 수 있는 것은 항상 잘못된다'는 머피의 법칙처럼 불안해 보였던 흑인 투수가 이제는 한화에 없어서는 안 될 진주로 거듭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