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롯데 팬들에게 손인호(32)라는 이름 석 자는 애증의 대상이다. 경남고-고려대를 졸업하고 1998년 2차 1번으로 롯데 유니폼을 입을 때만 하더라도 롯데가 그에게 거는 기대는 컸다. 계약금 1억 8000만 원은 당시 롯데 기준으로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게다가 부산고 시절부터 부산을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했던 만큼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해주길 바라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끝내 손인호는 부산과 롯데의 기대를 외면한 채 서울로 상경해야 했다. ▲ 곁가지 손인호 지난달 29일 손인호는 박석진과 함께 최길성 최만호와 2대2 트레이드로 LG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LG의 트레이드 표적은 박석진이었다. 김재박 감독은 지난해 LG 부임 때부터 베테랑 사이드암 박석진에게 추파를 보냈고 시즌 중반에 이르러 불펜이 크게 약화되자 셋업맨의 필요성이 대두, 기어이 박석진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박석진과 함께 LG로 옮겨진 손인호는 곁가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곁가지가 가늘게나마 옆으로 뻗어 나온 것처럼 손인호도 나름 사연이 많은 선수다. 1998년 입단 첫 해 손인호는 주로 대타로 출장하며 타율 2할7푼8리·4홈런·23타점으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선구안에서 문제점을 드러냈지만 타구에 힘을 싣는 파워 배팅이 돋보였다. 장타율 4할4리는 데뷔 첫 해 대타로 출장하며 쌓아올린 신인타자의 기록치고는 훌륭한 편이었다. 그러나 손인호의 4할대 장타율은 1998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며 이후에는 평범한 중거리 타자가 되고 말았다. 1998시즌 종료 후 투수로 변신하다 시즌 개막과 함께 다시 타자로 전환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2000시즌을 마치고 상무에 입대하며 군복무를 해결한 손인호는 2003년부터 주전으로 등용되기 시작했다. 손인호로서는 30줄에 접어들기 전에 입지를 마련해야했고 장타자가 아니라 스프레이 히터라도 되는 것이 우선이었다. 공을 맞히는 재주가 좋기로 소문났던 손인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고 실제로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기 시작했다. 특히 2004년에는 122경기에서 타율 2할8푼4리·5홈런·42타점으로 활약했다. 볼넷(62개)이 삼진(75개)에 육박할 정도로 좋아진 선구안도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2005년, 2할4푼1리라는 초라한 타율로 롯데를 당황케 했다. 손인호의 타격은 3할을 꾸준히 마크할 정도는 아니었을지언정 적어도 2할5푼 밑으로 떨어지는 형편없는 수준은 더더욱 아니었다. 주장으로 선임된 지난해에는 데뷔 후 최악의 타율(0.216)을 기록하며 ‘롯데 주장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데뷔할 때부터 손인호의 이름에 자랑스러운 명찰처럼 따라붙었던 유망주라는 수식어도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손인호의 나이는 30줄을 넘었고 젊은 선수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 '손인호 타임' 손인호는 지난해 9월 16일 한화와의 대전 원정경기에서 생애 첫 연타석 홈런을 때려내는 기염을 토했다. 2회 동점홈런, 4회 역전홈런을 작렬시키는 영양가 만점의 홈런포를 연속해 터뜨렸다. ‘손인호 타임’이었다. 그러나 이후 롯데 팬들에게 ‘손인호 타임’은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 손인호 타임은 소위 말하는 영양가 없는 안타와 타점이 다수였다. 하지만 LG 팬들에게 손인호 타임은 즐거움이 되어가고 있다. LG로 트레이드된 후 김재박 감독의 믿음 아래 6번 타자 겸 우익수로 중용되고 있는 손인호는 지난 28, 29일 잠실구장에서 ‘친정팀’ 롯데를 맞이했다. 28일 경기에서 손인호는 연장 11회말 극적인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내며 팀 승리의 주역이 됐다. 그리고 29일 경기에서도 1회초 무사 3루에서 이인구의 플라이를 잡아내자마자 총알 같은 홈 송구로 3루 주자 정수근을 아웃시키는 강견을 과시했다. 외야수들의 빨랫줄 같은 홈 송구가 드물어진 최근 프로야구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진귀한 장면이었다. 타격에서도 손인호는 2타수 1안타 1타점 1볼넷으로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다. LG 이적 후 12경기에서 손인호는 25타수 7안타, 타율 2할8푼·5타점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볼넷이 4개나 있지만 삼진은 하나도 없다. 7안타 중 장타는 2루타 하나뿐일 정도로 장타력은 감소됐지만 6번 타자로서 중심타선과 하위타선의 연결고리로서 나쁘지 않은 모습이다. 특히 타격만큼이나 돋보이는 수비가 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한때나마 투수로 전향한 손인호의 어깨는 강견으로 유명하다. 이른바 ‘유리어깨’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LG 외야에서 손인호의 강견은 전체적인 수비의 안정감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게다가 외야 수비가 약한 발데스를 지명타자로 돌림으로써 팀 전체의 짜임새를 더해주는 나비효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손인호의 활약과 함께 LG의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손인호 본인에게나 LG 팀에나 모두 긍정적인 현상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손인호는 포스트시즌의 사나이다. 1999~2000년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한국시리즈 등 포스트시즌 12경기에서 29타수 11안타, 타율 3할7푼9리·1홈런·7타점으로 맹활약한 바 있다. 특히 페넌트레이스에서는 무홈런에 그쳤던 1999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삼성 임창용으로부터 뽑아낸 동점 3점 홈런은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LG팬들은 5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해 가을잔치에서 손인호 타임이 실현되길 바라고 있다. LG에서 비로소 꽃을 피우고 있는 손인호 타임의 재발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