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괴물 에이스'로 불리는 이유
OSEN 기자
발행 2007.09.01 08: 46

[OSEN=이상학 객원기자] 마운드의 투수는 외롭다. 타자들이 타석마다 그들만의 응원가를 들으며 팬들의 기를 받는 것과 대조적으로 투수는 결과를 보여야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위치다. 하지만 지난 8월 31일 잠실구장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3루측 관중들은 한 투수를 향해 이례적으로 환호하고 박수를 보낸 반면 1루측 관중들은 타자들을 향해 응원할 힘을 잃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투구 하나하나에 1·3루 관중들의 희비도 엇갈렸다. 전광판에 시속 154km라는 숫자가 떴을 때에는 양쪽에서 놀라움과 좌절감이 교차했다. 비단 타자뿐만 아니라 경기장 전체를 지배하고 압도하는 투수, 그가 바로 한화 류현진(20)이었다. ▲ 에이스의 힘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한화와 LG의 잠실 3연전은 사실상 4위 자리를 결정짓는 ‘준준플레이오프’다. LG가 롯데와의 주중 3연전을 싹쓸이하는 등 최근 5연승으로 기세를 바짝 올린 반면 한화는 극심한 방망이 침묵으로 이전 10경기에서 5승 5패라는 반타작 승률을 올리는 데 그치고 있었다. 하지만 한화는 8월 29, 30일 삼성과의 대전 홈경기가 연이틀 우천으로 연기되며 LG와의 3연전에서 총력전을 쏟아 부을 여력을 비축하는 데 성공했다. 한화의 선발 로테이션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면 31일 선발은 정민철이어야 했다. 하지만 2경기 연속 우천 연기로 말미암아 김인식 한화 감독은 류현진을 3연전 첫 머리에 내세웠다. 에이스를 내세움으로써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의도였다. 한화 관계자들은 3연전에서 2승1패를 최선의 목표로 삼았다. LG에서도 에이스 박명환이 2일 선발 등판을 앞두고 있는 것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에이스라는 존재는 팀의 전체적인 계획과 목표의 설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31일 경기는 한화 입장에서 반드시 잡아야 할 한판이었다. 5위 LG에 불과 0.5경기로 앞서고 있던 4위 한화는 이 경기를 내줄 경우 순위가 뒤바뀔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으나 최근 바짝 독기가 오른 LG의 기세를 누르기란 결코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고 회를 거듭할수록 한화는 안도의 한숨을, LG는 답답한 한숨을 내쉬기 바빴다. 독이 바짝 올랐던 LG의 방망이도 맥없이 허공을 가르거나 아예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류현진이 괴물처럼 LG 타선의 독기를 집어 삼켜버린 것이었다. 이날 9이닝 동안 124개의 공을 던지며 7피안타 8탈삼진 2실점으로 LG 타선을 완벽하게 틀어막은 류현진은 시즌 13승을 완투승으로 장식했다. 시즌 6번째 완투경기는 덤. 프로데뷔 후 최고인 시속 154km를 찍으며 잡아낸 탈삼진 8개는 과연 닥터 K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돋보인 것은 9이닝 동안 볼넷과 몸에 맞는 볼이 하나도 없는 무사사구 완투승을 했다는 점이었다. LG 선발 봉중근이 2⅓이닝 동안 5개의 볼넷을 남발한 것과 대조되는 대목. 게다가 이날 류현진이 기록한 8개 탈삼진 중 무려 5개가 스탠딩 삼진이었다. LG 타자들이 도저히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몸쪽·바깥쪽 꽉 찬 직구의 코너워크는 모두가 무릎을 탁 칠 정도로 완벽했다. 진정한 에이스의 힘이었다. ▲ 진화한 괴물 4월 6일 SK와의 대전 개막전에서 1회초 ‘천적’ 이재원에게 올 시즌 프로야구 1호 홈런의 희생양이 될 때만 하더라도 류현진에게는 곧 2년차 징크스의 먹구름이 덮칠 것만 같았다. 지난 25년간 프로야구에 배출된 13명의 신인왕 투수들은 하나 같이 2년차 성적이 폭락했다. 평균 승수가 5.42승이 떨어졌으며 방어율은 평균 2.04씩 치솟았다. 류현진 못지않은 초특급 신인투수로 명성을 떨친 김건우·박정현·염종석·김수경으로만 한정지어도 승수가 5.3승씩 하락했으며 방어율은 평균 0.94씩 상승했다. 하지만 류현진만큼은 달랐다. 올 시즌 25경기에 선발 등판, 182이닝을 소화하며 13승6패 방어율 2.82 WHIP 1.23 피안타율 2할5푼2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탈삼진은 158개로 전체 1위. 지난해 방어율(2.23)·WHIP(1.05)·피안타율(0.221)보다 올 시즌 성적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만약 올 시즌 류현진의 성적이 소폭이나마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나머지 7개 구단 코칭스태프와 타자들은 심한 자괴감에 빠졌을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류현진의 성적은 인간적이라기보다 역시 괴물에 가깝다. 후반기 한때 류현진은 피로 누적으로 잠깐 슬럼프에 빠졌다. 그때 지적된 것이 구위가 지난해만 못하다는 평이었다. 물론 올 시즌 내내 류현진의 기준으로 조금이라도 부진할 때마다 나온 지적이 바로 구위 하락이었다. 특히 체인지업에 맛을 들이면서 힘으로 승부하는 파워피칭을 잃은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류현진은 최근 5경기에서 40이닝을 던져 3차례 완투 포함 3승 방어율 1.13 WHIP 1.03 피안타율 2할1푼이라는 ‘괴물모드’로 돌아왔다. 직구 구사 비율이 높아지자 볼 스피드도 상승하기 시작했다. 피로 누적으로 짧은 슬럼프를 겪은 투수가 오히려 더 많은 투구이닝과 파워 피칭으로 슬럼프를 극복한 것은 과연 괴물다운 모습들이다. 류현진은 현재 페이스를 이어간다면 데뷔 2년 연속 200이닝 돌파가 유력하다. 한 경기를 완벽하게 책임질 수 있는 완투형 선발투수가 점점 소멸하는 가운데 류현진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류현진이 13승을 완투승으로 장식한 같은 날에 사상 3번째 4년 연속 200이닝 돌파라는 대기록을 작성한 두산의 다니엘 리오스(두산)도 빼놓을 수 없지만 ‘슈퍼맨’ 외국인선수와 ‘2년차’ 고졸 신예의 기대치라는 것을 고려할 때 류현진의 값어치는 더욱 빛난다. 오히려 올 시즌 류현진의 경우에는 지난해 활약 자체가 너무 대단했던 바람에 제대로 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정도. 물론 모두 괴물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