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좋은 투수와 그렇지 않은 투수를 구분 짓는 잣대로는 승수를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올 시즌 3.20이라는 수준급 방어율에도 불구하고 7승 15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는 KIA 윤석민의 사례에서 나타나듯 승수는 투수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될 수 없다. 투수의 실력뿐만 아니라 타자들과 구원투수들의 도움과 운이 따라야 승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지난해에는 두산 다니엘 리오스(35)가 딱 그 경우였다. 2점대 방어율(2.90)을 기록했지만, 12승 14패로 패수가 승수보다 많았다. 하지만 두산 김경문 감독과 팬들은 리오스를 최고의 에이스로 추켜세웠다. 무려 233이닝이라는 투구이닝 때문이었다. 지난해 불운을 뒤로 하고 올 시즌 1점대 방어율과 함께 20승을 향해 도전하고 있는 리오스는 명실상부한 최고투수다. 8월 31일 롯데와의 사직 원정경기에서 시즌 28번째로 선발 등판한 리오스는 6⅔이닝을 3실점(2자책)으로 막으며 시즌 17승을 챙겼다. 물론 올 시즌 리그 최다승이다. 방어율도 1점대(1.84)를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17승과 1점대 방어율만큼이나 빛난 것은 다름 아닌 200이닝 돌파였다. 이날 6⅔이닝을 소화한 리오스는 200⅓이닝을 마크, 올 시즌 가장 먼저 200이닝 고지를 밟았다. 리오스는 KIA 소속으로 활약한 2004년 222⅔이닝을 시작으로 2005년 205⅓이닝 그리고 지난해 233이닝을 던졌다. 올 시즌에도 1일 현재 200⅓이닝을 마크함으로써 4년 연속 200이닝을 넘어섰다. 4년 연속 200이닝을 돌파한 것은 리오스가 역대 3번째. ‘전설’ 최동원 한화 2군 감독이 롯데에서 현역으로 활약했던 1983년부터 1987년까지 5년 연속 200이닝 이상을 기록했고 ‘마지막 20승 투수’ 정민태(현대)가 1996년을 시작으로 2000년까지 5년 연속 200이닝을 돌파한 바 있다. 한 시즌 200이닝은 선발투수의 최고 미덕이다. 훌륭한 기량과 함께 부상 없이 한 시즌 동안 선발 로테이션을 지킬 수 있는 꾸준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 시즌 200이닝은 나올 수 없다. 더욱이 미국이나 일본보다 적은 126경기를 치르는 국내 프로야구에서 200이닝은 더욱 더 희소가치가 높다. 게다가 불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현대야구에서 선발투수가 최대한 많은 이닝을 소화함으로써 불펜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은 팀 전력에 큰 플러스알파로 작용한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을지 몰라도 가장 내실 있는 타이틀이 바로 최다이닝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지난 25년간 한 시즌 200이닝을 기록한 선수는 모두 44명. 그러나 마운드 분업화가 고착된 2000년 이후에는 단 10명만이 한 시즌 200이닝을 넘었다. 최근 5년으로 좁히면 불과 3명밖에 되지 않는다. 200이닝 돌파가 황폐하다 못해 거의 불모지가 되어버린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 같은 국내 프로야구 풍토에서도 리오스는 4년 연속 200이닝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200이닝 불모지에 오롯하게 피어난 꽃 한 송이가 바로 리오스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