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홈런 가뭄-거포 부재 '현재진행형'
OSEN 기자
발행 2007.09.02 10: 10

[OSEN=이상학 객원기자] 홈런은 야구의 꽃이다. ‘딱’ 하는 파열음과 함께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팬들은 타구가 쭉쭉 뻗어나가는 홈런을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야구장을 찾으며, 시간을 쪼개 야구 중계를 본다. 홈런의 마력은 야구팬들에게 마약과도 같아 보고 또 봐도 지겹지가 않다. 그러나 올 시즌 프로야구는 여전히 홈런 가뭄이다. 전국적인 흥행몰이에 성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홈런은 그 축제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 여전한 투고타저 지난해 프로야구는 극심한 투고타저 현상을 보였다. 2점대 방어율 투수가 무려 9명이었던 반면 3할대 타자는 불과 5명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올 시즌 2점대 방어율 투수가 3명으로 줄고 3할대 타자가 10명으로 늘어나며 어느 정도 투고타저 현상이 완화된 모습이다. 방어율이 지난해보다 0.31(3.58→3.89) 상승했고 타율은 8리(0.255→0.263)가 올랐다. 경기당 평균 득점도 0.32점(3.95→4.27)이나 올랐다. 전체적인 기록으로 볼 때는 분명 지난해보다 투고타저 현상이 완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2005년과 비교할 때는 그다지 달라진 인상을 받기 어렵다. 본격적인 투고타저 현상이 시작된 2005년 팀 방어율(4.21)·타율(0.263)·득점(4.59)은 올 시즌과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올 시즌을 앞두고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국제화와 함께 투고타저 완화를 위해 스트라이크존의 좌우 폭을 줄이는 대신 상하 폭을 넓히고 마운드를 3인치 낮췄으며 공인구를 조금 더 반발력이 센 것으로 바꾸며 타자에 힘을 실어줬다. 이 같은 노력이 있었음에도 드러난 결과에 따르면 올 시즌도 투고타저의 연장선상이라 할 만하다. 결정적으로 올 시즌 경기당 평균 홈런은 1.37개에 불과하다. 지난해(1.31개)보다 소폭 상승했으나 최근 10년을 통틀어 지난해 다음으로 낮은 기록이다. 한 시즌 30홈런도 멀어 보인다. 홈런랭킹 공동 선두에 올라있는 심정수(삼성)와 브룸바(현대)는 나란히 25홈런을 기록하고 있지만, 현재 페이스대로라면 각각 29.7개, 29.4개를 때려내는 데 그친다. 전반기 전체적인 홈런 페이스는 내심 40홈런에 대한 기대를 높였으나 시즌을 거듭할수록 홈런 레이서들이 모두 힘이 부치는 기색이 역력하다. ▲ 이제 40홈런은 꿈인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사상 첫 40홈런 고지를 밟은 주인공은 장종훈 한화 2군 코치다. 프로야구 출범 11년째였던 1992년 41홈런을 기록하며 마의 40홈런 고지를 가장 먼저 넘었다. 이후 1998년 타이론 우즈가 42홈런으로 장종훈의 홈런신기록을 갈아치웠고 사상 최고의 타고투저 시즌으로 기억될 1999년에는 이승엽이 40홈런을 넘어 54홈런으로 다시 한 번 홈런 신기록을 경신함과 동시에 다니엘 로마이어(45개), 트레이시 샌더스(40개), 찰스 스미스(40개) 등 외국인 거포들이 함께 40홈런을 넘었다. 이후 2000년 박경완(40개), 2002년 이승엽(47개)·심정수(46개)·호세 페르난데스(45개), 2003년 이승엽(56개)·심정수(53개)가 40홈런 더 나아가 50홈런을 점령했다. 40홈런의 추이에서 우선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마운드 높이다. 통상 마운드 높이가 낮아지면 투수가 불리하고 타자가 유리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1982년 출범할 때 15인치에서 시작한 한국프로야구의 마운드 높이는 1990년 10인치로 낮아졌으며 1999년 후반부터 13인치로 올라갔다. 1991년 장종훈과 1998년 우즈의 기록 그리고 1999년 사상 첫 4명-40홈런 돌파는 마운드를 낮춘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다. 물론 2000년부터 2003년까지는 40홈런 명맥이 끊이지 않았지만 이 당시에는 스트라이크존이 넓지는 않았다. 올 시즌 40홈런은 커녕 30홈런의 꿈마저 좌초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스트라이크존의 영향이 가장 클지도 모른다. 몇몇 감독들은 스트라이크존이 지난해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시즌 초반에만 하더라도 스트라이크존이 엄격하게 적용됐으나 시즌을 거듭할수록 완화되고 있다는 것. 최근에는 좌우 스트라이크존이 도로 회귀된 모습이다.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다. 심판들의 스트라이크존은 엑셀 프로그램처럼 한 치의 오차 없이 그래프를 그리며 계산을 수행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달라진 스트라이크존이 정착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과도기에서 타자들이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 진정한 거포란? 마운드 높이와 스트라이크존과 같은 외부 요인을 차치한다면 궁극적으로 문제는 거포 부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승엽이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한 이후 한국 프로야구는 거포다운 거포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2003년 이승엽과 역사적인 홈런 레이스를 벌이며 사상 최고의 페이스메이커로 기억될 심정수는 이후 잦은 부상으로 오랜 기간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강력한 ‘포스트 이승엽’으로 주목받은 김태균(한화)의 경우에는 전형적인 거포라기보다는 중장거리 타자가 더 어울리기 시작했다. 김태균과 라이벌이자 절친한 친구인 이대호(롯데)도 타격 스타일상 거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국 프로야구의 역대 거포로는 ‘원년 홈런왕’ 김봉연을 비롯해 이만수·김성한·김성래·장종훈·이승엽·박경완·마해영·심정수 등을 꼽을 수 있다. 1982년부터 2003년까지는 긴 공백기 없이 거포들이 프로야구를 이끌었다. 그러나 이승엽이 떠난 2004년부터 시작된 거포 부재는 생각보다 오래가고 있다. 물론 거포와 중장거리 타자를 단순히 홈런과 타율만으로 구분할 수는 없다. 이승엽도 국내에서 활약한 9년간 통산 타율이 3할5리로 높다. 중요한 것은 역시 홈런 생산 능력이다. 진정한 거포라면 슬럼프가 짧아야 하며 투수·구장·상황 등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홈런포를 터뜨릴 수 있는 힘과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프로야구에 그런 거포는 없다. 올 시즌 기대를 모았던 심정수브룸바이대호 등은 모두 한 차례 이상씩 부상으로 오랜 슬럼프를 겪었으며 김태균은 슬럼프가 너무 잦은 편이다. 물론 상대투수들의 집중 견제라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장종훈에게는 이정훈 이강돈 강정길 등이 곁에 있었으며 이승엽에게는 양준혁 김기태 마해영이라는 동료들이 있었다. 하지만 장종훈과 이승엽이라고 해서 집중 견제를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결국 진정한 거포라면 악재를 딛고 일어설 힘이 있어야 한다. 팬들도 그런 거포를 원한다. 비록 올 시즌 기대했던 40홈런 거포는 물거품 될 것이 확실시되지만 팬들은 변함없이 40홈런 거포를 기다릴 것이다. 기존의 선수든, 새로 등장할 선수든 그것은 상관없다. 40홈런을 터뜨릴 진정한 거포 탄생이라는 기약없는 기다림조차 팬들에게는 홈런의 마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브룸바-이대호-심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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