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지난해 겨울 대대적인 팀 개편 작업을 단행한 LG에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병규였다. 10년간 간판타자로 활약한 이병규를 일본 프로야구 ‘자매구단’ 주니치에 빼앗기며 전력에 차질을 빚고 만 것이다. 하지만 떠나간 임을 그저 넋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는 노릇. LG는 이병규의 공백을 메워줄 새로운 간판타자를 찾았다. LG의 레이더망은 멀리 갈 필요 없었다. 이병규와 함께 지난 5년간 팀 타선을 이끈 ‘쿨가이’ 박용택(28)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박용택의 가능성 1998년 LG로부터 고졸 우선지명을 받고 고려대를 거쳐 2002년 계약금 3억 원에 입단한 박용택은 일찌감치 LG를 이끌어 나갈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았다. 고려대 시절 태극마크를 달며 특급타자로 명성을 드날린 박용택은 준족인 데다 수준급 장타력을 갖춰 호타준족의 새로운 대명사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상품 가치를 올려줄 수려한 외모는 덤이었다. 박용택은 2002년 데뷔 첫 해부터 타율 2할8푼8리·9홈런·55타점·20도루를 기록하며 팀 내 타자 고과 1위를 차지,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특히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MVP에 오르며 큰 경기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였다. 이듬해 타율 2할5푼7리에 그치며 2년차 징크스에 시달린 박용택이었지만 2004년에는 타율 3할·16홈런·58타점으로 중심타자 역할을 해냈다. 2005년에는 타율이 2할8푼으로 다소 하락했으나 15홈런·71타점으로 결정력을 더욱 높였으며, 43도루로 최초의 4번 타자 도루왕이라는 진기록도 남겼다. LG가 창단 후 첫 최하위라는 수모를 당한 지난해에도 박용택은 타율 2할9푼4리·16홈런·64타점·25도루로 고군분투했다. 매년 볼넷이 늘어나고 삼진이 줄어드는 것도 긍정적인 신호였다. 무엇보다 타선이 딱히 고정되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기용되는 타순마다 그에 맞는 활약으로 코칭스태프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박용택의 가능성은 한마디로 호타준족이다. 3할 타율을 기록한 것은 2004년 딱 한 시즌이었지만 2할8푼3리라는 통산 타율은 비교적 준수한 수준이었으며 첫 해를 제외하고 4년 연속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며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내는 펀치력은 높이 사야 마땅했다. 게다가 루상에 출루한 후 상대 배터리를 괴롭히는 베이스러닝은 웬만한 쌕쌕이들을 능가했다. 지난해까지 박용택의 통산 도루성공률은 무려 8할1푼9리였다. 다만 어느 한 쪽으로 확실하게 핀트를 잡지 못한 것이 박용택에게는 딜레마였다. 확실한 콘택트로 승부하느냐 아니면 확실한 거포로 승부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오랜 시간 갈팡질팡한 것이었다. 매년 조금씩 수정한 타격 폼도 이 때문이었다. ▲ 현실과 목표의 괴리감 올해로 데뷔 6년차가 된 박용택은 가능성을 인정받았으나 실질적으로 보여지는 성과는 가능성에 비례하지 않았다. 뭔가 변화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고 그때가 바로 2007년이었다. 간판 이병규가 떠나고 코칭스태프가 대대적으로 개편되며 제2의 창단을 선언한 LG에서 박용택은 적어도 타선에서 만큼은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선수로 거듭났다. 현대 시절부터 박용택을 주목한 김용달 타격코치는 박용택에게 타율 3할3푼3리·30홈런·30도루를 목표로 삼을 것을 주문했다. 물론 현실과 목표는 어느 정도 괴리감이 있기 마련이지만 박용택으로서는 새로운 간판으로서 목표를 크게 잡아야 할 입장이었다. 2007년은 박용택에게 터닝 포인트다. 겨우내 김용달 타격코치의 지도아래 타격 폼을 극단적인 크로스 스탠스에서 스퀘어 스탠스로 바꾸고 배팅 포인트에 변화를 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매년 다리를 들고 스윙 궤적 등에 변화를 가했지만 전체적인 스탠스에 변화를 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타격 폼을 바꾸지 않고도 매년 타율 2할8푼·15홈런·60타점을 기본적으로 해낼 수 있는 좌타자에게 변화를 종용하는 것은 억지일 수도 있었으나 그것이 박용택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LG 팬들은 간판이 되어야 할 박용택의 발전 가능성이 많이 남아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팀 타선의 중심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시즌을 시작한 박용택의 4월은 반신반의였다. 타율 2할6푼에 그쳤으나 4홈런·11타점에 4할5푼2리라는 장타율은 중심타자로서 준수한 수준이었다. 5월에는 2홈런·13타점에 타율 2할9푼7리로 타격감각을 점차 회복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6월 타율이 2할5푼8리로 곤두박질쳤고 장타율도 3할7푼6리에 그쳤다. 7~8월, 두 달간 타율 2할8푼7리에 3홈런·15타점을 기록했으나 박용택이라는 이름값과 기대치를 감안하면 그저 그런 성적이었다. 결정적으로 승부처에서 한 방을 해주는 해결사적 이미지가 박용택에게는 없었다. ▲ 한계인가 성장통인가 박용택은 꾸준하다. 한화 이범호(540경기) 다음으로 가장 긴 연속경기 출장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가 바로 362경기 연속으로 출장한 박용택이다. 지난 2년간 한 경기도 빠짐없이 전경기에 출장했고 올 시즌에도 110경기 모두 출장했다. 그러나 꾸준한 연속 출장만큼이나 전체적인 기록도 꾸준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물론 퇴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일지 모르나 박용택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올 시즌 타율 2할7푼7리·11홈런·55타점·20도루라는 성적은 박용택이기에 불만족스러운 성적이다. LG 타자들이 대부분 '몬스터 시즌'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박용택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진다. LG 팬들이 박용택에게 아쉬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해결사적 능력일 것이다. 올 시즌 박용택의 결승타는 5개밖에 되지 않는다. 두산 김동주도 결승타가 6개뿐이지만 존재감이라는 측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두산에서 최준석·안경현·홍성흔 등이 김동주라는 4번 타자의 '우산 효과'를 보고 있는 반면 LG 타자들은 박용택의 우산 효과를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다. 올 시즌 LG 타선이 상대적으로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박용택의 책임이 크다. 리더의 자리란 게 그렇다. 리더가 아닌 선수는 자신만 못하면 그만이지만 리더인 선수는 자신이 못하면 팀이 흔들리게 된다. 올 시즌 박용택은 리더의 고충을 느끼고 있다. 박용택은 올 시즌 유독 경기 막판 찬스에서 무기력하게 경기를 끝내는 경우가 잦았다. 지난 8월18일 삼성과의 잠실 홈경기에서는 1-2로 뒤진 9회말 1사 1·3루 찬스에서 병살타로 찬스를 무산시켰고 지난 2일 한화와의 홈경기에서도 2-7로 뒤진 9회말 2사 만루 찬스에서 3루 내야플라이로 맥없이 물러났다. 삼성전에서는 2구, 한화전에서는 1구를 건드렸다 낭패를 봤다. 박용택은 자신이 좋아하면 초구부터 가리지 않고 공략하는 스타일이지만, 최근 부진으로 성급한 타격을 한다는 평가까지 따르기 시작했다. 성적이 좋았다면 적극적인 타격이라며 칭송받았겠지만 야구는 가장 결과론적인 스포츠가 아니던가. 박용택에게 올 시즌은 쉽지 않은 한 해가 되어가고 있다. 큰 맘 먹고 수정했던 타격 폼도 예년처럼 회귀한 모습이다. 이것이 박용택의 한계일지 아니면 더 큰 도약을 향한 성장통이 될지는 아직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거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2007시즌은 박용택에게 향후 선수생활의 터닝 포인트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