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지난 8월 31일 롯데와 두산전이 열린 사직구장. ‘국민배우’ 안성기가 영화 촬영차 경기장을 찾아 롯데 포수 강민호(22)와 조우했다. 안성기의 극중 이름이 강민호였기에 이뤄진 만남이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이날 강민호는 경기 시작부터 종료 차임벨이 울릴 때까지 덕아웃을 지켰다. 지난 2005년 9월 25일 대전 한화전부터 시작된 238경기 연속 출장이 마감되는 순간이었다. ‘238’이라는 숫자는 그리 돋보이지 않을지 모르나 강민호의 포지션이 포수라는 점에서 그 값어치는 ‘238’이라는 숫자를 곱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 포수의 연속 출장 롯데 강병철 감독은 원망과 비난을 감수하고 강민호의 연속경기 출장기록을 중단시켰다. 강 감독은 지난 2002년 SK 감독 시절 최태원의 연속경기 출장기록을 ‘1014’에서 중지시킨 바 있다. 당시 강 감독은 최태원과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고 단독으로 기록 중단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강민호 본인은 물론 한문연 배터리코치와 함께 사전 협의 후 중단을 결정했다. 강민호의 연속출장은 최태원의 기록과 비교할 때 사전 협의를 거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은 아닐지 모르지만 지난 2년간 홀로 롯데 안방을 지켜온 강민호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강민호는 지난해 처음으로 풀타임 주전 포수가 됐다. 개막전부터 마지막 경기까지 126경기 모두 선발 출장하며 안방을 지켜냈다. 1989년 김동기(태평양), 1996년 박경완(쌍방울), 2002년 진갑용(삼성), 2004년 홍성흔(두산) 이후 역대 5번째로 포수 전경기 출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특히 최연소 전경기 출전 포수라는 감투를 안았다. 게다가 실질적으로 포수로만 전경기를 출장한 것은 김동기·박경완에 이어 역대 3번째였다. 2002년 진갑용은 2경기, 2004년 홍성흔은 44경기를 포수가 아닌 지명타자로 출장했다. 최연소 포수 전경기 출장이라는 강민호의 기록이 더욱 빛난 이유였다. 지난해의 경우 롯데에 강민호를 제외하면 포수가 없었다. 강병철 감독이 강민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계속해 경기에 출장시킨 이유다. 하지만 강민호는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극복해내며 고졸 3년차 포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게 한 시즌을 소화해냈다. 부족한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21살 고졸 3년차 포수에게는 그것마저도 열정적이고 아름답게 비쳐졌다. 그러나 2년째에 들어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체력적인 부담으로 보이지 않게 구멍이 새기 시작했다. 작게는 미트질부터 투수 리드에서 습관적이고 획일적인 모습으로 일관해 상대에 간파되기 일쑤였으며, 크게는 평범한 내야 플라이를 놓칠 정도로 집중력이 결여되고 말았다. 이런 상태서 최상의 투수 리드를 기대하기란 애초 어불성설이었다. ▲ 올가미에서 벗어나다 야구기자로는 처음으로 미국야구 명예의 전장에 헌액된 레너드 코페트는 ‘야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포수의 중요성을 투수 이상으로 설파했다. ‘포수는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투수를 리드하고 전체 경기를 조율하는 포지션’이라는 것이 코페트의 주장. 굳이 코페트의 거창한 문구를 담지 않더라도 포수의 중요성은 야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포수는 기피 포지션이다. 경기 내내 쪼그려 앉아 투수의 공을 받는 포수는 육체적 노동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포수들에게 치질이 직업병이라는 것은 공개된 비밀이다. 포수가 기피 대상인 이유는 또 하나 더 있다. 초기 진입 장벽이 매우 두껍고 높기 때문이다. 프로에서 포수는 한 번 주전을 꿰차면 10년은 거뜬하다. 물론 꾸준한 자기 계발을 하기에 주전 포수들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지만 포수라는 포지션 특성상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이 쌓이고 그에 비례해 노련미가 더해지기 마련이라 감독들은 베테랑을 선호한다. 젊은 포수들로서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많지 않다. 하지만 강민호는 예외였다. 프로 3년차 때부터 최기문의 부상을 틈타 주전 자리를 꿰차며 박경완에 이어 새로운 고졸포수 성공 스토리를 써가고 있다. 부족한 점도 많지만 프로 초년병 시절 박경완도 허점 많은 포수이긴 마찬가지였다. 재기발랄한 강민호를 옥죄어온 연속경기 출장기록의 중단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크다. 롯데가 5월말 이후 조금씩 하향세를 타는 시점에서부터 강민호의 성장 페달도 힘을 잃기 시작했다. 포수의 실적과 성장을 수치화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으나 그 시점부터 하나둘씩 투수리드와 볼 배합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아직은 젊어서 몸에 큰 고장이 없더라도 나이가 들수록 그 후유증이 돌발적이지만 예고된 부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과거라는 좋은 참고서가 말해준다. 박경완·진갑용·홍성흔 모두 전경기 출장을 기점으로 부상이 고질화되기 시작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강민호의 몸은 이미 개인의 것이 아니라 롯데와 팬들의 것이라는 점에서 연속경기 출장기록 중단은 오히려 긍정적이다. 먼 미래를 내다봤을 때 급격한 성장보다는 지속적인 성장이 훨씬 안정적이다. 성장 페달을 더욱 힘껏 밟기 위해서는 적절한 휴식이 선행되어야 하는 법이다. 연속출장이라는 '올가미'에서 해방된 강민호에게는 이제부터가 제2의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