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한화에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는 수식어는 이글스라는 팀 명칭만큼이나 익숙하고 친숙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잠시라도 숨고를 틈조차 없던 시절부터 시작해 암흑기라 할만한 90년대 중반에도 홈런왕 장종훈을 중심으로 한 중심타선만큼은 상대가 쉽게 지나가기 힘든 '지뢰밭'이었다. 그러나 올 시즌 한화는 막강 선발진을 앞세운 마운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타선에서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김인식 감독은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아니라 불발탄이라고 자조할 정도다. ▲ 정말 불발탄인가 한화의 팀 타율은 2할5푼7리로 8개 구단 중 7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팀 타율은 한 팀의 공격력을 대변해주는 절대적인 잣대가 되지 못한다. 타율은 객관적이지만 그만큼 많은 허수를 담고 있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득점을 내야 하는 야구경기에서 한 팀의 공격력을 나타내는 지표는 아무래도 득점이 될 수 밖에 없다. 한화의 팀 득점은 449점. 경기당 평균으로 환산하면 4.24점으로 전체 4위에 해당한다.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는 무시무시한 수식어에 비하면 실질적인 생산력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한화의 진가는 장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팀 장타율도 4위(0.377)밖에 되지 않는다. 팀 홈런은 87개로 2위지만 2루타가 리그에서 가장 적은 137개에 불과한 것이 장타율 감소의 요인이었다. 오히려 한화는 팀 출루율 2위(0.345)에 올라있다. 437개의 볼넷을 얻어낸 덕분이다. 경기당 평균으로 하면 한화의 볼넷은 4.12개로 가장 많다. ‘클린업 트리오’ 제이콥 크루즈(61개·9위)-김태균(83개·2위)-이범호(64개·7위)는 볼넷 10걸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찬스에서 해결을 해주어야 할 중심타선이 볼넷으로 걸어 나가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응집력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물론 득점권 타율은 2할7푼3리로 3번째로 높으나 병살타가 103개로 전체 2위다. 경기당 평균 병살타는 0.97개로 전체 1위다. 병살타 10걸에 한화 타자들의 이름은 없다. 그러나 몇몇 타자들만 집중적으로 병살타를 범하는 나머지 팀들과 달리 한화는 너나 할 것 없이 병살타를 친다는 게 치명적이다. ▲ 너무 잦은 슬럼프 야구계 격언으로 '방망이는 믿을 것이 못 된다'는 말이 있다. 어제 10점을 뽑아도 오늘 1점도 못 내는 것대이 야구의 진리다. 그래서 야구는 꾸준함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겨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꾸준함의 가치는 어느 곳에서든 환영받을 만한 성질의 것이지만 6개월 여 장기레이스를 매년 치르는 야구경기에서 꾸준함은 미덕을 넘어 도리이자 의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올 시즌 한화 타선은 터질 때는 화끈하게 터졌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마치 본드를 발라 놓은 듯 방망이가 경쾌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특히 전반기와 후반기의 차이가 극심했다. 전반기 77경기에서 한화는 무려 21경기에서 7점 이상 뽑아내는 고득점 경기를 했다. 이 21경기에서 한화는 18승 3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냈다. 물론 타선이 폭발하는 날 팀이 승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한화의 경우에는 다이너마이트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만큼 타선이 폭발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나 후반기 29경기에서 7점 이상 고득점 경기는 딱 한 경기, 그것도 가장 최근인 지난 2일 잠실 LG전이 유일하다. 오히려 3점 이하 저득점 경기가 무려 17경기나 됐다. 사실 올 시즌 한화 타선이 믿을 것이라고는 클린업 트리오뿐이었다. 믿었던 고동진이 여전히 기대를 밑도는 가운데 군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이영우도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기대대로 한화는 3~5번 타순에서 58홈런을 생산했는데 이는 8개 구단 중 가장 많은 수치다. 그러나 시즌 초반에는 이범호, 중반에는 김태균, 막판에는 크루즈가 부상 및 부진으로 차례로 슬럼프에 빠지며 고전을 거듭했다. 특히 ‘타선의 토종 원투펀치’ 김태균과 이범호는 올 시즌 가장 슬럼프가 잦은 타자들이 되고 있다. ▲ 그래도 다이너마이트 한화는 전통적으로 도루를 하고 작전을 거는 데 흥미가 없는 팀이었다. 화끈한 홈런 한 방이면 만사형통이었다. 2001년 이광환 감독 시절 135도루로 1위에 오른 것이 유일한 도루의 추억일 뿐 1994~97년 강병철 감독 시절과 1987·2003년을 제외하면 희생번트도 매년 100개 미만을 마크했다. 2005년부터 김인식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후 전통은 더욱 공고하고 굳건해졌다. 빅볼의 대가라 할 수 있는 김 감독은 치고 달리고 작전을 거는 스몰볼의 시대에서도 불도저처럼 빅볼로 밀어붙였다. 올 시즌에도 한화는 팀 도루 8위(42개)이고 희생번트도 5위(77개)다. 팀 도루가 현격하게 적은 KIA(61개)·롯데(61개)·현대(44개)가 모두 내년을 바라봐야 할 시점이지만 한화는 여전히 올 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한 꿈을 소중하게 품고 있다. 베이스를 훔치기 위해 달리는 시대를 역행하고 있지만 한화는 그들만의 방법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고 그 중심에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병살타가 많다는 것도 좋게 풀이하면 그만큼 많이 출루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관건은 언제 어떻게 효과적으로 터져주느냐 여부다. 한화는 팀 공격력의 절반 이상을 클린업 트리오에게 의존하고 있다. 굳이 작전을 걸기보다는 중심타자들에게 맡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7월을 기점으로 타선 전체가 급격하게 하락하면서 김인식 감독의 희생번트 지시 빈도도 늘어났다. 애써 만든 찬스를 놓치기 않기 위해 오히려 한화의 스타일대로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대세를 따르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한화는 득점을 짜내는 야구에 약하다. 올 시즌 1점차 승부에서 10승13패로 재미를 보지 못한 이유다. 결국 한화로서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심정으로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믿어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김태균-크루즈-이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