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이제 전설로 기억되는 해태는 매해 끊임없이 스타를 배출해낸 명가였다. 1997년 9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끝으로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그 와중에도 스타 탄생의 전통은 계속됐다. 정성훈(27)은 해태가 탄생시킨 마지막 스타라 할 만하다. 1999년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1차 지명으로 계약금 1억 5000만 원에 해태에 입단한 정성훈은 데뷔 첫 해부터 유격수와 3루수를 넘나들며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 스타기질을 보였다. 비록 지금은 스포트라이트의 사각지대가 된 현대 소속이지만, 대신 소리 없이 강한 남자로 자리매김한 정성훈이다. ▲ 꾸준한 타격 정성훈은 올 시즌 104경기에서 타율 2할9푼3리·14홈런·67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타격 전체 14위, 홈런 공동 1위, 타점 공동 8위에 올라있다. 타자의 순수 생산력을 측정하는 OPS(장타율+출루율)는 8할3푼1리로 전체 10위. 3루수 중에서는 두산 김동주 다음으로 가장 OPS가 높은 선수가 바로 정성훈이다. 타격 및 최다안타 2관왕에 도전하고 있는 이현곤(KIA)과 이범호(한화)·최정(SK)도 OPS에서는 정성훈에 뒤진다. 정성훈의 타격은 해태 시절부터 그 '떡잎'을 인정받았다. 1999년 데뷔 첫해 타율이 2할9푼2리. 규정타석을 채운 타율이었다. 고졸신인이 규정타석을 채우기도 버거운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타율이었다. 내로라하는 고졸신인들도 규정타석을 채우며 2할9푼대 타율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이승엽의 1996년 데뷔 첫 해 타율이 2할8푼5리였으며 1994년 데뷔한 김재현의 타율도 2할8푼9리였다. 더구나 당시 유격수로도 49경기에 출장한 것을 고려하면 더욱 빛나는 수치였다. 이후 정성훈은 규정타석을 채우며 3할을 넘긴 시즌이 아직 한 시즌도 없지만 2003년 현대로 이적한 후 타격에 더욱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적하자마자 91경기에서 3할4푼3리라는 고타율을 찍어낸 정성훈은 장타율도 2004년을 제외하면 매년 4할2푼 이상을 기록했다. 3루수가 갖춰야 할 필수요소인 장타력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팀 상황에 따라 기용된 타순을 가리지 않고 꾸준한 활약을 펼쳐 코칭스태프의 믿음을 샀다. 해결사 역할은 물론 작전 수행 능력에서도 빛을 발했다. ▲ 안정된 수비 정성훈은 입단 당시 유격수였다. 하지만 2000년 홍세완의 등장과 함께 이듬해부터 3루수로 뿌리박았다. 3루수는 유격수 못지않게 수비하기 까다로운 포지션이다. 가장 빠른 타구 또는 가장 느린 타구를 처리할 줄 알아야 한다. 판단력이 좋아야 하며 타구 처리 후 동작과 송구도 중요하다. 수비 범위가 넓어야 할 뿐만 아니라 송구도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김태균·이대호 등이 3루와 1루를 넘나들다 1루로 포지션을 고착화한 것도 그만큼 3루 수비가 어렵고 타격에도 지장을 주기 때문이었다. 정성훈은 3루 수비에 있어 국내 최정상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폭넓은 수비 범위와 총알 송구는 이미 정성훈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 오래다. 3루에 빨랫줄처럼 날아오는 타구를 다이빙 캐치하거나 느린 타구를 잡아 바로 1루에 빠르게 송구하는 능력에서도 정성훈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실책에서는 매년 상위권을 다툰다. 불규칙 바운드가 많은 수원구장을 홈으로 쓰고 상대적으로 악송구가 많은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훈의 3루 수비는 모든 감독들이 원하는 수준의 플레이라는 점은 화석처럼 단단하다. ▲ 정성훈의 가치 2003년 1월15일, KIA는 박재홍을 영입하는 조건으로 정성훈을 현금 10억 원과 함께 현대에 넘겼다. 당시 강력한 전력을 구축했으나 거포 부재에 시달렸던 KIA로서는 10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절대목표를 위해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수 있는 유망주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KIA는 박재홍이 기대를 밑도는 활약으로 우승에서 멀어졌고 정성훈은 알토란같은 활약으로 현대의 마지막 전성기를 함께 했다. 지금도 정성훈의 트레이드는 많은 KIA 팬들이 아쉬움을 곱씹는 주요 메뉴다. 정성훈의 가치는 현대의 재정난과 함께 다시금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가 재정난을 이유로 선수를 팔겠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고 그 중심에 정성훈의 이름이 있었던 것. 물론 현대의 의지가 아니라 나머지 구단들의 영입의지였지만 그만큼 정성훈의 가치가 높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였다. 이미 군문제가 해결된 정성훈은 내년 시즌을 별 탈 없이 소화하면 FA 자격을 얻는다. FA 후에도 나이는 겨우 28살. FA 대박의 조건을 가득 갖춘 셈이다. 비인기구단 현대에서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치고 있으나 제대로 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정성훈. 하지만 소리 없이 강한 남자답게 그의 가치도 소리 없지만 꾸준하게 상승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