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남자' 이대호의 쓸쓸한 가을
OSEN 기자
발행 2007.09.06 07: 33

[OSEN=이상학 객원기자] 올 시즌 롯데의 경기당 평균 관중은 1만 3799명이다. 홈경기 관중 동원에서 당당히 2위에 올라있다. 하지만 관중 동원 1위 LG가 원정 팀 팬들도 많이 경기장을 찾는 서울 구단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실질적인 홈 관중 동원력은 롯데가 최고라 할 만하다. 그러나 롯데와 현대의 시즌 17차전이 열린 지난 5일 사직구장은 거대한 청소기가 지나간 듯 황량하고 한산했다. 이날 사직구장에 입장한 관중은 1013명. 올 시즌 사직구장 최소관중이었다. 궂은 날씨도 악재였지만 가을잔치가 멀어진 팀 성적이 결정적으로 관중들의 발길을 끊었다. 하지만 변함없이 롯데 4번 자리를 지킨 이대호(25)는 4회말 시즌 24호 홈런을 터뜨리며 관중들에게 작은 선물을 선사했다. ▲ 백설공주 이대호 ‘이대호와 여덟 난쟁이’는 올 시즌 프로야구가 낳은 최고의 작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구 이대호의 상징성도 그렇지만 팀 타선의 중량감이라는 측면에서도 롯데는 이대호를 제외하면 고만고만한 타자들 때문에 결정력과 응집력이 크게 약했다. 팀 타율은 2위(0.268)이지만 경기당 평균 득점에서 6위(4.18점)에 그친 것도 마찬가지 이유. 롯데를 상대하는 팀들은 위기 때마다 4번 이대호를 고의4구로 걸리며 승부를 회피했다. 올 시즌 롯데의 잔루가 8개 구단 중 가장 많은 882개나 되는 원인 중 하나였다. 중심 타자들에게 집중 견제는 그림자처럼 뒤를 따라다니는 단어다. 타자에 대한 집중 견제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수치인 고의4구에서 이대호는 압도적인 1위(23개)를 달리고 있다. 김태균의 통산 고의4구와 이대호의 올 시즌 고의4구 숫자가 같다. 현재 페이스대로라면 이대호는 올 시즌 25.6개의 고의4구를 기록하게 된다. 한 시즌 최다 고의4구는 1997년 이종범의 30개이며 2위가 2001년 펠릭스 호세의 28개다. 그리고 양준혁이 1997년 27개, 1998년 26개의 고의4구를 얻어내 3·4위를 차지했다. 이대호는 프로야구 역사를 통틀어서도 집중적인 견제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타이론 우즈가 국내에서 5년간 기록한 통산 고의4구가 25개밖에 되지 않은 것은 그 뒤를 받친 김동주·심정수·심재학의 영향이 컸다. 이승엽이 국내에서 10년간 기록한 한 시즌 최다 고의4구가 11개(2001년)밖에 되지 않는 것도 가공할 만한 동료 타자들이 뒷받침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그들도 견제를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대호는 이렇다 할 동료 타자들의 도움 없이 홀로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 집중 견제의 덫 이대호가 볼넷을 싫어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왕이면 볼넷으로 그냥 걸어 나가는 것보다는 안타를 치고 출루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만끽한다. 장기적인 차원에서는 볼넷을 고르는 선구안도 중요하지만 감각 유지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타격을 통해 출루하는 빈도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이대호처럼 힘이 넘치고 피가 들끓는 젊은 선수라면 더더욱 그렇다. 신체 나이가 절정기에 달해있고 배트스피드도 한창 빠를 시점이다. 그런데 방망이를 제대로 휘두를 기회가 많지 않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랴. 집중 견제를 받는 타자는 타격 감각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좋은 볼이 들어오는 경우가 극히 적기 때문이며 괜히 나쁜 볼을 건드렸다 타격감이 흔들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볼넷으로 걸어 나가겠다고 쉽게 생각할 때는 상대 배터리가 속마음을 읽은 듯 정면 승부로 허를 찌르기도 한다. 결국 타석에서 스트라이크존을 좁게 잡을 수 밖에 없고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타격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 와중에도 이대호는 타율 3할2푼4리·24홈런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내고 있다. 올 시즌 이대호의 결승타는 6개밖에 되지 않는다. 4번 타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적은 수치다. 그러나 이대호를 탓할 게 못 된다. 이대호의 득점권 타수는 87타수에 불과하다. 심정수의 득점권 타수(132)와 비교할 때 이질감은 더욱 커진다. 이대호는 득점권에서 볼넷을 무려 40개나 얻어 타수의 절반 이상이 빠졌다. 자연스레 타점이나 결승타를 때릴 기회가 적었다. 24개의 홈런 중 득점권에서 나온 홈런이 2개밖에 되지 않는 것도 찬스에서 큰 것보다는 정확한 타격에 주력한 결과다. 득점권에서 터지는 홈런은 짜릿하지만 그 기회를 누릴 수 없는 타자는 왠지 모를 찌릿함으로 저미는 가슴을 부여잡을 뿐이다. ▲ 성장은 아픔을 동반한다 습관성 어깨 탈구로 8월부터 타격이 하강곡선을 그린 이대호는 사상 첫 타격 트리플 크라운 2연패가 사실상 어려워졌다. 타율·홈런·타점에서 어느 하나 타이틀 수성이 쉽지 않아졌다. 게다가 텃밭이나 다름없었던 장타율과 출루율 부문도 매우 위태롭다. 장타율(0.578)에서는 아직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출루율(0.443)은 김동주(0.466)·양준혁(0.446)에게 추월당하며 3위로 떨어졌다. 그래도 타자의 순수 생산력의 잣대가 되는 OPS(1.021)에서 1위를 달리고 있으나 역대 9번째 OPS 11할은 거의 물 건너갔다. 자칫 하다간 올 시즌 무관의 제왕이 될지도 모르는 이대호지만 철석같이 믿었던 가을잔치 진출마저 좌초 직전에 직면해 심리적 상실감이 더욱 커졌다. 지난해 페넌트레이스 MVP 경쟁에서 류현진에게 패할 때도 이대호는 웃는 낯으로 ‘한국시리즈 MVP’를 목표로 삼았다. 개인 성적보다는 팀 성적이 우선이라는 모범 답안이었다. 그러나 롯데는 현실적으로 다시 한 번 포스트시즌 진출이 어려워졌고 이대호의 꿈은 말 그대로 꿈으로 그칠 위기다. 중량감이 크게 떨어지는 타선을 홀로 고군분투하며 이끌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비록 2007시즌은 이대로 저물어가고 있지만 아직 이대호는 젊다. 이대호는 지금도 톱클래스 선수이지만 앞으로 더욱 발전할 여지가 남아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필경 성장은 반드시 아픔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이대호는 어쩌면 일찍 매를 맞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젊은 나이에 팀 타선의 리더가 되어 그 고충을 느끼는 것은 결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며 향후 이대호의 선수생활에도 굉장한 피와 살이 될 것이다. 지금은 외롭고 쓸쓸하지만 그대로 주저앉기에 이대호는 앞으로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 롯데의 발전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의 발전을 위한 길은 여전히 이대호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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