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가 윤리 의식과 책임감의 결여로 자정작용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다. 입으로 공인을 자처하는 연예인들이 거짓 방송과 허위 학력 등의 국민 기만 행위를 저지르고도 은근슬쩍 사과 몇마디로 사태를 무마하려는 도덕적 해이에 빠진 상태다.
지난 2일 오후 한 지상파 TV의 한 오락프로. 게스트 등으로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친 스타급 연예인 가운데 한 명은 범법 행위, 또 다른 두 명은 최근 생방송 중 막말 파문과 허위 학력 파동에 휩싸여 곤욕을 치렀었다. 전체 출연진의 30% 이상이 시청자들에게 뭔가 떳떳하지 못한 상황에서 천연덕스럽게 방송을 계속한 셈이다.
이같은 현상은 전 지상파 TV를 통해 보편화된 일이다. 허위학력 시비의 경우 우후죽순처럼 '거짓말을 했던' 연예인들이 쏟아져나오면서 방송국들은 마치 대수롭지 않은 일인냥 이들을 방송에 출연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허위학력 의혹이 제기된 연예인은 장미희 김승현 윤석화 오미희 강석 이경영 주영훈 최화정 다니엘 헤니 등 10여명. 이 가운데 주영훈만 출연중이던 방송 등에서 완전히 빠졌을 뿐 강석과 오미희는 진행 방송에서 공개 사과를 통해 일찌감치 허위학력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모습이다.
교직에 몸 담고 있는 장미희도 해당 학교측이 '교수 임용 당시 학력보다는 연기자로서의 경력과 명성을 존중했다'며 오히려 그녀를 감싸는 분위기다. 검찰은 학교측 관계자를 참고인 조사했지만 공소시효를 넘어섰기 때문에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심형래와 최수종은 각각 고려대, 한국외국어대 측에서 동문임을 인정받아 해명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오랫동안 자신들의 학력이 잘못 된 사실을 적극적으로 수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힘들다. 개중에는 가슴 아픈 사연도 존재한다. 가수 인순이는 '끼니 잇기도 힘들었던 집안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이에 한이 맺혀 중졸임에도 학력을 고졸로 행세했다.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의견도 각양각색이다. '거짓말로 국민을 속였다면 응분의 댓가를 치러야한다'는 강경론부터 '정상이 참작되는 연예인은 잘못을 인정한 뒤 사과하고 자숙기간을 거쳐라'는 동정론, '그들도 학력을 너무 따지는 우리 사회의 피해자'라는 의견까지 다양하다. 이같은 의견 분출은 시청자들이 피해자 입장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문제가 되는 건 이들에게 앞장서 면죄부를 던져주고 '허위 학력이 방송 진행이나 연기에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출연을 당연시하는 방송국들과 연예계의 오만한 자세다. 이들의 향후 거취에 대한 여론이 아직 충분히 수렴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둘러 급한 불을 끄겠다는 속내가 엿보인다.
거짓 방송으로 동료에게까지 피해를 끼치는 등 심각한 사회적 파장을 불렀던 인기 연예인조차 곧바로 MC 자리에 앉히는 게 요즘 한국 지상파 TV의 방송 권력이라는게 시청자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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