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고 훔치는 '달리는 야구'가 경쟁력이다
OSEN 기자
발행 2007.09.07 07: 54

[OSEN=이상학 객원기자]‘달리는 야구’는 올 시즌 프로야구의 화두 중 하나다. 페넌트레이스 우승의 9부 능선을 넘은 SK는 시즌 초반 ‘김성근식 주루혁명’으로 나머지 7개 구단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올해도 시즌 전 약체로 평가받았던 두산은 한 베이스씩 더 나아가는 적극적인 주루플레이를 앞세워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고 있다. 지난해 최하위 LG가 1년 만에 당당히 포스트시즌 진출 경쟁 팀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도 달리는 야구의 힘이 크다. ▲ 달리는 야구의 힘 야구는 득점을 많이 내는 팀이 이기는 경기다. 득점을 많이 내기 위해서는 자주 출루하고 장타가 터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어떻게 한 베이스씩 더 전진하느냐도 중요한 관건이다. 달리는 야구의 힘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달리는 야구를 대표하는 도루는 궁극적으로는 안타나 아웃카운트의 소모 없이 한 베이스를 더 진출함으로써 득점 찬스를 만들 수 있다. 또한 발 빠른 주자가 출루하면 상대 배터리들은 그 주자를 견제하느라 타자와의 승부에 온 힘을 쏟기가 어렵다. 볼 배합도 단조로울 수 밖에 없어 타자에게 상당한 플러스효과를 가져다준다. 수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기 때문. 올 시즌 LG 이종렬이 타격에서 기대 이상으로 활약하고 있는 것도 도루 1위(48개)에 올라있는 톱타자 이대형 효과가 없지 않을 것이다. 상대의 보이지 않는 실책을 야기할 확률이 높다는 점도 달리는 야구의 빼놓을 수 없는 힘이다. 내야 땅볼을 치더라도 불규칙 바운드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설렁설렁 1루로 걷듯 나가는 타자보다는 이를 악물고 1루로 달려가는 타자가 수비수들에게는 더욱 위협적이다. 이 과정에서 수비는 뜻하지 않은 실책을 저지를 수 있지만, 타자 입장에서는 결코 뜻하지 않은 결과가 아닌 것이다. ▲ 달리는 야구의 역사 롯데의 마지막 전성기는 1999년으로 기억된다. 당시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 4승3패로 역전승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롯데는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드라마를 써냈다. 그해 롯데의 팀 도루는 최하위(98개)였지만 박정태-호세-마해영으로 이어지는 가공할 만한 중심타선은 달리는 야구에서 오는 부족함을 상쇄시키고도 남았다. 그러나 1999년 롯데는 특별한 경우다. 지난 25년간 팀 도루 1위에 오른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경우는 8차례. 그 중 6차례가 바로 ‘명가’ 해태였다. 해태의 전설에는 달리는 야구가 근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1987년 청보(127개)와 2004년 롯데(129개)는 팀 도루 1위에 올랐으나 정작 팀 순위는 최하위로 처지고 말았다. 하지만 적어도 적극적으로 달리는 팀의 성적이 대체적으로 좋았다. 특히 8개 구단으로 재편된 1991년부터 지난해까지 팀 도루 1위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은 68.75%에 달한다. 몇몇 팀들의 굴곡진 역사를 살펴볼 때도 그 궤에는 달리는 야구가 자리하고 있다. 1995년 롯데는 프로야구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00도루를 넘은 팀이었다. 당시 롯데의 팀 도루는 무려 220개. 그해 롯데의 최종성적은 한국시리즈 준우승이었다. 물론 그 이전 2년간 팀 도루 1위에도 불구하고 연속해 6위에 머물렀으니 롯데의 경우로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태를 인수한 KIA는 2002~2003년 2년 연속으로 팀 도루 1위를 차지하며 강호의 면모를 이어갔었다. 그러나 도루에서 중위권으로 떨어진 2005년부터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 달리는 야구의 희비 올 시즌 판도도 달리는 야구에 의해 갈리고 있다. 이종욱·고영민·민병헌 등 준족들은 물론 거포 김동주까지 달리기 시작한 팀 도루 1위(133개)의 두산은 잠실구장의 광활한 외야를 극대화하고 있다. 두산은 31개의 3루타로 이 부문에서도 1위다. 팀 도루 2위(123개)를 달리고 있는 SK도 혁명이라 명명된 주루플레이로 상대를 괴롭히고 있다. LG 역시 팀 도루 3위(121개)에서 환골탈태의 원동력을 찾을 수 있다. 두산·SK·LG 모두 규모가 큰 홈구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하위권으로 처지며 내년 시즌을 바라봐야 할 입장이 된 KIA·현대·롯데는 달리는 야구와는 담을 쌓았다. KIA와 롯데는 나란히 61도루로 이 부문 공동 5위에 그쳤다. 홈런이 많지도 않고 장타력이 높지도 않으며 응집력마저 떨어지는 두 팀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달리는 야구가 더욱 절실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현대의 경우에는 팀 타율·출루율 1위에 올라있는 타격의 팀이지만 46개에 불과한 팀 도루로 효율적인 경기를 하지 못했다. 현대의 희생번트가 115개로 가장 많은 것도 달리는 야구의 부재와 관련 있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다. 올 시즌에는 한화가 그렇다. 한화는 팀 도루 42개로 최하위다. 도루 시도가 겨우 60회밖에 되지 않았다. 두산이 무려 188회의 도루 시도를 한 것을 감안하면 극히 적은 수치. 그렇다고 희생번트를 많이 댄 것도 아니다. 희생번트는 77개로 전체 5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화가 4위에 랭크되며 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한 꿈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한화와 김인식 감독 특유의 팀컬러가 저력을 발휘한 힘이 크다. 전체 2위에 오른 팀 홈런(87개) 중 58개가 3~5번 클린업 트리오 타순에서 나온 것이다. 달릴 선수도 많지 않지만 굳이 달리는 야구를 하지 않아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한화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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