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의 신작 '즐거운 인생'에서 첫 주연을 맡은 영화배우 김상호(38)는 학력란에 '검정고시 합격'으로 적고 있다.
"고등학교를 두번 들어갔는데 두번 다 중간에 '짤렸다'.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은 꼭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위 복무를 마친 다음에 검정고시에 응시, 합격했다"고 너털웃음을 짓는 게 그의 학력 설명이다.
그러나 검정고시는 대학입학 시험을 치를수 있도록 하는 자격 시험일 뿐, 그에게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주지는 않았다. "검정고시 붙고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내 학력은 중졸로 남았다"고 했다. 김상호는 이 사실을 감춘 적도 없고 절대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연기력 출중한 그에게 학력을 따져묻는 제작자나 감독도 없었다. 최근 연예계를 강타한 허위학력 논란 속에서 신선한 충격이다
김상호는 학력 콤플렉스에 휩싸이기 보다는 정면으로 돌파하는 쪽을 택했다. 고향 경주를 떠나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가 찾아간 곳은 대학로. 이 곳에서 극단 포스터를 붙이는 일로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대학로에서 포스터 제일 빨리, 잘 붙이는 선수로 누구나 김상호를 꼽았다. 뭐든 하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해야된다고 그 때부터 마음을 다져잡았다"고 옛일을 떠올렸다.
그렇게 고생 고생 끝에 만들어진 배우가 바로 김상호다. 연극 무대와 충무로에서 오랜 무명의 설움을 겪은 끝에 최동훈 감독의 한국영화 수작 '범죄의 재구성'에서 특급 위조범 휘발유로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이제는 돈 걱정하지 말고 아기부터 갖자고 당당히 얘기했다. '범죄의 재구성'을 찍고 나서는 여기저기서 출연제의가 쏟아질 것이란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금세 임신도 됐는데 웬걸, 오라는 데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뒤늦게 개성파 김상호를 부르는 감독들이 많아지면서 그는 1년에 서너편씩을 찍는 다작 배우가 됐다. 만년 조연으로 늙을 것같던 그가 당당히 주연 자리를 꿰차게 된 건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영화 '즐거운 인생'. 아내와 아이들을 캐나다로 보내고 기러기 아빠로 고독하게 살아가는 혁수 역이다.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 기뻐서 웃음부터 나왔다. 너무나 재미있고 즐겁게 영화를 찍었다"며 활짝 웃었다. '중졸 배우'란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온 배우 김상호의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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