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부작 대하사극이라는 거대한 항공모함을 이끌려면 프로페셔널 한 선장이 필요하다. 배가 아무리 화려하고 멋져도 선장이 시원찮으면 그 배는 자칫 표류할 수 있다. 또 제 아무리 훌륭한 조직원을 갖춘 조직이라도 그 리더가 능력이 없으면 유능한 조직원들이 이탈하거나 조직원들이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없다. 이것은 비단 배, 조직이야기가 아니다.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안방극장을 주름잡고 있는 SBS 월화사극 ‘왕과 나’(유동윤 극본, 김재형 손재성 연출)의 전광렬을 보면 이 말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전광렬. 1980년 TBC 공채탤런트로 데뷔한 이 배우는 그 동안 무수히 많은 드라마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여 왔다. ‘청춘의 덫’에서는 불혹이 가까운 나이에도 뭇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매력적인 중년으로 등장해 여심을 흔들었는가 하면 국민 사극 ‘주몽’에서는 핏줄과 연모의 정 앞에 나약해지는 황제 금와로 연민과 미움의 양극단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내시로 분했다. 한 나라를 호령하던 왕에서 내시로의 가파른 신분하락(?)으로 볼 수 있지만 그가 보여주는 연기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 동안 내시하면 임금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예~이!”라는 대답을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전광렬 표 내시는 그가 내시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는 한 여느 기백 넘치는 장군이라고 해도 믿을 만하다. ‘내시의 재발견’ 이라고 할 정도다. 이것은 전광렬의 철저한 인물 분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광렬은 지난 달 있었던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내시는 양물을 잘라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허리가 굽어지고 목소리가 가늘어진다. 하지만 판부사 조치겸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목소리도 저음으로 표현하고 허리도 꼿꼿이 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철저한 캐릭터 분석이 오늘날 색다른 내시의 발견을 가능하게 했다. 전광렬 표 내시 판부사 조치겸은 비록 사정상 양물을 잘라내기는 했지만 ‘인간적인 삶’ 만은 지키려고 한다. 야망 또한 버리지 않는다.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양물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객 네댓은 부채 하나로 너끈하게 해치운다. 그뿐만이 아니다. 급기야 내시들을 핍박하는 왕을 독살하기도 한다. 독살을 하고도 ‘하늘을 우러러 독살한 적은 없다’고 지기에게 말하는 뻔뻔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지난 2회에서 부채춤을 추면서 보여준 광기 어린 표정, 임금을 독살하려고 음모를 꾸미는 모습, 10일 방송된 5회에서 보여준 격투신, 지기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뻔뻔함, 찔러도 피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냉철한 모습은 그 자체로 판부사 조치겸을 형상화시키며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이 모습은 흡사 ‘주몽’ 초반 허준호가 해모수로 분해 강한 카리스마를 표출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을 연상케 한다. 당시 허준호가 연기한 해모수는 ‘해모수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 열풍을 몰고 왔다. ‘주몽’을 사랑한 시청자들이라면 단연코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해모수가 등장했던 초반부를 꼽는다. 전광렬도 지금 추세라면 시청자 입장에서는 2007년 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 ‘왕과 나’ 입장에서는 ‘영웅’으로 남을 법도 하다. 벌써부터 시청자 게시판에는 전광렬의 연기는 최고라며 그가 보여주는 내시의 세계에 푹 빠져 지낸다는 시청자들의 감상평이 끊이지 않고 게시되고 있으니 말이다.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하고 연기자는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진리를 다시금 깨우치게 하는 전광렬은 현재까지는 오랜 연기 내공으로 그 동안 무수히 많은 사극에서 여러 번 구현돼 왔던 ‘내시’ 라는 캐릭터를 전혀 색다르게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전광렬이기에 지금 자타공인 ‘왕과 나’의 ‘나’로 시청자들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happy@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