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프로야구 홈런왕 경쟁이 시즌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클리프 브룸바(현대)가 27홈런으로 홈런랭킹 단독선두에 올라있는 가운데 심정수(삼성)와 이대호(롯데)가 나란히 26홈런으로 브룸바를 1개 차로 바짝 뒤쫓고 있다.
군웅할거의 시대나 다름없었던 올 시즌 홈런레이스의 최종 승자도 브룸바·심정수·이대호 중 한 명이 될 것이 유력하다. 시즌 막판 2위 다툼 못지않게 뜨거운 홈런레이스의 ‘빅3’ 브룸바·심정수·이대호를 집중분석한다.
▲ 클리프 브룸바(111경기 27홈런)
- 홈런 비거리 : 122.2m
- 홈런 분포도 : 좌월(10개)·좌중월(5개)·중월(9개)·우월(3개)
- 홈런 유형 : 솔로(13개)·투런(11개)·스리런(3개)
시즌 전부터 브룸바는 유력한 홈런왕 후보 중 하나였다. 전지훈련 막판부터 악화된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5월 중순까지는 타격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6월을 기점으로 아킬레스건이 완치되자 폭발적인 홈런포를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6월에만 10홈런을 날렸고 7월에도 5홈런을 기록하며 홈런레이스를 주도했다.
그러나 ‘여름 징크스’가 브룸바의 발목을 잡았다. 1개 차이로 홈런왕을 놓쳤던 2004년에도 8월 이후 44경기에서 4홈런에 그친 기억이 있는 브룸바는 올 시즌에도 8월 이후 홈런이 4개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9일 대전 한화전에서 홈런 2방을 터뜨리며 30홈런의 가능성을 한껏 높였다.
브룸바는 압도적인 파워가 강점이다. 홈런의 평균 비거리가 122.2m로 홈런랭킹 10걸 중 김동주(두산·123.3m) 다음으로 길다. 브룸바의 홈런은 상체의 힘에서 비롯된다. 강한 손목 힘과 스냅은 상체의 파워를 더욱 증가시키는 원동력이다. 시즌 초반에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하체에 힘을 싣지 못해 장타 생산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아킬레스건이 회복되자 하체의 힘이 동반된 파워풀한 홈런이 급증했다. 간결한 중심 이동과 함께 받쳐놓고 치는 자세가 돋보인다.
홈런의 질도 훌륭하다. 솔로(13개)·투런(11개)·스리런(3개) 홈런이 골고루 분포됐으며 3점차 이내 접전 상황에서 터뜨린 홈런이 무려 22개다. 게다가 한 경기 2홈런의 멀티홈런을 4차례나 기록했으며 결승홈런도 4개나 된다. 브룸바가 홈런을 때린 22경기에서 현대는 18승4패라는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했다. 브룸바의 홈런이 곧 현대 승리의 징표였던 셈. 잔여경기가 아직 15게임이나 남아있고, 팀 성적에서 자유롭다는 점도 브룸바의 홈런왕 등극을 기대케 하는 대목이다.
▲ 심정수(110경기 26홈런)
- 홈런 비거리 : 119.8m
- 홈런 분포도 : 좌월(12개)·좌중월(6개)·중월(3개)·우월(5개)
- 홈런 유형 : 솔로(11개)·투런(7개)·스리런(8개)
지난해 어깨 및 무릎 수술과 재활로 26경기에서 단 1홈런을 기록하는 데 그친 심정수에게 올 시즌은 명예회복을 위한 해였다. 시즌 초반에만 하더라도 현저하게 떨어진 타격감각으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4~5월 동안 7홈런으로 홈런 레이스에 뛰어들지 조차 못했던 심정수였다. 하지만 6월에 6홈런을 몰아치더니 7월에만 8홈런을 휘몰아쳤다. 날이 더워지고 몸이 풀리면서 심정수 특유의 파워가 살아난 것도 컸지만 특수 선글라스에서 일반 안경을 교체하며 동체 시력을 회복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부활의 요인이었다.
심정수 역시 기본적으로 파워를 무기로 한 타자다. 물론 전성기에 비해 몸집이 홀쭉해졌지만 체지방을 줄인 결과로 기존의 파워는 크게 잃지 않았다. 특히 하체가 단단히 고정될 경우에는 정확한 타이밍에서 임팩트가 가능, 완벽한 홈런을 칠 수 있다. 서머리그를 기점으로 타구의 질이 부쩍 좋아진 이유. 전형적인 당겨치기를 구사하지만 그것이 바로 심정수의 트레이드마크다.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에 약하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으나 안경 교체 후 실투를 놓치는 않는 킬러 본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홈런의 영양가에서도 심정수는 속이 꽉 찼다. 결승홈런이 무려 8개나 된다. 결승홈런이 가장 많은 선수가 바로 심정수다. 물론 결승타(17개)도 가장 많다. 결승타의 47.1%를 홈런으로 장식한 것에서 나타나듯 결정적인 한 방을 자주 터뜨렸다. 후반기에만 5개의 결승홈런으로 삼성의 승리를 이끌었다. 최근 왼쪽 무릎 부상으로 주춤하고 있는 것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지만 승부처에서 빛을 발하는 심정수의 홈런포는 삼성의 2위 등극과 함께 생애 첫 홈런왕 등극에 대한 기대를 품게 만든다.
▲ 이대호(110경기 26홈런)
- 홈런 비거리 : 119.0m
- 홈런 분포도 : 좌월(9개)·좌중월(4개)·중월(8개)·우중월(1개)·우월(4개)
- 홈런 유형 : 솔로(15개)·투런(8개)·스리런(3개)·그랜드슬램(1개)
지난해 26개의 아치로 홈런왕에 오른 이대호에게 홈런 숫자는 매우 민감하다. 이만수-김성한-장종훈-이승엽에 이어 역대 5번째 홈런왕 2연패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홈런을 치느냐 여부도 이대호에게는 중요한 관건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지난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홈런 페이스를 보였지만 여름을 고비로 부상과 집중 견제의 덫에 걸리며 한동안 침묵을 지켜야했다. 7월 말부터 8월 말까지 한 달 여 간 23경기에서 단 하나의 홈런도 치지 못한 것. 하지만 최근 6경기에서 4홈런을 몰아치며 부활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체구만 보면 전형적인 거포라 할 수 있는 이대호지만 결코 힘으로만 홈런을 만드는 파워히터와는 거리가 있다. 이대호는 겉보기와 달리 유연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바깥쪽 코스의 공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것도 유연성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 이대호처럼 바깥쪽 공을 자유자재로 공략하며 홈런을 양산해낼 수 있는 타자는 국내에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6개의 홈런 중 무려 14개가 바깥쪽 코스를 공략해 넘긴 것이다.
전체적인 홈런 분포도도 괜찮은 편. 왼쪽으로 13개, 가운데로 8개, 오른쪽으로 5개를 넘겼다. 그러나 솔로 홈런이 무려 15개나 된다. 여덟 난장이를 이끄는 롯데 타선의 ‘백설공주’ 이대호의 고충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소속팀 롯데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된 것이 오히려 남은 기간 맘껏 풀스윙을 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작용할 전망. 비록 잔여경기가 11게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아쉽지만 최근 3경기 연속 홈런을 터뜨리는 등 손맛 감각이 좋다는 점이 이대호에게는 대단히 긍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