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더위속 10K, 김병현 '빛바랜 역투'
OSEN 기자
발행 2007.09.13 05: 09

[OSEN=돌핀스타디움(마이애미), 김형태 특파원] 하늘은 눈부시게 파랬고, 군데 군데 뭉친 구름은 장관을 이뤘다. 플로리다 특유의 소나기도 이날은 없었다. 경치는 좋았지만 운동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고역이었다. 섭씨 33도의 찜통 더위 속에 치러진 낮 1시 경기.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유니폼을 입고 직접 경기를 한 선수들은 오죽했을까. 가장 많이 몸을 움직여야 했던 선발투수 김병현(28.플로리다 말린스)에게도 마이애미의 한낮 경기는 쉽지 않았을 터. 공을 113개나 던진 탓에 그의 얼굴은 멀리서 보기에도 땀으로 번들거렸다.
13일(이하 한국시간) 워싱턴전은 그런 점에서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다. 탈삼진 10개로 개인 타이를 이뤘지만 불의의 홈런 2방에 손에 쥐는 듯했던 10승을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기 때문이다.
이날 김병현의 투구내용은 상대적으로 무난했다. 1회와 2회 볼넷으로 주자를 내보냈지만 침착하게 후속타자를 잡아 점수를 주지 않았고, 초반부터 전력피칭으로 매 이닝 삼진을 솎아냈다. 2, 3, 6회에는 2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기도 했다. 덕분에 지난달 2일 콜로라도전서 세운 한 경기 개인 최다 탈삼진과 타이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순간의 방심이 모든 노력을 무위로 돌렸다. 3-2로 앞선 5회초. 김병현은 승승장구했다. 첫 두 타자를 내야땅볼과 삼진처리해 2아웃. 아웃카운트 1개만 추가하면 승리투수 자격이 주어지는 순간.
그러나 김병현은 가장 중요한 순간 무너졌다. 앞선 두 타석서 내리 삼진으로 요리한 좌타자 라이언 처치에게 그만 우월 동점 솔로포를 허용하더니 힘있는 우타자 윌리 모 페냐에겐 좌월 역전 백투백 홈런을 얻어맞았다.
김병현은 처치를 상대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가운데 낮은 코스를 공략했다. 그러나 이날 김병현에게 맥을 못추던 처치는 기다렸다는 듯 어퍼스윙으로 방망이 중심 '스윗스팟'에 공을 맞히는 데 성공했다. 불의의 홈런 홈런으로 맥이 빠진 듯 김병현은 갑자기 집중력을 잃었고, 페냐에게도 큰 것을 내주고 말았다.
플로리다가 6회말 제레미 허미다의 솔로포로 4-4 동점을 만들면서 김병현은 이날 경기를 패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비록 홈구장에서 10승 달성이라는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이날 경기는 교훈을 남겼다. 경기 내내 호투하다가도 순간의 방심으로 결과가 뒤바귈 수 있다는 게 야구라는 점을 김병현은 한 번 더 뼈저리게 느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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