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살아있는 전설’ 양준혁(38, 삼성)은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선수로 유명하다. 아웃될 것이 확실한 내야 땅볼을 치고도 전력으로 1루를 향해 질주하는 것은 더 이상 화젯거리가 아닌 일상이다. 하지만 그러한 양준혁조차 열정과 성실함에서 혀를 내두르는 선수들이 있다. 바로 두산의 ‘알파와 오메가’ 이종욱(27)과 고영민(23)이다. 양준혁은 “이종욱과 고영민 같은 선수들이 많아야 한국야구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본에 충실하는 그들은 팬들에게 야구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는 선수들이기도 하다. ▲ 열정의 허슬플레이 지난해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에도 불구하고 두산의 배가 불렀던 것은 이종욱과 고영민이라는 새 얼굴들의 출현 덕분이었다. 현대에서 방출된 후 신고선수로 입단한 이종욱이나 데뷔 후 4년간 거의 2군에만 머무른 고영민을 주목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둘은 막상 시즌 뚜껑이 열리자 점차 존재감을 떨치기 시작했다. 시즌 전에는 전력 외로 분류될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했지만 시즌 막판에는 일찌감치 다음 시즌 주요 전력으로 포함됐다. 장원진·전상렬 등 오랜 기간 팀을 위해 공헌한 베테랑들의 벤치 신세를 아쉬워 할 틈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빠르게 팬들의 마음을 흡수했다. 이종욱이 팬들의 주목을 끈 계기는 바로 열정적인 수비였다. 지난해 5월 7일 LG와 잠실경기에 좌익수로 기용돼 조인성의 홈런 타구를 잡기 위해 2.6m 높이의 펜스를 타고 올라가 점프한 것. 비록 타구는 놓쳤지만, 팬들은 메이저리그에서나 볼 법한 플레이를 국내에서도 볼 수 있음을 확인했고 그 선수가 바로 이종욱임을 알았다. 고영민은 승부처에서 결정적 한 방으로 이름을 알렸다. 4월 16일 잠실 삼성전에서 7회 결승 2타점 3루타를 작렬시킨 것이다. 그 이전까지 4년간 1군 64경기에서 통산 타점이 1개에 불과했던 5년차 무명 선수가 세상을 향해 울분을 토해내는 한 방이었다. 실질적인 데뷔 시즌에서 기대 이상으로 활약한 이종욱과 고영민이었지만, 그동안 2군에서 1군으로 올라와 반짝 활약으로 깜짝 스타가 되는 경우는 적지 않았다. 특히 실질적인 2년차 시즌에는 상대의 분석에다 '주전이라는 자만'이 성장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작용한다. 많은 선수들이 혹독한 2년차 징크스에 시달리거나 그저 그런 반짝 스타로 사라져야 했다. 하지만 팬들은 처음부터 허슬플레이라는 남다른 인상으로 다가온 이종욱과 고영민이 반짝할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지레 짐작했다. 재능은 쉽게 사라질 수 있어도 열정은 쉽게 가질 수도, 잃을 수도 없는 큰 자산이었기 때문이었다. ▲ '옹박'과 '고제트' 스타급 야구선수에게는 별명이 붙기 마련이다. 좋은 별명이든, 그렇지 않은 별명이든 한 번 붙은 별명을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래서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막 스타급 반열에 올라선 이종욱과 고영민에게도 별명이 있다. 이종욱은 ‘옹박’, 고영민은 ‘고제트’이다. 이종욱은 영화 의 주인공 토니 자를 연상케 하는 외모로 별명이 붙었지만 에서 탄탄한 몸과 운동 능력을 뽐낸 토니 자처럼 빠른 발과 순발력에 두꺼운 상체도 닮았다. ‘2익수’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놀라운 수비 범위를 자랑하는 고영민은 팔을 맘껏 늘어뜨리는 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고제트’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종욱과 고영민은 별명을 쏙 빼닮은 플레이로 2년차 징크스를 넘어 빠르게 성장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이종욱의 과감하고 역동적인 베이스러닝과 외야 수비는 와이어액션이라는 의심을 받은 토니 자의 액션 연기처럼 놀라움의 연속이다. 비쩍 마른 몸매에 유약해 보이는 고영민은 어수룩한 형사 가제트처럼 겉보기에는 상대에게 큰 위협을 주지 못하지만, 온갖 신기한 장치와 능력으로 사건을 척척 해결하는 가제트마냥 공수주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올 시즌에는 부족한 부분까지 메우며 더욱 무서운 선수로 거듭났다. 체력과 타격이 보완점으로 지적된 이종욱은 114경기에서 타율 3할1푼5리를 때려내고 있으며, 파워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은 고영민도 당당히 3번 타순에 기용되며 11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2위 경쟁의 중요한 고비처가 된 지난 15일 한화와 잠실 경기서도 이종욱과 고영민은 한없이 빛났다. 이종욱은 4타수 3안타 1타점 1볼넷 1도루로 공격의 포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그라운드를 맘껏 누볐고, 고영민도 2루타 2개 포함 3타수 2안타 2타점 1도루로 중심타자의 면모를 뽐냈다. 두산도 8-2로 한화를 완파하며 2위 자리는 굳건히 지켰다. 둘은 한 베이스라도 더 전진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과 과감한 베이스러닝으로 한화의 수비진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켰다. 1루에서 2루로 태그업하거나, 2루에서 홈으로 쏜살같이 달려들어 득점하는 그들의 모습은 야구의 또 다른 참맛을 느끼게 한다. 팬들이 둘에게 점점 빠져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