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승부, 특히 축구의 세계는 비정하기 짝이 없다. 언제 어떻게 뒤바뀔지 모르는 운명이니 말이다. 24살 동갑내기 골키퍼 염동균(전남 드래곤즈)과 김영광(울산 현대)의 모습이 딱 그랬다. 지난 18일 광양전용구장서 벌어진 전남과 울산의 FA컵 8강전은 팽팽한 두 골키퍼의 키핑 대결로 관심을 끌었다. 염동균과 김영광은 작년까지만 해도 전남에서 나란히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 하지만 주전 자리는 하나뿐이었기에 이들은 피할 수 없는 경쟁의 세계로 내몰렸고, 치열한 다툼을 벌여야 했다. 이날은 조금 달랐다. 양쪽이 나란히 각 팀의 골문을 지키는 수문장으로 나섰기 때문. 염동균과 김영광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멋진 선방을 거듭하며 정규시간 90분까지 무실점으로 잘 버텼다. 득점없이 비긴 가운데 맞이한 승부차기. 사실 염동균에게는 잊기 어려운 아픔이 있었다. 작년 FA컵 준결승전에서 선발로 나섰던 염동균은 연장 종료 2분여를 남기고 김영광과 교체됐다. 승부차기에 유독 자신감을 보이던 김영광에게 허정무 감독이 기회를 줬던 것. 결국 김영광은 선방했고, 팀도 여세를 몰아 우승까지 차지할 수 있었다. 주전 경쟁에서 한 발 앞서 있던 염동균에게는 큰 상처였다. 당연히 이번 경기 승부차기를 준비하며 작년의 아픔을 떠올렸을 터. 염동균의 탁월한 '감각'이 돋보였다. 염동균은 울산의 첫 키커로 나선 우성용의 PK를 보기좋게 막아냈고, 김영광은 4명의 킥을 모두 허용해야 했다. 울산의 세 번째 키커 유경렬의 PK마저 크로스바를 넘어가 여유있게 승부차기를 치르고 이긴 염동균은 경기후 "(우)성용이 형의 킥이 왼쪽으로 올 줄 알았다"고 빙그레 웃었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던 염동균과 의기소침하게 고개를 떨군 김영광. '인생사 새옹지마'란 옛말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입증한 FA컵 8강전이었다. yoshike3@osen.co.kr 염동균-김영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