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승' 리오스, 외국인선수 그 이상의 이미지
OSEN 기자
발행 2007.09.21 08: 25

[OSEN=이상학 객원기자] 이미지만큼 언어 장벽을 무너뜨릴 강력한 것은 없다. 이미지는 보편적으로 사람의 마음에 와 닿기 때문에 통역이 필요 없다. 두산의 다니엘 리오스(35)도 통역이 필요 없는 외국인선수 중 하나다. 인원이 제한돼 있으며 슈퍼맨급 활약을 펼쳐야 인정 받을 수 있는 게 한국 프로야구의 외국인선수를 평가하는 풍토지만 리오스의 열정과 겸손 그리고 프로정신이 가득한 이미지는 외국인선수를 초월했다. 야구선수이자 한 인간으로서 언어 장벽과 외국인선수라는 편견을 깨뜨린 것이다. 프로야구 사상 첫 외국인선수 20승, 그것도 순도 100%의 선발 20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21세기 첫 20승 투수’ 리오스가 더욱 빛나는 이유다. ▲ 시작은 미약했다 2002년 KIA 유니폼을 입고 한국무대를 밟은 리오스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시즌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좋은 투수’ 정도로만 평가받았다. 그해 KIA에는 마크 키퍼라는 또 한 명의 외국인투수가 리오스와 함께 입단했다. 입단 첫 해부터 KIA의 제1선발로 활약한 키퍼는 19승9패 방어율 3.34를 기록하며 사상 첫 외국인 다승왕에 올랐다. 특히 지금의 리오스처럼 이닝이터로서 면모가 돋보였다. 키퍼는 그해 리그 전체에서 3번째로 많은 202⅓이닝 소화했다. 하지만 훌륭하기로만 따지면 리오스도 뒤질 게 없었다. 전반기에 마무리, 후반기에 선발로 활약하며 14승5패13세이브 방어율 3.14라는 수준급 성적으로 제2선발 노릇을 완벽하게 해냈다. 리오스가 KIA에 입단했을 때 주어진 보직은 마무리였다. 시속 145km 내외의 묵직한 강속구를 기본으로 던지는 리오스에게는 짧은 이닝 동안 전력투구하는 것이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러나 ‘마무리 리오스’는 실망스러웠다. 그해 7월까지 마무리로 등판한 29경기에서 리오스는 5승3패13세이브 방어율 3.77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공은 빨랐지만 그 빠른 공을 효과적으로 제구하지 못했고, 마무리투수임에도 마운드에서 잦은 흥분으로 마인드 컨트롤에도 문제점을 드러냈다. 2002년 당시 리오스는 우리나이 서른 살로 혈기왕성한 시기는 지났지만 그래도 마음과 감정을 완전하게 제어할 수 있는 시기도 아니었다. 하지만 선발투수로 전환한 2002년 8월 이후에만 13경기에서 9승2패 방어율 2.57이라는 초특급 성적으로 키퍼를 능가하는 활약을 펼쳤다. 특히 11경기 선발등판 중 3차례나 완투를 해내는 등 경기당 평균 8.18이닝을 소화해내는 '먹성'을 발휘했다. 전반기에만 하더라도 불안한 마무리투수로 재계약은 커녕 퇴출 가능성까지 점쳐졌지만 후반기 대활약으로 퇴출 가능성을 소리 소문 없이 싹 없앤 채 재계약에 골인했다. 2003년, 10승13패 방어율 3.82로 기대치를 밑돌았으나 2004년에 222⅔이닝을 던져 17승8패 방어율 2.87의 MVP급 성적으로 말끔하게 만회했다. ▲ 두산에 가다 최고의 한 시즌을 보내고 맞이한 2005년. 그러나 리오스는 갑작스레 부진에 빠졌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외국인선수는 투수보다 타자가 롱런하는 것이 법칙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2005년에도 리오스는 최장수 외국인 투수였다. 국내 감독들은 외국인선수에게 에이스 역할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각종 인센티브가 걸려있는 외국인 투수들도 많은 등판과 투구이닝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0년 이후 한 시즌 200이닝을 돌파한 10명의 선수 중 5명이 외국인 투수라는 것이 그 증거. ‘끝까지 던지는 것’을 투수의 미덕으로 삼은 리오스는 경우가 달랐지만 2004시즌에 무려 222⅔이닝을 던진 만큼 2005시즌에는 후유증이 찾아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외국인선수는 5시즌을 잘 해도 한 시즌을 망치거나 퇴조 기미를 보이면 짐을 싸야 하는 것이 운명이다. 리오스도 다를 바 없었다. 2005시즌 KIA는 창단 후 최악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그 표면에는 2004년 최고투수 중 하나인 리오스가 두드러져 있었다. 2005시즌 전반기 리오스는 19경기에 선발등판했으나 6승10패 방어율 5.23으로 부진했다. 당시 전반기 경기당 평균 투구이닝이 5.98이닝으로 리오스의 명성에 비하면 매우 적었다. 그러나 이유 없는 무덤이 있을 리 없었다. 그해 KIA의 내야진은 최악의 돌 글러브를 자랑하고 있었고 열정적이지만 다혈질인 리오스가 마운드에서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제대로 조성하지 못했다. 결국 리오스는 그해 7월 10일 2대1 트레이드를 통해 정든 KIA를 떠나 두산으로 둥지를 옮겼다. 하지만 그 때부터 기적이 일어났다. 두산 이적 후 13경기에서 9승2패 방어율 1.37이라는 가공할 만한 성적을 남긴 것이다. 경기당 평균 투구이닝도 7이닝(7.05)을 돌파했다. 두산은 리오스의 가세와 함께 페넌트레이스 2위를 차지하며 당당히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결과적으로 리오스의 영입은 두산에나 리오스에게나 굉장한 득이었다. 두산의 내야진은 KIA의 내야진보다 훨씬 안정돼 있었고, 좁디좁은 광주구장보다 훨씬 광활하고 드넓은 잠실구장은 리오스에게 그야말로 최적의 조건이었다. ‘두산 리오스’의 기세는 두산에서의 첫 풀타임 시즌이 된 지난해에도 이어졌다. 비록 패수(16)가 승수(12)보다 4개나 많았지만 방어율은 2.90으로 극단적인 투고타저 시즌임을 감안해도 특급이었다. ▲ 선발 20승 올 시즌 전 리오스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기대보다 우려가 더 많았다. 지난해 한국에 데뷔한 이후 가장 많은 233이닝을 던진 것이 첫째 이유였으며 상하 폭이 좁아드는 대신 좌우 폭이 늘어난 스트라이크존 변경이 둘째 이유였다. 2004시즌 222⅔이닝 투구 이후 2005시즌 전반기 부진에 빠진 전례가 있었고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구종이 없는 리오스로서는 달라진 스트라이크존도 반갑지 않았다. 실제로 개막 첫 한 달이었던 4월에 2승2패 방어율 3.27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성적을 남겼다. 이즈음 두산 김경문 감독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대체 외국인선수를 물색할 조짐을 보였다. 프로는 언제나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만약의 경우는 일어나지 않았다. 5월부터 리오스는 무적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5월 6경기 5승1패 방어율 0.79, 6월 5경기 4승 방어율 0.95, 7월 6경기 4승1패 방어율 1.50. 5~7월 도합 성적은 12승2패 방어율 1.09밖에 되지 않는다. WHIP도 0.90밖에 되지 않았으며 피안타율도 1할8푼5리에 불과했다. 이 기간 동안 투수전의 백미라 할 수 있는 1-0 완봉승 3차례 포함 완봉승으로 4승이나 따냈다. 8월 6경기에서 3승으로 반타작 승률을 거둔 것도 오히려 아쉽게 느껴졌다. 선발 20승이 물 건너갈 것으로 보였기 때문. 하지만 9월부터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퍼부은 게릴라성 폭우는 두산으로 하여금 ‘리오스-랜들-비-비-비’라는 환상의 선발 로테이션을 구축하게끔 했고 8월까지만 하더라도 희박하게 여겨졌던 리오스의 선발 20승은 점점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9월20일 수원 현대전에서 리오스는 7이닝 동안 8피안타 2볼넷을 허용했지만 2실점으로 현대 타선을 막고 승리투수가 되며 프로야구 사상 15번째 20승이자 5번째 선발 20승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1999년 정민태 이후 8년 만의 20승이자 1995년 이상훈 이후 12년 만의 선발 20승. 사실 이날 경기에서 리오스는 6회에만 집중 5안타를 맞고 2실점하는 등 고비도 맞았지만, 수비수들의 도움아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갔다. ‘뒤에 있는 수비수 8명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신념대로였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DNA가 탑재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 두산 야수들은 공수 양면에서 중요한 군사작전을 감행하듯 플레이 하나하나에 집중력을 다했다. 이날 경기뿐만 아니라 올 시즌 리오스가 등판한 대다수 경기에서 그랬다. 4년 연속으로 200이닝을 돌파했으며 부친상을 당한 기간에도 감각을 잃지 않으려 한국에서 미국에서까지 야구공을 놓지 않은 철의 에이스에 대한 일종의 예의였다. 올해로 어느덧 국내 무대 6년차가 된 리오스는 끊임없이 치열하게 마운드에서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그가 착용한 갑옷은 외국인선수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KIA와 두산 유니폼이었다. 횃불의 전수자가 되어 열정을 전파해나가듯 선수단과 팬들의 마음 속 깊은 계곡에 있는 뜨거운 열정과 멈추지 않는 동력을 끌어냈다. 리오스의 선발 20승에는 사상 첫 외국인선수라는 특별한 타이틀이 따라붙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산 소속이라는 점일지도 모른다. 물론 선발 20승은 리오스 개인과 두산 팀만의 것이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 전체에도 뜻 깊은 영광의 기록이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오해와 편견을 깨고 외국인선수 그 이상의 이미지를 보여준 리오스의 투구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 야구팬들에게는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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