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SK 정근우(25)는 체구가 작다. 공식 프로필의 체격은 174cm, 75kg. 일반인과 별 다를 바 없다. 물론 신체 조건에 좌우되지 않는 야구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근우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매우 특별한 좌표를 점하고 있다. 작은 체구에 맞게 부지런한 야구에도 능하지만, 웬만한 거포들을 능가하는 장타력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부산고-고려대를 졸업한 정근우는 2005년 2차 1번으로 SK에 지명됐다. 1라운드 전체 7순위. SK는 체구가 작지만 타격에서 재질을 보인 정근우의 가능성을 높이 샀다. 그러나 데뷔 첫 해였던 2005년에 정근우는 52경기에서 1할9푼3리라는 극악의 타율로 기대치를 크게 밑돌았다. '체구가 작은 선수는 역시 프로에서 통하기 어렵다'는 속설이 들어맞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근우는 지난해 당당히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발돋움했다. 2할에도 못 미치던 타격이 괄목상대하게 달라졌다. 지난해 120경기에서 정근우는 타율 2할8푼4리·8홈런·69득점·45도루를 기록했다. 2루수로는 물론 톱타자 중에서도 단연 특급이었다. 게다가 2루 수비도 안정적이었다. 지난해 실책이 8개밖에 되지 않았다. 지난해 정근우보다 적은 실책을 기록한 주전 2루수는 KIA 김종국(7개)과 현대 채종국(7개)뿐이었지만 김종국과 채종국은 각각 9경기·23경기씩 정근우보다 적게 뛰었다. 그러나 올 시즌 김성근 감독의 부임과 함께 유격수로 포지션을 변경한 것이 결과적으로 정근우에게는 독이 됐다. 지난해 8개에 불과했던 실책이 올해 무려 20개로 불어났다. 2루수로는 넓은 수비범위와 안정된 포구 및 송구를 자랑했지만 유격수로 옮긴 뒤에는 송구 불안으로 전체적인 수비 동작과 집중력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타격은 눈부실 정도로 훌륭했다. 월별 타율이 6월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달은 3할을 기본으로 때려냈다. 올 시즌 104경기에서 3할2푼8리·9홈런·44타점·60득점·23도루를 기록 중이다. 전체 4위를 달리고 있는 타율을 비롯해 홈런·타점 모두 지난해를 뛰어넘었다. 지난해보다 16경기를 덜 뛰고도 거둔 성적이다. 특히 장타율과 출루율을 합한 OPS는 8할9푼9리로 전체 7위에 랭크돼 있다. SK 타자들 중 가장 높은 OPS로 삼성 4번타자 심정수(0.865)보다 3푼 이상 높은 수치. 특히 장타율이 4할9푼7리로 전체 6위에 올라있다. 작은 체구에도 믿기지 않는 파워배팅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확성이나 선구안이 결여된 것도 아니다. 정근우의 출루율은 4할2리로 전체 8위. 삼진(41개)과 볼넷(34개)의 차이도 크지 않다. 작은 체구에서 비롯되는 파이팅이나 타석에서의 끈질김은 영락없는 쌕쌕이의 모습이다. 정확성과 파워 그리고 작전 수행 능력까지 지녀 어느 타순에 갖다 놓아도 제 몫을 해낼 수 있는 타입이다. 포지션 변경에 따른 수비 부담이라는 악재로 그동안 출장이 들쭉날쭉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고무적이다. 정근우는 적어도 타격에 있어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지난해 이상으로 활약하고 있다. 실질적인 2년차 시즌을 맞아 상대의 집중 견제라는 벽을 넘어 일궈낸 타격의 진일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