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아직 내 축구의 50퍼센트도 보여주지 못했다"
OSEN 기자
발행 2007.09.25 09: 24

근 4년만에 현장으로 복귀했지만 역시 변한 것은 전혀 없었다. ‘원조 시민구단’ 대전 시티즌의 지휘봉을 잡은지 이제 두달여를 맞이한 김호 감독(63)의 축구에 대한 한없는 열정과 야망은 끝이 없었다. 올해로 지도자 생활 32년째. 1975년 부산 동래고 감독을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던 김 감독은 2003년 12월 수원 삼성 사령탑을 끝으로 잠시 물러나 올 7월 대전의 새 사령탑으로 부임할 때까지 약 4년여간의 공백을 가졌으니 정확히 말하자면 벤치에서 28년을 보낸 셈이다. 지난 22일 홈구장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구FC와의 ‘시민구단 더비’를 4-1 대승으로 장식하며 3연패를 탈출하게 된 김 감독은 경기후 숙소에서 가진 2시간여의 인터뷰에서“내 축구는 진행중이고, 아직 보여주고자 하는 수준의 50퍼센트도 이루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과연 그럴까. 대전은 김호 감독이 부임한 뒤 4승5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승률만 본다면 분명 최윤겸 감독이 이끌던 올시즌 전반기와 크게 다름없다. 하지만 대전 축구를 지켜본 사람들은 김 감독이 대전으로 온 이후로 확실히 변했다는 얘기들을 한다. 일단 재미있어졌다. 질 때 지더라도 화끈한 축구를 구사한다. 무승부도 없어졌다. ‘우리는 역시 어쩔 수 없어’란 패배의식에 사로잡혀있던 선수들도 김 감독이 벤치를 지키면서 눈에 불을켜고 그라운드를 누빈다. 최근 성남과 서울에 발목을 잡히는 등 3연패를 당했으나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최고의 모습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김호 감독은 철저한 플래툰 시스템을 도입했다. 대전에 남고 싶고, 더 뛰고 싶다면 죽기살기로 필드를 누벼야 한다는 자신의 의중을 선수들에게 수시로 전달했다. “실력이 부족하다면 투지와 패기로 맞서라”는 게 김 감독의 평소 지론이었다. 팀내 최고참이자 주전 수문장 최은성은 “김호 감독께서 부임하며 선수들에게 ‘살기 위해선 무조건 뛰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전략이나 전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볼이 있으나 없으나 생각을 하라고 끊임없이 주지시킨다. 한 경기를 마치면 모두 녹초가 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승’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차피 기본 연봉만 수억대에 달하는 스타 플레이어들을 데려올 수 없는 구단의 형편상 K리그에서 우승 트로피를 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도 인정한다. “패배 주의는 아니다. 우리는 어차피 우승하기 위해 존재하는 팀이 아니다. 대전시를 위해, 또 시민을 위해 어떤 축구를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레딩FC보고 우승하라는 주문은 하지 않는다. 한번 보고, 감탄할 수 있는 축구… 재미를 느끼곤 또 경기장을 찾아오게끔 하는 축구를 하는 게 중요하다”. 약속은 어느 정도 지켜졌다. 무승부로 경기를 마감, 승점 1점을 챙기기보다 승리 아니면 패배를 외쳐댄 결과, 대전은 천천히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6강 플레이오프 진출도 자력으론 거의 어렵게 됐지만 여전히 4경기 추이에 따라 조심스레 타진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김호 감독이 무작정 선수들을 다그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윤겸 전 감독이 있을 때보다 훨씬 안정되고 부드러워졌다는 게 구단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윤원 사장, 권도순 이사 등 고위층부터 막내 프런트까지 “숙소에 가면 다들 활기차고 웃음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랬다. 김 감독은 고참이든, 신참이든 선수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지금은 시즌이 한창이라 좀 그렇지만 남은 4경기를 마치고 모든 성적표가 나오면 술도 곁들인 조촐한 회식도 할 생각이다. 커뮤니케이션도 비교적 잘 이뤄져 선수들이 스스럼없이 감독의 방문을 두드린다. 그간 외부에 비쳐진 강한 카리스마는 온데간데없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감독을 만나는 게 마냥 부담스럽고, 어렵다면 어떻게 좋은 플레이를 하길 바랄 수 있겠냐”면서 “필요할 때 한두번 주의를 주고 분위기만 전환하는 것으로 끝내야지 계속 했던 말을 반복하려면 차라리 안하는 게 낫다”고 웃는다. 고종수와 관련한 얘기도 빠뜨릴 수 없다. 수년만에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애착이 클 수 밖에 없다. 김호 감독은 “축구는 한명의 개인이 잘한다고 해서 잘 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고)종수가 아직 부족하지만 틀림없이 전성기 못잖게 잘 해낼 수 있다고 본다”고 흐뭇해했다. 공교롭게도 팀의 상승세와 고종수의 부침이 겹친다. 고종수가 대전에 있거나 말거나한 존재에 불과했던 얼마전의 성적표와 요 근래의 성적은 천지차이다. 조금씩 출전 시간을 늘리며 감각을 익히게했던 것이 벌써 2경기 풀타임 출장까지 이뤘다. 150회를 맞이한 대구전에선 아예 공격 포인트까지 기록했다. 4골중 한 개 도움에 불과했지만 의미는 컸다. 이날 김호 감독 자신도 지휘봉을 잡은지 통산 484경기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당분간은 깨지기 어려운 대기록이다. 또 192승째(136무-156패)를 올렸으니 기쁨은 두배였다. 현재의 분위기라면 다음 시즌 초반에는 200승 달성도 충분히 가능하다. 모두 현장으로 되돌아왔기에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김호 감독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절반치에도 다다르지 못했다. 갈 길이 멀다”고 대화 내내 강조했다. 그러나 대전은 이미 달라졌다. 막 걸음을 뗐다고 하는 현재의 상황이 이런데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지 모른다. 도무지 거칠 게 없어 보인다. 똑같은 멤버로 전혀 다른 성적을 내고 있는 대전에게 희망이 있는 이유다. yoshike3@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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