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한 번은 짚고 넘어갈 부분이었다. 대전 시티즌의 신임 사령탑 김호 감독(63)을 언급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바로 특유의 쓴소리. 평소 입바른 소리로 축구계에 자주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그였다. ‘그라운드의 야인’이란 닉네임도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 축구계 야당격인 한국축구지도자협의회 명예회장으로 대전 지휘봉을 잡고 있는 지금까지 여전히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김 감독은 한국 축구가 진정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단기적 안목이 아닌 장기적 플랜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고 줄곧 강조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지난 22일 유성의 대전 월드컵경기장서 15분 거리에 있는 공주의 선수단 숙소에서 만난 김 감독은 “한국 축구는 외적 부분에 있어서 분명히 발전했지만 협회나 연맹 등 내부적으로는 전혀 달라진 게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감독은 특히 대한축구협회의 인사 행정을 지적했다. 대승적으로 내다봐야 하는 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K리그 부산 아이파크을 맡은 지 보름밖에 지나지 않은 박성화 감독을 23세 이하 올림픽대표팀의 사령탑으로 불러들인 사안에 대해서는 아예 ‘충격과 퇴보’란 표현을 썼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충격이고 퇴보다. 올림픽의 비중을 논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병역 혜택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올림픽을 중시하지 않는 외국과 비교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정말로 프로축구를 살리고 싶다면서 어찌 이런 일을 했는지 궁금하다.” 책임감의 문제라고 했다. 국가를 대표해서 나가는 대회인데, 축구팬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문제있는 인사를 자행한 것 자체는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이 반드시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나 자신도 되돌아보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책임지지 못할 일은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대전 시티즌을 맡은 것도, 분명 뭔가 보여주고 싶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지 ‘돈과 권력’때문이라면 아예 수락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슈가 됐던 안정환 사태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일단 선수 본인이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지적한 김 감독은 “프로연맹의 주관없는 징계였다. 2군 리그에는 출전할 수 없는 선수가 1군 무대를 누비는 일을 외부에서는 어떻게 바라볼지 생각해야 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안정환도 사람이기 때문에 감정이 있고, 서운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같이 이해할 수 없는 징계는 내리지 않는 편이 훨씬 옳다는 게 김 감독의 기본 생각이었다. 이같은 맥락에서 프로축구에 판정 시비가 끊이지 않는 점에 대해서도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불행하게도 대전이 4-1로 대구 FC를 꺾었던 이날 인천과 전주에서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모두 심판 판정과 관련한 사안이었다. 물론 잘잘못은 가려지지 않았지만 심판에 대한 구단들의 불신이 커졌는지 연맹은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악천후에서는 소용없는 1000만 원대의 고가 장비 헤드셋이라면 왜 굳이 비싼 돈을 들여 도입을 했는지 의문이라고 어깨를 으쓱한다. 대전도 이달 초 성남 일화와의 경기에서 한바탕 소란을 겪었다. ‘보이콧’ 문제도 솔직히 고려했다고 했다. 그러나 평소 프로축구에 대한 발전을 논했던 자신이 말을 바꿔 버리면 그 꼴이 더 우습기 때문에 참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심판에게 어떻게 서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축구계를 몰고가는 일부 몰지각한 인물들이 있어서 우리 축구가 어려움에 처한 것이다. 가장 순수한 게 스포츠다. 옳은 말을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눈치만 보며 주관없이 카멜레온처럼 수시로 색깔을 바꾸는 사람들을 이 사회에서 어떻게 생각할까?”. 하지만 김 감독이 무작정 한국 축구가 희망이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정의가 이길 수 있다는 신념에서다. 음지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과 업무에 열중하는 수많은 축구인들이 여전히 존재하기에 현재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고, 앞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바라본다. 그리고 여기에 자신이 일조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다고 한다. “풍부한 경험과 기술을 많이 갖춘 축구인들을 그냥 사장시켜서는 안된다. 유소년 축구일수록 노련한 감독을 앉히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난 주말만 되면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한다. K리그와 비교해 그들의 축구가 훨씬 상위 클래스에 있다는 걸 인정한다. 분명 배울 점이 많고, 예순이 넘은 지금도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대전에 도입하고 싶다”. 당초 약속한 한 시간이 훌쩍 넘었지만 백전노장의 말은 끊이지 않는다. 선수들에게 추석 특별 휴가를 허락하고 자신도 서울의 큰 집에 올라가야 한다면서도 이야기 보따리를 쉴 새 없이 술술 풀어냈다. 축구를 너무 사랑해서 일부러 고행의 길을 걷고 있다는 김호 감독의 스토리 완결편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팬들은 대전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yoshike3@osen.co.kr 대전 시티즌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