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위풍당당하게 출범했던 현대 유니콘스가 11년 만에 막을 내릴 처지에 놓였다. 올 시즌을 끝으로 새 주인을 맞거나 공중분해의 아픔을 겪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최근 급성장세를 타고 있는 중견그룹인 STX가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할 유력기업으로 떠오르면서 현대 유니콘스 영욕의 11년을 되돌아보게 한다. 한때 재계 1위의 대그룹이었던 현대는 뒤늦게 프로야구판에 뛰어들었으나 과감한 투자로 단기간 내에 한국시리즈 4회 우승이라는 업적을 이뤘다. 그러나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 사망(2001년), 아들 정몽헌 회장 자살(2003년), 그리고 IMF 후유증 등으로 그룹이 분리되면서 현대 야구단도 내리막을 걸었다. 그리고 올 시즌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그룹이 분리된 후 장자인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과 대한야구협회 회장 출신인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이 아버지인 ‘왕회장’의 숙원이었던 프로야구단 운영 꿈을 이어가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줬지만 허사가 되고 말았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6년간 매년 80억~100억 원씩 현대 유니콘스에 지원해 총 500억 원 가량을 쏟아부었다. 야구에 애정이 가득한 정몽윤 회장도 매년 40억 원 안팎을 지원해 총 200억 원 가량을 투입했다. 정몽윤 회장은 올해도 광고료로 30억 원 가량을 지원하며 마지막까지 애정을 놓지 않았다. 오늘날 범현대가가 있게 만든 주인공인 고 정주영 회장의 뜻을 받든다면 아직도 재계서열이 상위권인 범현대가가 십시일반하면 야구단 운영은 충분하다는 것이 야구계의 시각이다. 정몽헌 회장이 살아있을 때 야구단을 이끌었던 현대그룹도 매년 40억 원 정도를 야구단에 지원했으나 그룹내 자금사정으로 2년 전부터 지원금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하이닉스(구 현대전자)는 야구단 지분의 76.2%로 대주주이면서도 2000년 이후 단 한 푼의 지원금도 주지 않아 야구단이 어려움에 처한 것을 외면했다. 14.9%의 지분을 가진 현대자동차그룹이 500억 원, 4%인 현대해상화재보험이 200억 원, 그리고 현대그룹 계열사로 4.9% 지분을 보유한 현대증권이 지원금을 대주던 것과 비교가 된다. 지난 1월 18일 농협의 인수 보류가 발표됐을 당시 범 현대가에서는 하이닉스가 지분을 넘겨주면 야구단 지원금을 재개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하이닉스는 대주주로서 농협과 인수 협상에 몰두했을 뿐 아직까지 주식 포기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범 현대가로서는 현대 유니콘스가 사라지게 되면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일이다. 비록 뿔뿔이 흩어져 ‘현대’라는 이름으로 각자 움직이고 있지만 그룹 창업자의 정성이 깃든 야구단이 해체되는 아픔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또 ‘현대’라는 상징적인 이름으로 인식되던 야구단도 사라지게 돼 범 현대가로선 씁쓸한 기분일 것이다. 범 현대가가 그룹의 뿌리였던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현대 야구단을 살리는 데 관심을 갖는 일은 정녕 없는 것일까. 현대가가 다시 나선다면 하이닉스도 권리만 내세우지 말고 야구단의 존속을 위한 현명한 처사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1995년 태평양 돌핀스를 470억 원을 들여 인수하며 프로야구계 입성 꿈을 이루고 야구단에 정성을 기울인 고 정주영 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유지가 이대로 접히는 것이 현대팬들을 가슴 아프게 한다. sun@osen.co.kr 현대 창단식서 고 정주영 회장이 대형 야구공에 사인하는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