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의 제왕' 심정수, 울분을 씻다
OSEN 기자
발행 2007.10.04 07: 52

[OSEN=이상학 객원기자] 안경 너머 심정수(32·삼성)의 눈은 한때 공포의 대상이었다. 투수의 공을 바라보는 눈매에서는 섬광이 뿜어졌고 날카롭게 돌아간 방망이는 이내 타구를 담장 밖으로 보내버렸다. 2002~2003년 심정수는 ‘국민타자’ 이승엽(요미우리)에 견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타자였다. 2003년에는 비록 홈런왕 경쟁에서 패했지만 장타율과 출루율을 합한 OPS에서 무려 1.198을 마크해 이승엽(1.127)을 능가했다. 아마 2003년의 심정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쟁자이자 주목받지 못한 선수로 기억될 것이다. 비록 최전성기를 보낼 때 이승엽이라는 거물에 가리고 현대라는 비인기 구단 소속이라는 설움을 맛봐야 했던 심정수는 2004시즌 종료 후 FA 시장에서 비로소 그 대접을 받았다. 계약기간 4년, 총액 60억 원이라는 초대형 FA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계약한 팀이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난 후 장타 갈증에 시달리던 삼성이었다. 삼성이 심정수에게 거는 기대는 실로 컸다. 2004년 성적만 놓고 볼 때는 그만한 대접을 받기 어려웠지만 삼성은 2002~2003년 보여준 심정수의 파괴력과 그의 성실성을 믿고 거액을 안겼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심정수는 실망감만 잔뜩 안겼다. FA 계약기간의 절반이었던 지난 2년간 타율 2할5푼2리·29홈런·94타점을 올리는 데 그쳤다. 특히 지난해에는 부상과 재활을 이유로 무려 100경기에나 결장했다. 여기저기서 ‘삼성의 심정수 영입은 실패’라고 결과론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올 시즌 중반까지도 이 같은 결론은 틀리지 않았다. 심정수는 더 이상 이승엽과 자웅을 겨루던 그 심정수가 아니었고 삼성 타선도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종종 홈런과 결승타를 쳤지만 몸값의 굴레는 계속 심정수를 옭아맸다. 하지만 그대로 물러설 심정수가 아니었다. 6월말부터 답답한 주황색 특수 선글라스를 벗어던지고 검은 테에 투명한 렌즈의 일반 안경을 착용하면서 부활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서머리그 20경기에서는 타율 3할1푼9리·7홈런·23타점으로 맹활약하며 삼성의 우승과 함께 MVP를 차지했다. 안경을 바꾼 후 타석에서 집중력이 한층 좋아졌고 특유의 타격 폼도 유연성을 찾았다. 특히 하체가 안정되며 공을 받쳐놓고 치는 거포 본능이 발휘됐고 자연스레 실투를 놓치지 않는 킬러 본능도 되살아났다. 헤라클레스의 부활이었다. 심정수는 지난 3일 한화와의 대구 홈경기에서 자신의 통산 325호 홈런을 역전 결승 만루포를 작렬시키며 시즌 31호 홈런과 함께 101타점을 마크했다. 이날 통산 홈런에서 이승엽(324개)을 제치고 역대 단독 3위로 올라선 심정수는 홈런과 타점에서 2관왕에 오를 것이 유력시된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유일하게 30홈런과 100타점을 넘긴 타자가 바로 심정수다. 타이틀홀더의 자격이 충분하다. 슬러거를 상징하는 홈런왕과 타점왕을 한 번도 차지하지 못해 ‘무관의 제왕’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었던 심정수로서는 그간의 2인자 설움과 FA 계약 이후 몸값을 하지 못해 겪었던 마음고생과 오명의 울분까지 한 번에 씻어보낼 수 있게 됐다. 30홈런과 100타점의 상징성만이 올 시즌 심정수의 모든 것이 아니다. 비록 타율이 2할5푼5리로 낮은 것이 옥에 티라 할 만하지만 대신 득점권 타율이 3할1푼3리다. 결정적으로 결승타가 19개로 리그에서 가장 많다. 물론 평범한 땅볼로 3루 주자를 불려 들여도 결승타가 기록된다. 하지만 이 중 무려 10개가 홈런으로 결승홈런 또한 리그에서 가장 많다. 또한 3점차 이내 접전 상황에서 나온 홈런이 무려 27개나 된다. 삼성도 심정수가 홈런을 친 28경기에서 6할4푼3리(18승10패)라는 높은 승률을 거뒀다. 다소 시간은 걸렸지만 올 시즌에야 드디어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뜬 ‘헤라클레스’ 심정수. 안경에 가린 그의 눈빛이 다시 한 번 투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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