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악역 전문배우들이 코미디 연기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영화 ‘바르게 살자’의 손병호와 ‘즐거운 인생’의 김윤석, M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히트’의 김정태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악역을 연기할 땐 관객들의 양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었던 이들이지만 막상 웃기자고 들면 배꼽을 붙잡게 만든다. 무슨 재주가 있길래? 제대로된 악역 전문배우야말로 탄탄한 연기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악역 전문을 자처하는 ‘말아톤’의 이기영은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고 그 비결(?)을 털어놨다. 데뷔작에서 이미지가 강한 역을 맡는 바람에 나쁜 놈 인상을 팍 팍 심어줬더니 , 그 연기력과 이미지에 감동받은 감독들이 악역이 필요할 때만 그를 찾더란다. 지난해 ‘마이 캡틴 김대출’에서 부패한 악질 형사 역을 맡았을 때 털어놓은 얘기다. '야수'의 손병호, '비열한 거리'의 윤제문, '타짜'의 김윤석, '친구'의 김정태 등도 비슷한 경우다. 연기를 너무 잘하다보니 악역을 자주 맡고 있다. 굳어진 콘트리트마냥 망치로도 깨기 어려운 게 관객의 고정 관념이다. CF를 중요시하는 일부 여자 톱스타들이 한결같이 착하고 깔끔한 인물만 연기하려는 것도 바로 이미지 관리 때문. 그러나 악역전문 배우들도 이제는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선두 주자는 가장 꾸준히 악역으로 나섰던 손병호. ‘야수’ ‘흡혈형사 나도열’ ‘파이란’ ‘효자동 이발사’ ‘목포는 항구다’ 등 그가 관객들의 치를 떨게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 영화들은 부지기수다. 한 방송 출연에서 그는 "이제는 목욕탕에 들어가도 사람들이 나를 보고 슬슬 피한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렸을 정도. 그런 그가 MBC의 화제 드라마 '하얀거탑'에서는 속마음 따뜻한 변호사 역을 맡아 힘없는 환자 가족을 끝까지 돌본데 이어 장진의 재치가 돋보이는 새 영화 ‘바르게 살자’에서는 신임 경찰서장 역을 맡아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선보인다. 실제 성격은 사교성이 좋아서 남을 잘 웃기고 본인도 잘 웃는 활달한 성격이다. 주위에 그를 따르는 영화계 동료, 후배들이 늘 줄을 잇는다. 김정태도 MBC '히트'에서 인간미 넘치는 형사 역을 맡아 깜짝 변신을 했다. 영화 속에서 늘 경찰과 원수 사이로 도망다녔던 그가 범인을 쫓았다. OSEN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웃기는 역할 좀 하고 싶다"더니 코믹 연기에도 대단한 재질이 있음을 확실히 보였다. 장동건을 태우라고 지시했다가 거꾸로 무수한 칼침을 맞고 쓰러졌던 그 도루코(친구), 축구부 후배 정우성이 애지중지 아끼던 개를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밀던 날건달 진묵(똥개), 원빈과 동네 조폭의 No 2를 다퉜던 쫄바지(우리형), 후배의 양어머니를 죽이는 양아치(해바라기) 등 김정태는 대한민국 악역 연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배우였다. 김정태의 에피소드 한 가지. 동대문의 한 포장마차에서 친구들과 소주 한잔을 마시는데 마침 근처를 지나던 그 동네 건달들이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를 했다. 악역 전문의 애환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타짜 아귀를 열연했던 김윤석은 이준익 감독의 감동 드라마 ‘즐거운 인생’에서 중년 나이에 록 밴드로 복귀하는 실직 가장 역을 맡아 은근한 웃음 보따리를 풀었다. "우리도 알고 보면 웃기는 사람들야"라며 온 몸으로 항변하는 악역전문 배우들이다. mcgwir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