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첫 승' 류현진, 한 단계 더 성장했다
OSEN 기자
발행 2007.10.10 08: 05

[OSEN=대전, 이상학 객원기자] "구위 자체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예전 구위가 아니었다". 지난 9일 한화와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끝난 후 삼성 선동렬 감독은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상대 선발투수의 투구 내용에 대한 평가였다. 그러나 삼성은 한화에 단 한 점도 뽑아내지 못하며 영봉패(0-5)했다. 8안타 2볼넷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비마다 결정타 부재로 한숨을 쉬어야 했다. 하지만 삼성 베테랑 타자들의 한숨이 땅이 꺼질 정도로 깊어질 때마다 우뚝 솟아 오른 마운드 위 청년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다름 아닌 한화의 '괴물 에이스' 류현진(20)이었다. 사실 이날 경기에서 류현진은 초반부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경기 전에도 코칭스태프와 구단 관계자들의 배려로 외부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조용히 선발등판을 준비했다. 지난해 포스트시즌 5경기에서 승리 없이 2패에 방어율 4.30으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한 만큼 이날 1차전 선발등판에 대한 부담이 클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승리하면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100%, 패배하면 탈락 가능성 100%인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라는 무대는 20살 어린 투수의 양 어깨에 부담의 그늘을 더욱 깊게 깔았다. 경기 초반부터 류현진은 괴물 에이스답지 않게 경직된 모습이었다. 2회까지 비교적 많은 40개의 공을 던진 데다 자신감을 상징하는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도 30.0%(3/10)에 불과했다. 빠른 투구 템포로 공을 씽씽 뿌려던 특유의 공격적인 피칭 대신 김한수가 1루 주자인 상황에도 수 차례 1루 견제를 하는 등 긴장을 풀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2회 선두타자 진갑용의 큼지막한 타구를 중견수 고동진이 펜스에 부딪치며 잡아내는 호수비를 연출하며 류현진의 경직된 몸을 풀어주었고 이후부터는 일사천리로 경기가 진행됐다. 3회부터 5회까지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 100.0%(11/11)를 기록할 정도로 초구부터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승부하는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류현진은 6회초 무사 만루 위기를 맞았지만, 다음 타자 김한수를 상대로 이날 경기 최고구속 148km로 윽박질러 짧은 우익수 플라이로 잡으며 한숨을 돌렸다. 뒤이어 연속해 대타로 나온 박정환과 강봉규를 잇따라 체인지업으로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대전구장을 가득 메운 홈팬들의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7회 2사까지 총 투구수 128개를 소화한 후 박수 갈채와 함께 마운드를 내려온 류현진은 이날 한화의 5-0 완승과 함께 데뷔 6경기 만에 포스트시즌 첫 승을 따내는 기쁨을 누렸다. 선동렬 감독의 지적대로 구위만을 놓고 볼 때 이날 경기에서 류현진은 압도적이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이날 류현진의 볼 배합은 이례적으로 직구와 변화구가 거의 5대5를 이뤘다. 올 시즌 류현진이 잘 나갈 때에는 거의 직구 위주로 승부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색적이었다. 하지만 이미 최고의 무기가 된 결정구 체인지업과 적절한 구속의 가감 그리고 몸쪽과 바깥쪽을 가리지 않는 정확한 로케이션은 류현진이 그저 강속구 투수가 아님을 증명해보였다. 특히 10차례 득점권 상황에서 안타 하나를 맞았을 뿐 나머지 9차례에서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위기 관리 능력을 뽑냈다. 그리고 그 9차례 중 7차례가 탈삼진이었다는 점은 류현진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1차전 승리 후 류현진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오늘이 지난해보다 더욱 긴장됐다"고 털어놓았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 선발 역할은 만 20살의 어린 투수가 짊어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린 투수는 무겁고 부담스런 짐을 내려 놓기는 커녕 직접 짊어진 채 기어이 팀을 승리의 고원에 올려놓았다. 어린 류현진에게 당근보다 채찍을 먼저 들었던 김인식 감독도 "한 단계 더 성숙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흡족해 했다. 어린 괴물은 그렇게 또 다시 한 단계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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