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모비치, '아름다운 축구의 일부' 가 되고픈 남자
OSEN 기자
발행 2007.10.10 14: 54

로만 아브라모비치. 그를 설명하는 단어들은 상당히 많다. 약 200억 달러(약 18조 원)의 재산. 포브스 선정 세계 11위의 부호. 러시아 석유재벌…. 이 중에서도 그의 열정과 지위, 그리고 막대한 재산을 단 하나로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첼시 FC의 구단주'일 것이다. 아브라모비치는 지난 2003년 7월 5930만 파운드라는 거금에 첼시를 인수했고 선수 영입에만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며 세계적인 선수들을 사왔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은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자신의 꿈을 가능케하는 막대한 재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사업가 아브라모비치, 축구에 대한 투자 역시 비즈니스 마인드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석유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업가다. 모든 사업에는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투자에는 단기 투자와 장기 투자가 있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역시 단기 투자와 장기 투자를 적절하게 병행했다. 그의 축구에 대한 투자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단기 투자처로는 첼시를, 장기 투자처로는 러시아축구협회를 선택한 것이다. 사실 러시아 축구 아니 정확히 말해 소련 축구는 강했다. 58년 월드컵에 첫 출전한 소련은 8강에 올랐고 62년 8강, 66년 4강까지 진출했다. 70년대 월드컵 진출은 실패했지만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고 80년대 다시 월드컵에 단골 출전했다. 유로 86 준우승과 88 서울올림픽 우승 당시는 소련 축구의 최전성기였다. 그러나 이후 소련이 해체되고 여러 나라들이 독립하면서 러시아 축구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축구의 물주가 된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조국 축구의 부활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전국적으로 50여 개의 잔디 구장을 짓게 해 유소년 축구를 지원했다. 대표팀의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마법사'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했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히딩크 감독의 막대한 연봉(223억 원)의 절반을 자비로 부담했고 모든 편의를 봐주고 있다. 지난달 잉글랜드와의 유로 2008 예선 경기에서 패배해 본선 진출이 불투명해졌지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히딩크 감독과 2010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러시아 축구의 부활이라는 프로젝트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 역시 최근 영국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와 나는 러시아 축구 재건의 장기 계획을 가지고 있다" 고 말한 바 있다. ▲ 첼시 FC는 아브라모비치에게 단기 투자 러시아 축구 재건이 중장기적인 계획이라면 상대적으로 첼시는 아브라모비치에게 있어서 단기 투자의 성격이 짙다. 대표팀은 몇 달에 한 번씩 경기를 가지고 4년마다 월드컵이라는 성적표를 받는다. 이에 비해 리그에 참가하는 축구 클럽은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 경기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성적 역시 마치 재무제표처럼 매년 받아볼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사업가인 아브라모비치는 축구계에서도 사업에 필적하는 성공을 쟁취하기 위해 클럽 인수 1년 후 조세 무리뉴 감독을 영입한다. 스타 선수들만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성적을 얻는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무리뉴 감독은 클럽이라는 단기 투자의 장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프리미어리그 2연패, 2007 FA컵 우승 등 무리뉴 감독이 첼시에 가져다준 트로피는 무려 5개다. 그러나 2007년 9월 무리뉴 감독은 첼시 감독직에서 전격적으로 사퇴했다. 사퇴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 많은 설들이 난무했지만 사실상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경질시켰다는 것이 대세다. ▲ 아름다운 축구의 일부가 되고 싶다 왜 경질시켰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유들이 있다.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지 못했고 아브라모비치와 무리뉴 감독간의 갈등이 존재했었다. 여러가지 지엽적인 이유들을 종합한다면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자신이 원하는 축구를 보여주지 못하는 무리뉴 감독과 갈등으로 인해 사임이라는 수순을 밟게 한 것'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3년 4월 23일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알 마드리드의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을 관전했다. 당시 맨유와 레알 마드리드는 난타전을 벌여 맨유가 4-3으로 승리했다(하지만 1차전을 3-1로 이긴 레알 마드리드가 골득실차에서 앞서 4강에 진출했다). 경기는 잠시라도 눈을 떼지못할 만큼 재미있었다. 이에 자극받은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 후 첼시 인수를 결심했다. "나도 이런 아름다운 축구 경기에 일부가 될 수 없을까?". 아름다운 축구는 어떤 축구일까? 뭐라고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재미있고 매력적인 축구일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 9일 한 인터뷰에서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성적뿐만 아니라 매력적인 축구를 원하는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이 빠졌다고 느꼈을 것이다" 며 말한 것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동안 첼시가 보여주었던 경기는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축구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무리뉴 감독이 첼시를 맡는 3년간 리그 최다득점을 딱 한 차례 기록했을 뿐이다. 그것도 맨유와 공동 1위였다. 또한 2004~2005 시즌부터 2006~2007 시즌까지 세 시즌 동안 첼시가 프리미어리그에서 거둔 1-0 승리는 24차례로 맨유의 12차례보다 2배나 많았다. 무리뉴 감독이 추구하는 지키는 축구(상대적으로)는 우승 트로피를 많이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구단주가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 꿈을 향한 아브라모비치의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아브람 그랜트를 신임 감독으로 임명했다. 이스라엘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던 그랜트는 첼시에서 기술 고문 역할을 맡으며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최측근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유럽 언론에서는 그랜트 감독의 선임을 단기 처방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마음 속에 있는 인물을 영입할 때까지 임시로 팀을 맡겼다는 것이다. 유럽 언론에서는 첼시의 차기 감독으로 거스 히딩크 러시아 대표팀 감독이나 프랑크 라이카르트 FC 바르셀로나 감독을 지목하고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과 첼시 모두 이 루머를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첼시가 아약스의 감독인 헹크 텐 카테를 수석코치로 영입하면서 라이카르트 감독이 주목받고 있다. 라이카르트와 텐 카테는 2003년 바르셀로나에 감독과 수석 코치로 부임한 이후 3년간 환상의 호흡을 선보이며 리그 2연패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굵직굵직한 실적을 거두었다. 2연패 당시 바르셀로나는 리그 최다득점을 기록하며 화끈한 공격 축구를 보여주었다. 물론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생각하는 감독에 대한 모든 보도는 유럽 언론의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아름다운 축구' 를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축구가 4년전 올드 트래포드에서 봤던 것이든 아니면 19년 전 뮌헨에서 열린 유로 88 결승전에서 조국을 0-2로 침몰시킨 네덜란드 축구에서 본 것이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bbadagun@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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