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9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12일 폐막한다. 지난 10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했고,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며 밝힌 아시아 영화의 허브가 되겠다는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올 부산국제영화제는 그 명성에 걸맞지 않는 미숙함을 드러내 아쉬움이 남겼다. 지난 4일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식은 화려했다. 특히 개막 전 비가 내려 우려의 목소리가 컸지만 부산국제영화제를 기다려온 영화관계자들과 관객들의 열기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수많은 스타들과 영화관계자들이 참석해 개막식을 빛냈고, 관객들도 스타들의 모습에 환호를 질러 개막식다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국제영화제답지 않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세계적인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에 대한 의전이 소홀했던 것. 서울에서 내한 공연을 갖은 뒤 개막식에 참석한 고령의 엔니오 모리꼬네는 그 명성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했다. 개막식 입장에 앞서 통역없이 홀로 서성거려야 했고, 이명박 정동영 권영길 등 정치인들에게 밀려 입장을 서둘러야만 했다. 게다가 비가오는 가운데 100m에 가까운 레드카펫을 우산도 없이 걸어가야만 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출국 전 이에 대한 불쾌감을 토로했고,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폐막 후 자세한 상황을 파악해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또 개막식에 참석한 수많은 스타들은 개막식이 끝나고 개막작이 상영되기 전 소수를 제외하고 곧바로 자리를 떠나 눈총을 받았다. 개막식에 참석한 배우로서 화려한 의상을 입고 스포트라이트만을 신경쓴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들이 떠난 객석은 텅 비었지만 관객들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서도 끝까지 개막작을 관람하는 열의를 보였다. 배우들보다는 관객들의 에티켓과 열정이 더 컸다. 이후 부산국제영화제는 국제영화제로서 성장을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의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64개국 275편의 영화가 초청됐고, 월드 프리미어 및 인터내셔널 프리미어의 수가 지난해를 넘어 또 한번 경신해 그 권위를 차츰 쌓아가고 있다. 초청작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짜여져 빠른 속도로 매진됐고, 상영작에 대한 관객들의 만족도 컸다. 국내 언론은 물론 해외 언론들도 큰 관심을 보였고,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거나 관객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성황을 이뤘다. 하지만 그 기대치에 대한 예상이 빚나가 혼란이 벌어졌다. ‘오픈시네마’에 초청된 일본영화 ‘히어로’의 기자회견에는 일본 최고의 인기배우 기무라 타쿠야가 참석했다. 이튿날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된 영화 ‘M’ 공식기자회견도 이명세 감독의 신작에 대한 기대감과 1년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강동원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었다. 그리고 ‘베니스의 여왕’ 강수연과 ‘칸의 여왕’ 전도연의 대화도 관객과 시민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가 준비한 장소는 이런 열기를 수용하기에는 다소 협소했다. ‘히어로’ 기자회견은 그나마 수월하게 진행됐지만 ‘M’ 기자회견은 협소한 공간 때문에 소동이 벌어졌고 30분 가량 지연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강수연-전도연의 오픈 토크에는 1500여명이 넘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객석은 불과 100여개에 불과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출국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8일 개막한 아시안필름마켓에서도 실수가 벌어졌다. 아시아의 배우를 세계에 소개하는 ‘스타 서밋 아시아-커튼 콜’에 초청된 일본배우 후지와라 다쓰야는 공식파티에 참석했지만 일본어 통역이 없어 황당한 모습이었다. 그가 밝힌 소감은 “소감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전달되지 못하는 씁쓸함을 모습으로 남았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가장 큰 변수는 역시 비였다. 개막식날 비가 내린 부산은 주말에도 태풍 크로사의 영향으로 폭우가 내렸다. 가장 많은 관객과 방문객이 찾아야 할 영화제는 썰렁한 분위기였다. 또 부산국제영화제의 상징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파빌리온은 누수로 인해 체면을 구겼다.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이명세 감독이 관객과 소통하는 ‘아주담담’은 진행됐지만, 우천과 스케줄로 인해 취소된 홍콩배우 양자경의 ‘아주담담’ 때는 예보와 달리 날씨가 멀쩡해 희비가 엇갈렸다. 올 부산국제영화제는 알찬 소식보다는 불평의 목소리가 높다. 어떤 영화제이든 쓴소리를 전혀 듣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비판은 좀 더 나은 영화제로 거듭나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기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언론은 물론 관객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좋았던 점은 계속 이어가고 좋지 않았던 점은 인정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pharos@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