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수, “관우와의 승부? 필드에서 보여주겠다”
OSEN 기자
발행 2007.10.12 10: 10

"지금 이 순간, 제가 그라운드에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한때 ‘한국 축구의 아이콘’으로 꼽혔던 주역, 고종수(29). 대전 시티즌의 상승세를 진주지휘하는 그다. 시즌 후반기부터 대전은 고종수의 활약속에 7위까지 뛰어올랐다. 6강 플레이오프 진출도 마지막 수원 삼성과 경기 결과에 따라 타진할 수 있다. 지난 11일 오후 대전 구단이 연습구장으로 활용하는 KT연구소 제2경기장에서 만난 고종수의 당당한 말투는 여전했다. 허나 자신감의 표현일 뿐, 불쾌감은 없다. 긴 공백기를 거쳐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온 고종수는 축구화 끈을 조여매는 느낌이 가장 좋다고 했다. 그래서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고종수의 활약도 눈부셨다. 옛 은사인 김호 감독 휘하에서 예전의 기량을 되찾은 그는 9경기에 출전, 1골-1도움을 기록해 팀의 상승무드를 진두지휘했다. 6경기 풀타임 출장도 함께 이뤘다. 45분 출전조차 어렵다는 부정적 전망이 끊임없이 흘러나왔기에 ‘풀타임’은 그에게 더욱 각별했다. “지난달 15일에 FC서울전에서 오랜만에 90분을 다 뛰었는데 더 뛰고 싶었어요. 그만큼 출전에 대한 욕망이 강했던거죠. 비록 졌지만 후회는 없었어요.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했거든요. 그냥 느낌이 좋았어요.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남아있는 정규리그 마지막 한경기. 공교롭게도 맞대결 상대는 수원이다. 지난 1996년 창단 멤버로 입단, 프로에 입문했던 고종수는 2003년 한시즌을 제외하고, 2004년까지 약 8년간 수원에서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친정팀과의 승부. 혹여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우문을 던졌다.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죠. 지금 이 순간, 전 대전 유니폼을 입고 있습니다. 수원과의 옛 정(情)도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느슨하게 뛸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겠다고 말씀드리진 않을께요. 다만 최선을 다할 것이라 약속합니다”. 기대했던 현답이 바로 나온다. 고종수는 이번 수원전이 너무나 기다려진단다. 특별한 부담감은 없다고 했다. 그저 긴 과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경기인만큼 최선을 다해 최적의 결과를 이루겠노라 한번 더 다짐할 뿐이라고. 지나친 긴장은 오히려 약한 경기력을 불러온다는 게 오랜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철칙이란다. 다만, 약팀의 상승세는 강팀의 그것보다 훨씬 무섭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지든 이기든 후회없이 뛸 겁니다. 대전 홈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축구를 해서 그들로 하여금 한번 더 경기장을 찾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긴장되지는 않아요. 부담도 없고요. 똑같은 경기인데요.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다들 아시다시피 라이벌전이라는 정도? 오히려 수원이 더 긴장될 겁니다. 저희는 잃을 게 없는 약팀이죠. 그러나 4연승을 달리는 약팀이라면 분명 다릅니다”. 고교 시절부터 십 수년 우정을 이어온 이관우와의 승부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오랫동안 함께 어울렸던 이관우는 고교에서 곧바로 프로에 입단한 고종수와는 달리 대학을 마치고, 대전에서 처음 프로에 데뷔한 뒤 수원으로 옮겼다. 고종수는 이관우를 ‘절친한 친구이자 선의의 라이벌’이라 칭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관우라는 라이벌이 있었기 때문에 멈출 수 없었고,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관우는 정말 훌륭한 친구죠. 하지만 학창 시절부터 필드에선 저희는 늘 경쟁자였습니다. 누군가 이기면 또다른 누군가는 져야만 했던 사이랄까? 글쎄, 꼭 이기겠노라 장담은 못해요. 워낙 뛰어난 친구니까, 또 개인보다 팀 승리가 우선시돼야 하는 경기니까. 그래도 이길 수 있다면 더 좋겠죠? 그날 경기장에서 평가를 받겠습니다”. 이날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고종수는 ‘팬’이란 단어를 수차례 사용하며 팬들에 대한 감사함을 드러냈다. 비단 대전 홈팬들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늘 힘이 됐고, 한결같은 사랑을 보내준 수원 팬들 앞에서 오랜 시련과 굴레를 벗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돼 더없이 행복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너무 행복해요. 내게 다시 필드를 누빌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공을 찰 수 있다는 것. 매 순간이 즐거워요.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또 지금 대전 팬들도 수원못잖게 열성적이니…. 양쪽 서포터스의 함성으로 가득 찬 퍼플 아레나(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멋진 플레이를 보여줄 것을 생각하면 흐뭇합니다”. 너무 진지하다. 천진난만한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판에 박힌 말은 아니지만 다소나마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을 터. 고종수는 딱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하는 센스를 발휘했다. 수원전에 대한 그의 솔직한 생각이기도 했다. “그런데 참 웃기죠? 왜 마지막 경기가 수원전이 됐을까요. 복잡한 스케줄 때문에 미뤄진 경기잖아요. 그게 공교롭게도 대전-수원이 됐으니. 한편의 영화와 드라마와 다름없죠. 저희 선수들은 연기자입니다. PD(프로연맹)와 감독(양 사령탑)이 잘 짜인 각본을 내려줬으니 관객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도록 배우들이 열연해야겠네요. 정말 재미있네요…”. yoshike3@osen.co.kr 대전 시티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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