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빨간 장갑의 마술사’ 고 김동엽 감독은 “신인선수 기용은 상대에게 패를 보여주고 치는 도박”이라고 했다. 여전히 야구는 베테랑들의 축적된 경험과 노련미가 가장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스포츠다. 특히 큰 경기에서 감독들은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보다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큰 경기에서의 젊은 선수 기용은 이제 더 이상 무모한 선택이 아니다. 지난 14일 한화와의 플레이오프(5전3선승제) 1차전에서 두산이 그것을 증명해냈다.
두산은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포함된 26명의 포스트시즌 총 출장 경기가 255경기였다. 포스트시즌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선수가 무려 12명이었으며 그 중 6명이 1차전에 선발 출장했다.
반면 전설적인 베테랑들이 주축으로 있는 한화는 엔트리 26명의 포스트시즌 총 출장경기가 무려 413경기였다.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포함된 26명 모두 최소 한 경기 이상씩 포스트시즌이라는 큰 경기 출장 경험이 있었다. 경험과 노련미라는 측면에서 두산은 한화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1차전에서 두산은 한화를 8-0으로 완파했고 그 중심에 포스트시즌 처녀 출전 선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선발라인업에 포함된 6명의 처녀 출전자 이종욱·김현수·고영민·최준석·채상병·민병헌은 18타수 4안타 3타점 3득점 4볼넷을 합작했다. 타율은 2할2푼2리밖에 되지 않지만 첫 출전 선수들답지 않은 참을성으로 4개의 볼넷을 얻으며 자주 출루했고 고비 때마다 적시타를 때려내 경기의 흐름을 두산 쪽으로 가져오는 데 앞장섰다.
특히 톱타자로 출장한 이종욱은 3타수 1안타 1타점 2득점 1볼넷 2도루로 활약하며 두산의 기동력을 적극적으로 살렸다. 이종욱의 빠른 발은 경기 초반 두산의 선취득점과 함께 한화의 마운드를 흔드는 기폭제가 됐다. 포스트시즌 출장 5경기가 있지만 타석에는 처음 들어서 사실상 처녀 출전 선수와 다를 바 없는 이대수 역시 4타수 4안타 1타점으로 불방망이를 휘두르는 등 하위타순에서 예상치 못한 ‘이대수의 난’을 일으키며 한화를 당황케 만들었다.
이들의 활약은 비단 타격에만 그치지 않는다. 타격보다 경험과 노련미가 더욱 크게 부각되는 수비에서도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났기 때문이었다. ‘2익수’ 고영민은 타석에서 득점권 찬스를 3번이나 날리는 등 중심타자로서 다소 미흡한 부분도 있었지만 2루 수비만큼은 완벽에 가까웠다. 특히 8회초 김민재의 타석 때 밀어치는 것에 대비해 잔디 쪽으로 수비 위치를 옮겼고, 까다로운 안타성 타구를 건져내자마자 다이렉트로 1루에 송구해 아웃 처리하는 모습은 처녀 출전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잽싸고 노련했다.
한화는 번번이 고영민의 예측 수비에 타구가 걸려들며 고전을 거듭해야했다. 고영민은 유격수 이대수와 함께 3차례의 병살 플레이를 엮어내기도 했다. 또한 생애 첫 포스트시즌 포수 마스크를 주전 자격으로 쓴 채상병 역시 선발 다니엘 리오스와 배터리를 이뤄 들뜬 기색 없이 환상의 호흡을 과시하며 한화 타자들을 농락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외야에 포진한 이종욱·김현수·민병헌도 리오스의 대량 땅볼 생산으로 자칫 집중력을 잃을 수도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고 가끔 날아오는 타구를 잘 처리했다.
1차전 승리 후 두산 김경문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대관중 앞에서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있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선수들이 잘 풀어줬다”며 만족해 했다. 포스트시즌이라는 전혀 다른 무대에서 경험 부족이라는 불안 요소를 극복한 두산으로서는 젊은 선수들이 첫 단추를 기대이상으로 잘 꿴 것이 고무적이다.
반면 한화로서는 두산 젊은 피들의 질주를 막는 것이 남은 플레이오프의 지상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