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강병철 시대' 막 내리다
OSEN 기자
발행 2007.10.16 08: 45

[OSEN=이상학 객원기자] 롯데 자이언츠는 15일, 2년간의 계약기간이 만료된 강병철 감독(61)과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공식발표했다. 지난 2005년 10월, 롯데 제12대 사령탑으로 부임한 강 감독은 2년간 105승6무141패, 승률 4할2푼7리를 거두는 데 그쳤다. 최종 순위는 2년 연속 7위. 강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전 시즌이었던 2005년 롯데가 4년 연속 최하위에서 벗어나 5위로 발돋움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강 감독의 롯데는 2년 연속 발전은 커녕퇴보만 한 셈이다. 강 감독으로서도 재계약 포기에 할 말이 없는 입장이다. ▲ 시작부터 삐걱 2005년은 롯데에게 매우 의미있는 한 해였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4년 연속으로 최하위를 독차지했지만 2005년에는 당당히 5위로 시즌을 마쳤다. 최하위 탈출은 물론, 시즌 막판까지 가을잔치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밀레니엄 시대 롯데팬들에게는 진귀한 체험이었다. 그 중심에 바로 양상문 감독이 있었다. 40대 기수론의 바람과 함께 2004년 롯데의 제11대 사령탑으로 선임된 양 감독은 2년간 팀에 팽배했던 패배의식을 지우고 세대교체에도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양 감독은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했고 그 대신 사령탑 자리에 앉은 사람이 바로 강병철 감독이었다. 당시 양 감독과의 재계약 포기를 두고 아쉬움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롯데 수뇌부의 생각은 ‘노장 우선주의’였다. 공교롭게도 2005년을 기점으로 40대 기수론이 잠잠해지고 다시 노감독들이 뜨는 분위기였다. 2005년 1년간의 야인생활을 정리하고 한화의 지휘봉을 잡은 김인식 감독이 약체였던 한화를 일약 4강에 올려놓으며 노장 돌풍을 일으킨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양 전 감독이 패배의식을 떨치며 팀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은 만큼 롯데를 2차례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승부사’ 강 감독이 최후의 방점을 찍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물론 부산 출신을 선호하는 롯데의 구단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었다. 롯데 감독을 지낸 10명 중 백인천 감독을 제외한 9명 모두 부산 출신이었다. 강 감독은 한 팀에서 3차례나 지휘봉을 잡는 독특한 이력을 갖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롯데 제2대 감독을 지낸 강 감독은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제6대 감독을 역임했고, 지난 2년간 제12대 감독을 지냈다. 롯데의 유이한 한국시리즈 우승(1984·1992)을 이끌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지만 결과적으로 선임 당시부터 불거진 비판의 목소리는 시작부터 좋지 않은 징조를 알렸다. ▲ 불운과 악재 2002년 SK 사령탑을 지낸 후 4년 만에 현장으로 복귀한 강 감독은 그러나 시작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2006시즌 개막을 앞두고 제1선발과 마무리투수가 차례로 팀을 이탈한 것이었다. 에이스 손민한은 예기치 못한 맹장수술로 인해 개막 한 달여간 출장이 불가피했고, 노장진은 윤학길 투수코치에게 ‘시간을 좀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긴 채 팀을 이탈해 잠적했다. 롯데는 개막 첫 달부터 하위권으로 처지며 고전을 면치 못했고 기다렸다는 듯 거센 비판 여론이 일었다. 그러나 맹장수술과 팀 이탈은 강 감독의 능력을 떠난 일이었다. 물론 노장진의 경우에는 감독의 보듬기가 필요한 대목일 수도 있었으나 이 역시 이미 강 감독의 손을 떠난지 오래였다. 게다가 주전포수였던 최기문이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아웃되면서 또 한 번 차질을 빚었다. 물론 최기문의 부상으로 강민호라는 보물을 건져낼 수 있었지만, 2006년 롯데의 마운드 불안을 생각하면 베테랑 포수 최기문의 존재가 아쉬운 순간도 없지 않았다. 게다가 고액연봉자인 정수근은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고 팀에는 마땅한 구심점도 없었다. 나승현과 황성용이 투타에서 잠깐 돌풍을 일으켰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최경환을 받고 두산에 최준석을 내준 트레이드가 실패작이라는 비난까지 받아야했다. 이대호의 성장이 아니었더라면 2006년은 강 감독에게 그야말로 떠올리기 싫은 악몽과도 같은 나날의 점철이었다. 벼랑 끝 심정으로 맞이한 올 시즌은 지난해와 달리 출발이 좋았다. 개막 3연승은 마지막 전성기로 기억되는 1999년 이후 8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4월 돌풍은 태풍이 아니라 미풍이 되고 말았다. 158km 광속구로 주목받은 최대성도 반짝했다. 또한, 펠릭스 호세부터 박현승·이승화 등 핵심선수들이 고비 때마다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한 것도 강 감독과 롯데에게는 굉장한 악재였다. 하지만 한 시즌을 치르면서 부상이 없는 팀은 없다. 악재라기보다는 팀의 근본적인 한계였고,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책임에서 강 감독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 프로는 과정만큼이나 보여 지는 결과가 중요했고 강 감독의 지난 2년은 결과론적으로 실패였다. ▲ 포스트 강병철 시대 좋든 싫든 강병철 감독은 롯데 야구의 산증인이다. 롯데 야구를 언급할 때 있어서 누가 뭐래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강 감독이 거둔 개인통산 914승 중 479승이 롯데 유니폼을 입고 따낸 승리들이었으며 롯데의 팀 통산 1395승 중 479승이 강 감독하에 이뤄진 승리들이다. 특히 롯데가 포스트시즌에서 거둔 27승 중 14승이 강 감독의 것이었고, 그 중 8승은 대망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바친 승리들이었다. 한 팀에서 3차례나 감독을 지낸 독특한 이력처럼 강 감독은 롯데 야구의 영광과 좌절을 함께 했다. 롯데 사령탑은 소위 말하는 ‘독이 든 성배’에 가깝다. 일정 성적만 내도 특급대우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진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자리이기도 하다. 순위다툼이 한창이던 8월 말 강 감독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나머지 코피를 쏟은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60대 노감독이 쏟아낸 코피는 팬들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만도 했지만 성적이라는 냉혹한 현실에서는 그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이 같은 독이 든 성배를 3차례나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강 감독은 롯데 야구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수밖에 없다. 롯데는 이제 ‘포스트 강병철’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롯데가 떠나는 강 감독에게서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것은 그가 남긴 마지막 유산들이다. 특히 과거 한화와 SK는 강 감독이 어느 정도 팀의 뼈대를 구축해 놓고 떠난 후 가시적인 성과를 올린 전력이 있다. 한화는 강 감독이 지휘봉을 놓은 지 1년 만이었던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고, 2002년을 끝으로 강 감독이 떠난 SK도 2003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다. 한화에서는 이영우와 송지만, SK에서는 이진영·이호준·채종범 등이 강 감독의 마지막 유산으로 빛을 발했다. 올 시즌에는 비록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앞으로 빛을 볼 자원들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강 감독이 롯데에 마지막으로 남긴 유산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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