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경험이 없는 감독들이 올라왔으니 둘 중 한 명은 소원을 풀 수 있어 다행이다. 누가 웃을지는 모르지만...”. 두산 김경문(49) 감독은 지난 17일 한화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 승리로 한국시리즈 티켓을 따낸 후 감독으로서 2번째 맞는 한국시리즈에 대한 설레임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2005년 한국시리즈서 삼성에 맥없이 4연패로 물러난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도 피력했다. 감독 4년차인 김 감독은 “2년 전 감독 2년차로서 포스트시즌서 내딴에는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시리즈서 4연패를 당하니 초라했다. 승부 세계에서는 마지막에 지면 아쉬움만 남는다. 900승을 넘게 하신 김성근 감독님도 아직 우승을 못했는데 나도 감독생활의 목표는 한국시리즈 우승이다”며 멋진 경기를 다짐했다. 김성근(65) SK 감독과 김경문 감독은 두산의 전신인 OB 베어스와 태평양에서 감독과 선수로 함께 했던 ‘사제지간’이면서 여러 모로 ‘닮은 꼴’이다. 특히 야구인생이 남들보다 험한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눈길이 모아진다. ▲‘잡초’처럼 걸어온 지도자의 길 김성근 감독은 재일동포 출신 야구인으로서 한국과 일본 무대를 오가며 ‘떠돌이 지도자 생활’을 했다. 일본에서 학생야구 시절을 보낸 뒤 귀국해 기업은행에서 선수생활을 한 후 마산상고-충암고-신일고 등에서 지도자로 활동했다. 프로 원년인 1982년 OB 코치를 시작으로 1984년 OB 감독에 오르면서 프로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태평양-삼성-쌍방울-LG 등에서 감독직을 수행하는 등 롯데와 한화를 제외하고는 국내 프로야구 전구단을 섭렵했다. 선수들의 기량육성 및 시즌 성적을 내는 출중한 능력은 인정받았으나 구단 프런트와 잦은 마찰로 여러 구단을 옮겨다녀야 했다. 2005년부터 2년간은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코치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근년에는 한국인 빅리거들의 '개인교수'로도 명성을 날렸다. 부상으로 부진에 빠진 한국인 첫 빅리거 박찬호와 '한국산 핵잠수함' 김병현의 투구폼을 잡아주기도 했다. 롯데 마린스 코치시절에는 '국민타자' 이승엽(요미우리)을 개인지도, 일본야구에서 꽃을 피우는 데 일조했다. 2002년 LG 감독시절 삼성과 한국시리즈를 치르면서 김응룡(현 삼성 사장) 삼성 감독으로부터 ‘야신(野神)’이라는 칭찬을 들었지만 아깝게 우승을 놓쳤다. 이처럼 감독생활을 오래하면서 개인 통산 935승을 쌓았지만 한국시리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페넌트레이스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이번에야말로 ‘소원’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잡초 선수생활’과 불사조 인생 김성근 감독과 사제대결을 펼치는 김경문 감독은 정말 잡초처럼 질기게 야구 선수생활을 한 인물이다. 스스로도 ‘잡초 야구 인생’이라고 밝힐 정도로 김 감독은 굴곡많은 학생야구 시절을 보냈다. 8형제 중 막내인 김 감독은 인천에서 태어나 송림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전국 여러 도시를 옮겨다녀야 했다. 대구의 야구 명문 옥산초등학교로 전학, 야구 선수로 꿈을 펼치기 시작한 그는 가족이 다시 부산으로 이사한 탓에 하숙을 하며 대구 경상중을 다녀야 했다. 한때 야구를 그만 두려했으나 아버지의 권유로 부산 동성중으로 전학해 부모와 함께 지내며 선수 생활을 계속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타격과 포수 수비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당시 갓 창단한 공주고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또다시 타향 살이에 나선다. 고교 3학년 때 대통령배 대회에서 MVP 등 3관왕에 오르며 팀의 창단 첫 전국대회 우승을 이끈 뒤 서울의 고려대에 진학했다. 인천에서 시작해 대구·부산·공주·서울까지, 전라도와 강원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떠돌이 생활을 한 셈이다. 김 감독의 잡초 야구인생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부상을 딛고 ‘불사조’처럼 일어선 의지의 야구선수였다. 공주고 2학년이던 1976년 김 감독은 봉황대기 대회에서 경기 도중 상대 수비수의 태그를 피하다 왼손목을 다친 것을 시작으로 1977년에는 포수 수비 도중 상대 타자가 휘두른 배트에 머리를 강하게 맞아 무려 닷새간 혼수 상태에 빠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또 대학 때는 훈련 중 허리 부상을 당했고 프로에 들어와서는 엉치뼈 수술을 받기도 했다. 1991년 OB에서 선수생활을 마친 후 지도자 생활은 학생 시절처럼 전국을 떠돌지 않으며 비교적 순탄하게 지도자 생활을 했다. 삼성에서 잠깐 코치를 했을 뿐 이후에는 친정 두산을 지켰고 2004년 김인식 감독 후임으로 두산 지휘봉을 잡은 뒤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산전수전 다겪은 김성근 감독과 잡초처럼 질긴 선수생활을 딛고 일어난 김경문 감독 중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로 웃을 것인지 궁금하다. 김경문 감독의 말처럼 ‘둘 중 한 명은 웃을 수 있으니 다행’이기는 하다. 과연 누가 첫 경험을 맛볼 것인가. sun@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