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클라렌, '히딩크 장벽'으로 베어벡과 동병상련?
OSEN 기자
발행 2007.10.19 08: 23

기가 막힌 우연이다. 정말 같아도 이렇게 같을 수 있을까. 판박이란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잉글랜드 대표팀 수석코치 출신의 스티브 매클라렌 감독이 핌 베어벡 감독의 한국대표팀 사령탑 시절과 '닮은 꼴' 아픔을 경험하고 있다. 비슷한 외적 압력과 심적 고통을 겪고 있다. 현재 맨체스터 시티 지휘봉을 잡고 있는 스웨덴 출신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이 지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삼사자 군단’을 이끌 당시 수석코치로 활동한 뒤 작년 월드컵 이후 사령탑으로 승격한 매클라렌 감독은 최근 대표팀의 성적 부진으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지난 18일(한국시간) 2008 유럽선수권 E조 예선서 잉글랜드는 러시아에 1-2로 역전패했다. 본선 진출 실패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극성 맞기로 정평난 영국 언론들이 가만히 있을 리는 만무했다. 뚜렷한 특징과 특색이 없고, 선수들의 투지가 부족하다는 내부를 겨냥한 지적도 상당했지만 무엇보다 매클라렌 감독의 ‘무개념 전술’을 비판하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당연히 부진한 성적표를 남기는 사령탑에게 으레 그렇듯 ‘경질설’도 솔솔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후보군도 어느 정도 정리된 모양새다. 대중지 는 아르센 웽거 아스날 감독과 조세 무리뉴 전 첼시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 전 독일 감독 등을 FA(잉글랜드축구협회)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매클라렌 감독은 이미 안중에도 없다. 부임 1년 여 만에 지난 8월 일찌감치 한국대표팀의 지휘봉을 놓은 베어벡 감독도 매클라렌 감독이 요 근래 경험하고 있는 아픔을 그대로 경험했다. 매클라렌 감독과 거의 엇비슷한 시기에 사령탑에 오른 베어벡 감독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났다. 현 상황이라면 매클라렌 감독은 아시안컵의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한 베어벡 전 감독이 내린 결단을 신중히 고려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미 자력으로는 유로 대회 본선 진출이 불가능한 상황에 몰린 잉글랜드 축구계도 매클라렌 감독의 행보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공교롭게도 매클라렌 감독이나 베어벡 전 감독이 압력을 받고, 사임한 직간접적 사유가 모두 히딩크 현 러시아 감독과 연계돼 있는 것도 재미있다. 매클라렌 감독은 히딩크 감독에 패해 경질 위기에 몰렸고, 베어벡 감독은 히딩크 감독의 그림자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잉글랜드 축구계와 팬들은 히딩크 감독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껴왔다. 에릭손 감독 이후 ‘자국 지도자 중용론’이 대세를 이룬 그들이지만 ‘히딩크는 다르다’는 게 그들의 속내다. 한국 팬들 또한 월드컵 4강을 이뤄낸 히딩크 감독의 업적을 잊지 못해왔다. 매클라렌 감독과 베어벡 감독은 마치 ‘통곡의 벽’처럼 자신의 앞길을 막아선 히딩크 감독의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지도자로 남아있는 한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거대한 장벽. 제 임무에 충실했던 히딩크 감독은 본의 아니게 ‘공공의 적’이 돼 버렸다. yoshike3@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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