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지훈-이동준, 데뷔전서 '희비쌍곡선'
OSEN 기자
발행 2007.10.19 09: 58

[OSEN=이상학 객원기자] 지난 2월1일 2007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가 열린 서울교육문화회관. 드래프트 전부터 상위지명 가능성으로 주목받은 토종 빅맨 두 명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 명은 전체 2순위로 지명돼 1·3순위 지명자와 함께 단상에서 엄지를 치켜들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나 나머지 한 명은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전체 10순위로 지명돼 스포트라이트를 빗겨갔다. 전자는 대구 오리온스 이동준(27·198cm), 후자는 울산 모비스 함지훈(23·200cm)이었다. 드래프트 현장에서 엇갈린 희비는 지난 18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07-08 SK텔레콤 T 프로농구 공식 개막전에서 다시 한 번 교차됐다. ▲ 함지훈, 환상적인 데뷔전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선수들 칭찬에 인색하다. 당근보다는 채찍을 드는 것으로 예부터 유명했다. 하지만 올 시즌을 앞두고 유 감독답지 않게 한 선수를 칭찬하느라 입에 침이 말랐다. 함지훈이었다. 허풍은 커녕 농담도 잘 하지 않는 유 감독이었기에 농구팬들은 함지훈이 얼마나 위력을 보여줄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함지훈의 공식 포지션은 토종선수들이 사장되기 쉬운 센터. 하지만 함지훈은 데뷔전부터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30분37초를 소화하며 18점·8리바운드·1블록슛으로 맹활약한 것이다. 특히 18점은 팀 내에서 김효범(20점) 다음으로 많은 득점이었다. 1쿼터 막판 교체 출장한 함지훈은 2쿼터 1분께 이동준과의 1대1 매치업에서 절묘한 스핀무브에 이른 골밑 레이업으로 데뷔 첫 야투를 성공시켰다. 범상치 않은 출발이었다. 자신감이 붙은 함지훈은 골밑에서 위협적인 움직임으로 페인트존을 야금야금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의 매치업 상대도 어느덧 외국인센터 로버트 브래넌으로 바뀌어 있었다. 2쿼터 막판에는 재빠르게 단독 속공으로 버저비터까지 성공시키는 기민함을 발휘했다. 3쿼터에도 외국인선수 리온 트리밍햄을 상대로 과감한 포스트업으로 골밑 득점을 올렸고 역시 토종 빅맨인 주태수(200cm)를 제치고 돌파 득점까지 했다. 장신선수답지 않게 속공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해 마무리까지 곧잘 해냈다. 벤치에서 시작했지만 1쿼터 막판부터 4쿼터 종료 때까지 함지훈은 코트를 지켰다. 4쿼터 막판 승부처에서 유재학 감독은 외국인선수 키나 영과 케빈 오웬스를 제쳐두고 함지훈을 공격 옵션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올 시즌 외국인선수 수준이 크게 떨어진 것도 한 요인이지만 그만큼 함지훈의 성장세가 빠르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비단 득점력뿐만 아니라 장신선수치고는 볼 핸들링이나 키핑력도 매우 안정적이었다는 점 역시 함지훈을 크게 돋보이게 하는 대목. 기본기가 좋은 선수답게 골밑에서 피봇플레이나 리바운드 그리고 패스웍까지 수준급이었다. 유재학 감독이 칭찬을 아끼지 않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사실 함지훈이 드래프트에서 10순위까지 미끄러진 것은 굉장히 의외였다. 중앙대에서 대학 최고의 빅맨으로 명성을 떨쳤기 때문이다. 외국인선수 선발제도의 변화로 토종 빅맨의 가치가 상승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점프력이나 탄력 등 운동능력이 떨어져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평이 있었지만 10순위로 떨어질 정도로 홀대받을 기량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히려 모비스에 입단한 것이 팀이나 함지훈 개인에게 득이 되고 있는 모습. 물론 이제 겨우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고 장단점이 분석될 시즌 중반부터는 견제를 받으며 고전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특급 토종빅맨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모비스에게 함지훈의 존재는 크게 다가온다. ▲ 이동준, 실망스런 데뷔전 드래프트에서 이동준을 지명한 오리온스는 쾌재를 불렀다. 인천 전자랜드와 트레이드를 통해 상위 지명권을 얻은 것이 결과적으로 이동준이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동준의 가세는 전희철 이적 이후 팀의 오래된 아킬레스건이 된 높이와 스몰포워드 포지션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카드로 보였다. 혼혈선수로서 귀화하자마자 국가대표에 발탁될 정도로 기량을 인정받은 이동준이었기에 믿음은 더욱 컸다. 시범경기에서도 이동준은 평균 22.0점·8.0리바운드로 가능성을 확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공식 개막전에서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해 실망을 남겼다. 27분45초를 소화했지만 5점·3리바운드·1블록슛을 기록하는 데 그친 것이다. 함지훈처럼 벤치에서 개막전을 맞은 이동준은 역시 1쿼터 막판 교체출장했다. 교체되자마자 함지훈과 매치업을 이뤘다. 농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순간. 그러나 이동준은 함지훈과의 매치업에서 공격 리바운드를 하나 잡아낸 것을 제외하면 딱히 눈에 띄는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공격에서 위치 선정이나 움직임이 어정쩡해 오리온스의 조직농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골밑 포스트업 후 슛으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좁은 지역에서 의미없이 볼을 빼 공격의 흐름을 끊기 일쑤였다. 야투도 4개 중 하나를 넣는 데 그쳤고 자유투도 6개 중 3개를 놓치는 등 슛감도 좋지 않았다. 이동준으로서는 포지션의 정체성도 확립되지 못한 모습이었다. 특히 외국인선수 한 명 그리고 주태수까지 함께 코트에 투입된 2쿼터에는 여러 차례 동선이 겹치며 효율성에서 의문을 자아냈다. 이 부분이야 팀의 전술적인 문제로 차치하더라도 빅맨으로는 기본기가 부족한 모습이었고 스윙맨으로는 슈팅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공을 가지고 플레이한 경우도 적었지만 공을 받아도 상대 수비에 위협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수비에서도 모비스 외국인센터 오웬스를 상대로 몸싸움에서는 밀리지 않았지만, 오히려 함지훈을 상대로는 테크닉에 말려들며 고전했다. 좌우 움직임을 견제하는 ‘가로 수비’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인선수는 한 경기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다. 애초부터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었고, 이동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감독의 말대로 공식 개막전이라는 부담감에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것도 플레이에 지장을 주었다. 함지훈과 달리 처음부터 많은 화제를 뿌리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동준이었으니 개막전의 부담감은 이루 설명할 수 없었을 터. 심장이 굳으면 몸도 굳기 마련이다. 부담감과 조급증을 떨친다면 곧 숨은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이동준이 갖고 있는 하드웨어와 운동능력은 가르쳐서 얻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함지훈이 지난 18일 개막전서 이동준의 골밑슛을 저지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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