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라이벌' 김재현-김동주, 첫 KS 충돌
OSEN 기자
발행 2007.10.20 08: 36

[OSEN=이상학 객원기자] 1993년 고교야구는 ‘좌재현-우동주’로 명명할 수 있다. 일찌감치 될 성 부른 떡잎으로 인정받은 그들은 한국야구를 짊어지고 나갈 좌타자와 우타자로 미래를 기약했다. 당시 신일고의 김재현(SK·32)과 배명고의 김동주(두산·31)가 그 주인공들이었다. 이미 고교시절부터 유망주 수준을 넘어선 그들은 그때부터 라이벌로 비견됐다. 1994년 고교졸업 후 프로와 대학으로 진로가 엇갈리며 각자의 길을 걸었지만 고교시절의 기대를 입증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드디어 ‘가을의 고전’ 한국시리즈에서 정면충돌한다. 김재현과 김동주가 한국시리즈에서 대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 오래된 또는 희석된 라이벌 김재현과 김동주는 고교시절부터 오래된 라이벌이다. 함께 고교무대를 누비던 당시 광주일고 이호준도 타격에 재능을 보였지만 놀라운 배트스피드를 자랑한 김재현과 파워와 기술을 두루 겸비한 김동주의 양강구도를 깰 수는 없었다. 두 까까머리 고교선수를 놓고 스카우트 전쟁도 뜨거웠다. 연세대 진학이 유력했던 김재현은 고졸선수 계약 마감 하루를 앞두고 LG와 계약금 9100만 원에 입단을 확정지었다. 당시 고졸선수 역대 최고 계약금이었다. 반면 김동주는 고려대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두 천재타자의 희비가 처음으로 엇갈린 순간이었다. 김재현은 1994년 프로 데뷔 첫 해부터 21홈런-21도루로 20-20 클럽에 가입하는 맹위를 떨쳤다. 사상 첫 20대 미만 두 자릿수 홈런을 ‘21’이라는 숫자로 장식한 것에서부터 ‘역시 김재현’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소속팀 LG도 김재현에 유지현·서용빈 등이 함께 신바람 야구를 주도하며 프로야구 전체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프로로 직행한 김재현의 화려한 나날을 먼발치에서 지켜본 김동주도 대학에서 차근차근 기량을 다듬었다. 특히 국제대회 때마다 대표팀 부동의 4번 타자를 맡으며 킬러 본능을 발휘했다. 1998년 OB 입단 당시 계약금은 무려 4억 5000만 원으로 이름값과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오래된 라이벌이었지만 그 라이벌 전선은 희석된 감이 없지 않았다. 2003년까지 LG와 두산이라는 잠실 라이벌이 소속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교시절만큼 라이벌로 크게 부각되지는 못했다. 포지션과 스타일에서 오는 이질감이 가장 큰 이유였다. 김재현이 외야수이자 중장거리형 타자였던 것에 반해 김동주는 내야수이자 거포형 타자였다. 물론 두 선수 모두 3할대 타율에 두 자릿수 홈런을 때릴 수 있을 정도로 힘과 정교함을 겸비했지만 묘하게 엇갈린 행보를 거듭하며 함께 날지 못했다. 서로 부상이 엇갈렸고, 김재현이 FA 대박을 터뜨리며 SK로 이적할 때 김동주가 돌연 은퇴를 선언하는 등 보이지 않게 계속 엇박자를 그렸다. ▲ KS를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 올 시즌 김재현과 김동주는 다시 한 번 제대로 엇갈렸다. 김재현은 젊은 선수들에게 밀려 그만 자리를 잃고 말았다. 타격부진을 이유로 2군에만 두 차례나 다녀왔다. 올 시즌 84경기에서 타율 1할9푼6리·5홈런·19타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김재현이라는 이름값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다. 반면 올 시즌을 끝으로 FA로서 자유의 몸이 되는 김동주는 119경기에서 타율 3할2푼2리·19홈런·78타점으로 맹활약했다. 특히 출루율에서 전체 1위(0.457)에 올랐으며 장타율과 출루율을 합한 OPS에서도 3위(0.991)에 올랐다. 3루수로서 풀타임을 보내며 거둔 성적이라 더욱 고무적이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김동주의 위력은 계속됐다. 김동주는 한화와의 플레이오프 3경기에서 13타석에 들어섰지만 타수는 6개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7타석에서 볼넷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는 2개의 고의사구도 포함돼 있었다. 한화 투수들은 철저하게 김동주를 ‘왕따’시켰다. 하지만 이에 의기소침하지 않고 김동주는 2차전과 3차전에서 공격적인 베이스러닝으로 자신을 왕따시킨 한화의 허를 찔렀다. 두 차례 베이스러닝이 모두 결정적인 득점으로 연결돼 더욱 돋보일 수 밖에 없었다. 김동주는 페넌트레이스에서 SK를 상대로도 52타수 18안타, 타율 3할4푼6리·4홈런·12타점·14볼넷으로 가공할 만한 위력을 떨쳤다. 팀에서 타율이 가장 높고 홈런도 가장 많았다. 특히 홈런 4개 중 3개가 승부를 가른 결승홈런이었다. 김동주에 비해 김재현은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김재현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한국시리즈 같은 큰 경기에서는 김재현의 노련미가 분명 빛을 발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특히 김재현은 LG 시절인 2002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고관절 무혈괴사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대타로 나와 2루타성 안타를 치고 절뚝거리며 1루 베이스까지 간 부상투혼으로 당시 LG 사령탑이었던 김성근 감독과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긴 바 있다. 올 페넌트레이스에서도 김재현은 두산을 상대로 비교적 괜찮았다. 45타수 9안타로 타율은 2할밖에 되지 않았지만, 팀에서 가장 많은 10개의 볼넷을 얻어냈고 결승타도 2개나 쳤다. 김동주는 올 시즌 종료 후 일본 진출 가능성이 있다. 고질적인 고관절 부상으로 많은 훈련량을 소화하는 데 한계가 있는 김재현은 전성기가 지나 쇠퇴기에 접어드는 시점이 더욱 빨라질지 모른다. 어쩌면 이번 한국시리즈는 ‘고교 라이벌’ 좌재현-우동주가 정면으로 맞대결하는 마지막 무대가 될 수도 있다. 이번 한국시리즈를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셈이다. 김재현-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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