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영화 제작자들이 줄지어 만화가게로 달려가고 있다. 관객들의 눈길을 확 잡아끌만한 만화 원작을 찾기 위해서다. 지난해 한국영화 사상 최다인 110편이 제작되는 등 물적 팽창을 겪는 와중에 시나리오 고갈이란 후유증까지 함께 겪는 셈이다. 올해 초 최고 흥행작 '미녀는 괴로워'는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청소년 사이에서 화제를 모은 일본 영화 '데스 노트'도 마찬가지다. 코믹 대국으로 불리는 일본의 경우 인기 만화의 드라마나 영화화는 일찍부터 보편화됐다. 이에 비해 국내 톱 만화가의 작품에만 매달렸던 한국 영화계도 점차 중견 신인 만화가에게로까지 구애의 손길을 넓혀가는 중이다. 지금까지 만화 원작의 대표적 흥행영화로 이현세 '공포의 외인구단'(이장호 감독)과 허영만 '타짜'(최동훈 감독) 정도가 꼽히는 게 그 단적인 예다. 이현세와 허영만은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 만화계의 베스트셀러 작가들 가운데 투 톱이다. 올 여름에는 일반에 다소 생소한 강경옥 화백의 공포물 '두사람이다'가 영화로 만들어졌고 허영만의 '식객'이 개봉을 준비중이다. 인터넷 연재로 유명해진 강풀 작가의 작품들도 영화화 작업이 한창 진행중에 있다. 현재 충무로 원작 섭외 0순위는 허영만 화백. 지난 1997년 정우성 고소영 주연의 하이틴물 '비트'로 흥행 물꼬를 트더니 그의 베스트셀러 시리즈 1부를 영화로 만든 조승우 김혜수 주연의 ‘타짜’는 지난해 추석 때 전국 800만명 관객을 동원했다. 늦가을에는 단행본 70여만부 판매 기록을 가진 ‘식객’이 막을 올린다. 그래서 영화 제작사들은 어떻게든 그의 원작 만화 판권을 따내기 위해 눈도장을 찍고 있다. 긴 세월 활동해온 한국만화 최고 화백답게 그의 작품 종류는 다양하고 그 내용과 깊이가 웬만한 소설 뺨치기 때문이다. 허 화백의 작품 창고에는 아직도 수많은 보물이 남아 있다. ‘타짜’와 ‘비트’에 견줘서 절대 뒤지지않을 원작 만화들이다. 이 가운데 그의 출세작이나 다름없는 ‘각시탈’(1974년) 판권은 김성수 감독이 가져갔다. 일제시대 양민을 괴롭히는 일본군을 상대로 ‘조로’ 이상의 활약을 펼치는 한 고독한 영웅의 이야기다. 김 감독은 "어렸을 때 읽은 '각시탈'은 언제나 내 머릿속에 영화 소재로 맴돌고 있었다. 촬영 기술이나 제작비 때문에 미루고 있었지만 이제는 여건이 갖춰졌다"며 조만간 시나리오와 캐스팅 작업에 나설 예정을 밝혔다. 허 화백의 작품 목록에는 이미 영화화된 만화를 빼고도 '변칙복서' '태양을 향해 달려라' '퇴역전선' '카멜레온의 시' '고독한 기타맨' '미스터Q' '세일즈맨' '오늘은 마요일' '오!한강' '48+1' 등 스포츠와 기업, 정치,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수십편에 달한다. mcgwire@osen.co.kr 영화 '식객' 출연진과 함께 한 허영만 화백(가운데 빨간 옷) 쇼이스트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