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14년 전의 이종범을 보는 듯했다. 지난 22일 문학구장에서 열렸던 2007 한국시리즈 1차전을 본 야구팬들이라면 두산 톱타자 이종욱(27)의 화려한 주루플레이를 보면서 예전 누구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바로 '발야구 시리즈'로 유명했던 지난 93년 삼성과 한국시리즈에서 당시 해태의 우승을 이끌고 MVP를 따낸 이종범(37)이다. 당시 건국대를 졸업하고 입단한 이종범은 정규시즌서 타율 2할8푼, 73도루를 작성했다. 신인왕은 양준혁에게 내줬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최다인 도루 7개를 기록, 신인 최초로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1승1무2패로 몰리던 상황에서 김응룡 감독은 이종범의 발을 최대한 이용, 거함 삼성을 무너뜨렸다. 당시 이종범은 5차전부터 바람처럼 그라운드를 누볐다. 1-0으로 앞선 3회말 좌전안타로 출루하자 연거푸 2루와 3루를 훔쳤다. 그리고 홍현우의 2루수 뒤 짧은 플라이 때 곧바로 홈에 대시, 신기에 가까운 득점을 성공시켰다. 이 득점이 사실상 승부를 갈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종범의 발은 마지막 7차전도 화려하게 수놓았다. 1회말 중전안타로 출루하자마자 2루 도루를 성공시켰고 좌전안타로 홈을 밟았다. 3회말에서도 우전안타로 나가자 2루 도루에 성공했고 후속타로 추가 득점을 올렸다. 2승1무1패로 첫 한국시리즈 우승 희망에 들떠 있었던 삼성은 잠실구장에서 이종범의 발에 신경쓰느라 내리 3연패를 당해 무릎을 꿇었다. 그로부터 14년 만에 한국시리즈서 비슷한 발의 신화가 다시 쓰여질 조짐이다. 두산 이종욱은 22일 1차전에서 이종범의 신기에 가까운 발 플레이를 재현했다. 1회초 좌전안타로 출루한 뒤 고영민의 우중간 2루타로 가볍게 홈을 밟은 이종욱은 3회 실책으로 출루한 뒤 도루에 성공, 특유의 발야구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압권은 1-0으로 앞선 5회초. 1사후 중전안타로 출루, 2루 도루에 성공했고 폭투로 3루까지 진출했다. 연속볼넷으로 만들어진 1사만루에서 김동주의 2루 베이스를 살짝 넘어가는 2루수 짧은 플라이 때 번개처럼 홈을 파고 들어 득점을 올렸다. 이종범이 93년 5차전에서 보여준 발야구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이종욱은 앞으로도 두산 최고의 키플레이어로 꼽힌다. 93년 이종범의 발의 위력은 5차전부터 발현됐고 이종욱은 1차전부터 위력을 발휘했다. 당시 삼성이나 올해 SK는 이종범과 이종욱에 대해 철저한 준비를 하고서도 막지 못했다. 그러나 이종욱이 발의 신화를 완성하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우승과 함께 MVP까지 멀고 먼 산을 넘어야 된다. 겨우 1차전이 끝난 상황에서 향후 SK의 되치기에 당할 수도 있다. 표적으로 떠오른 이종욱은 보다 집요하고 철저한 견제에 무너질 수도 있다. 이종욱이 또 한번의 발의 신화를 엮을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sunny@osen.co.kr 이종범-이종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