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의 순간은 아주 하찮아 보이는 것에서 찾아 온다. 큰 경기일수록 작은 실수 하나가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도 우리는 숱하게 목격했다. 23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20007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2차전은 감독의 의지와 선수의 집중력이 어우러진 두산이 ‘집념어린 승리’를 챙겼다고해도 지나치지 않다. 3-3동점이던 6회 초 무사 1, 2루에서 두산은 5번 홍성흔에게 초구에 치고 달리기를 걸었다가 실패하자 2구째에 보내기번트를 지시했다. 홍성흔(30)은 초구와 2구째에 연거푸 파울볼을 냈다. 보통 같으면 이 대목에서 강공으로 전환할 법도 했건만 두산 김경문 감독은 홍성흔을 믿고 맡겼다. 홍성흔은 투 스트라이크에서 쓰리번트를 감행했다. 결국 홍성흔이 3구째에 기어코 번트를 성공했고, 최준석의 삼진 후 2사 2, 3루에서 이대수가 결승점이 된 2타점짜리 중전 적시타를 쳐냈다. 홍성흔의 번트 하나가 이 경기의 향방을 결정적으로 뒤바꾸어놓는 징검다리 구실을 한 것이다. 감독의 집념과 선수의 집중력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장면이었다. 김경문 감독은 경기 후 “선수가 스스로 선택해서 해주니까 너무 고마웠다”면서 “희생해서 연결해주는 자세가 중요하다. 조그만 것이지만 귀중한 점수로 연결됐다”고 주장 홍성흔에게 공을 돌렸다. 반면 SK 김성근 감독은 평소와는 달리 2-2 동점이던 3회 선두타자가 출루했으나 강공책을 펴다가 더블플레이(이진영의 병살타)를 당했고, 3-6으로 뒤져 있던 6회 무사 1, 2루에서도 강공 실패로 단 한 점도 얻지 못했다. 비록 3점 뒤져 있었으나 아직 중반전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보내기를 해놓고 1사 2, 3루에서 작전을 펴 추격을 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김성근 감독은 “선수를 믿고 맡겼는데 결과적으론 감독이 잘 못한 것이다”고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설명했다.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는 페넌트레이스 2위였던 주니치 드래건스가 리그 우승팀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클라이맥스시리즈 스테이지2(플레이오프격)에서 3승 무패로 제압하고 일본시리즈로 올라갔다. 승부라는 게 항상 상황이 종료되면 이런저런 군말이나 뒷말이 있게 마련이다. 주니치와 요미우리의 경우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주니치는 요미우리와의 클라이맥스시리즈를 앞두고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이 삭발을 단행했다. 이병규도 머리를 짧게 깎고 경기에 임했다. 오치아이 감독의 의지와 집념을 읽은 주니치 선수들은 악착같이 뛰었다. 이병규는 2차전에서 쐐기 솔로홈런 포함 3타점을 올렸다. 주니치는 무서운 집중력을 과시하면서 상대적으로 나약한 플레이로 지레 주눅들어버린 요미우리를 마음껏 공략, 2년 연속 일본시리즈 티켓을 거머쥐었다. 요미우리 와타나베 구단주가 뒤늦게 요미우리의 감독 작전 부재와 용병 실패론을 거론하며 자책했지만 열차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무서운 응집력을 보이고 있는 두산과 주니치는 올해 포스트시즌 승부의 흐름에서 닮은 꼴 행보를 보이고 있다. chuam@osen.co.kr 23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2차전 6회초 무사 1, 2루에서 홍성흔이 쓰리번트를 성공시키고 있다. /인천=손용호 기자spjj@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