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연승 SK, '달라진 분위기-달라진 경기력'
OSEN 기자
발행 2007.10.28 08: 41

[OSEN=이상학 객원기자] '즐기는 야구와 화합의 야구'. SK 김성근 감독이 강조한 한국시리즈 출사표 중 하나가 바로 ‘즐기는 야구’였다. 한국시리즈라는 최고의 무대에 어울리는 최고의 경기력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즐기는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플레이가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SK는 문학 홈 1·2차전에서 불의의 2연패를 당하며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페넌트레이스 종료 후 보름 여 동안 휴식을 취하는 바람에 경기 감각이 무뎌졌고, 한국시리즈라는 중압감에 젊은 선수들이 짓눌린 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SK는 잠실 원정 3~5차전에서 대반격에 성공하며 내리 3연승, 전세를 뒤집었다. 그 중심에 즐기는 야구가 있었고 그 이면에는 화합의 야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 즐기는 야구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1·2차전을 승리한 팀은 모두 11차례 있었다. 이들이 우승한 사례는 100%. 4전 전승 시리즈가 4차례였으며 4승 1패 시리즈도 3차례였다. 확률은 두산을 향해 웃고 있었다. 하지만 SK는 3연승으로 분위기를 대반전시켰다. 3차전에서 극도의 긴장감을 즐긴 마이크 로마노와 상대팬들의 집중적인 야유에도 흔들리지 않은 정근우의 활약이 특히 돋보였다. 게다가 4차전에서 다니엘 리오스를 상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견된 김광현이 7⅓이닝 9탈삼진 무실점이라는 괴물투로 선발승을 따내며 한국시리즈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SK 쪽으로 틀었다. 특히 김광현의 피칭은 모두가 놀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고 여유가 넘쳐흘렀다. 경기 내내 마운드에서 미소를 잃지 않을 정도로 경기를 즐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경기 후 김광현은 “고교 때처럼 마운드에서 즐기자는 마음으로 던졌다. 남은 한국시리즈에서도 기회가 온다면 더 즐기려고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고참 김재현은 “오늘의 주인공은 (김)광현이다. 같은 팀 선배 입장에서 볼 때 정말 멋있었다. 나도 경기를 즐겼지만 나보다 더 경기를 즐기는 스무살 (김)광현이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SK 선수단의 분위기도 거짓말처럼 되살아났다. 김재현에 따르면 3차전에서 반격의 1승을 올린 후 팀 사기가 올랐다. 1승이라는 부담을 해결하자 꽉 낀 정장을 입은듯한 답답함과 부담에서 벗어났다. 3차전 빈볼사태에 따른 난투극도 결과적으로 SK에 득이 됐다. 이호준은 “두산도 팀 단합이 잘 된다고 하지만, 우리팀도 빈볼사태 같은 일이 생길 때마다 잘 뭉친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몇몇 선수들에서 비롯된 즐기는 야구의 나비효과는 침체된 팀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페넌트레이스 때처럼 선수단 전체가 경기를 즐기자 결과도 좋았다. 김성근 감독의 말대로 즐기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자 좋은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 화합의 야구 팀 분위기가 달라지면 경기력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1·2차전에서 SK 타선은 11차례 득점권 찬스에서 볼넷 하나를 얻은 것이 전부였다. 득점권 타율은 0이었다. 하지만 3~5차전 3경기에서 SK는 41차례 득점권 찬스에서 13안타·3볼넷·1사구를 기록했다. 득점권 타율은 3할5푼1리였다. 찬스 때마다 헛방망이를 휘두르며 맥없이 물러나던 타자들의 방망이 끝에 집중력이라는 기운이 감돌자 두산 투수들도 어찌할 도리를 찾지 못했다. 상대 투수에 따라 적극적인 타격이 효과적으로 주효했지만 무엇보다 팀 배팅과 동료 타자들을 믿는 ‘화합의 야구’ 효과도 빼놓을 수 없었다. 한국시리즈 3~5차전에서 각각 2루타·홈런·3루타를 하나씩 터뜨리는 결정적 활약을 펼친 김재현은 “좋은 타자들이 뒤에 있기 때문에 주자를 한 베이스라도 더 보내겠다는 생각으로 타격했다. 동료들끼리 서로 해결하기보다는 뒷 타자들에게 믿고 기회를 넘겨주자는 마음이 강했다”고 말했다. 5차전에서 김재현이 터뜨린 결승 3루타도 이 같은 팀을 위한 마음에서 비롯됐다. 김재현의 3루타는 이호준의 2루타까지 유도했다. 김재현이 3루까지 진루한 만큼 외야 희생플라이를 친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타격한 게 결과적으로 쐐기 2루타로 이어진 것. 화합의 야구가 그대로 적중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화합의 야구를 주도한 것은 역시 베테랑들이었다. 한국시리즈의 주역으로 떠오른 김재현을 비롯해 박경완·이호준·정경배 등 한국시리즈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선수들이 젊은 선수들과 함께 잘 뭉쳤다. 김재현이 엄한 선배, 이호준이 즐거운 선배로 팀 분위기를 다잡았다. 특히 김재현의 경우에는 페넌트레이스 때 부진으로 소위 ‘말발’이 먹히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때 후배들을 묵묵히 도와준 것이 한국시리즈에서 후배들이 잘 따르고 도와주는 이유가 된 것 같다”며 겸손하게 설명했다. 인고의 세월을 참고 기다린 인내의 결실이 지금의 김재현과 SK로 하여금 화합의 야구를 할 수 있게끔 만든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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