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주인공은 항상 감독의 이상형이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이기도 한 영화 ‘색, 계’의 이안(53) 감독이 다음달 8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29일 오후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안 감독은 “좋은 배우가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고 운을 뗀 뒤 “양조위는 모든 감독의 꿈이다. 양조위의 흡입력 있는 눈이야말로 영화 속 두려움을 함축하고 있는 증오를 표현해내는데 최적의 매개체다”고 양조위를 캐스팅한 것에 대해 흡족함을 드러냈다. 이어 “대개 영화 속 주인공은 항상 감독의 잘생긴 이상형과 닮아있다”고 전한 뒤 자신과 가장 닮은 영화 속 주인공으로 ‘와호장룡’의 주윤발을 꼽아 주위에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번 ‘색, 계’에서는 세 등장인물이 모두 나의 분신이라 헷갈릴 때가 종종있다“고도 했다. 다음은 이안 감독과의 일문일답. -배우 양조위가 지금까지 작업했던 감독중에 가장 혹독했던 감독이라고 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양조위가 그렇게 표현한 것은 존경을 넘어선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기분이 좋다. 극중 양조위의 연기는 이제까지의 양조위의 연기와는 다른 타인이 봤을 때 확고히 느낄 수 있는 변화된 캐릭터다. 양조위로서는 북경어와 지금까지와는 다른 악역을 연기한다는 것도 힘들었을테지만 내가 양조위를 다양한 캐릭터로 변화시키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알다시피 양조위라는 배우는 모든 감독의 꿈이지 않나. -7년만에 한국을 방문했는데 소감이 어떤가. 달라진 게 있는가. ▲7년전에 왔을 때도 여기 신라호텔에서 묵었다. 그래서 많이 친숙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용산 CGV에서 젋은 층의 관객의 에너지와 열기를 느낀 것이었다. 아울러 94년, '음식남녀'로 최초방문했을 때는 당시 영화 장르가 무협 판타지였지만 이번 ‘색, 계’는 심각한 영화라 그런지 느낌이 조금 다른 것 같다. 또한 그때만해도 중국말로 통역을 하는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영어로 통역하는게 사람들의 인식상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한국말 중에서도 영어가 섞여있는 걸 느꼈는데 94년도보다 지금의 한국이 더 서구화 되어있는 걸 느꼈다. -중국의 소설을 가지고 작품화를 했는데 어떤 부분에서 부담이 됐고, 또 원작에서 추가된 부분은 어떤 것인가. ▲작가 장 아이링을 특별히 좋아해서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 작품은 장 아이링의 집필 말기에 쓴 28페이지에 걸친 단편집이고 아울러 25년에서 30년에 걸쳐쓴 자서전적인 이야기다. 영화로 옮길 수 있는 영화적인 소재를 많이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정체성이 연기로 인해 또다른 정체성으로 변화하는 스토리 전개가 도전적이라 느낀 것도 한몫했다. 사실 영화화하고 싶었지만 중국 사람들의 반응이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애국심과 일본에 대한 저항심 그리고 여성의 성정체성을 함께 저울질해서 표현해내고자 하는 것이 힘들었다. 나름 원작에 충실히 하면서 살과 피를 얹었다. 소설에는 없는 부분은 살인하는 장면과 극중 탕웨이가 처음으로 보석상에 가는 것이다. 탕웨이가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 처녀의 성을 잃어버리듯 남학생 동료들도 폭력적인 살인을 통해 순수를 잃어버린 것처럼 표현하고자 했다. 이 장면들은 극의 클라이맥스를 주기 위해 꼭 필요했다. 아울러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 꿈에서 깨어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중국에서는 삭제된 버전으로 상영되는데 감독이 지향하는 바가 묻힐 것도 같다. 그런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장 극적인 신을 뺌으로 인해서 영화의 무게 중심이 달리 표현될까봐 우려가 된다. 하지만 중국에서 개봉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고 감사하다. -등장인물의 관계가 정사신을 통해 다른 관계로 발전하는 형식에 대한 감독의 생각은. ▲인간의 성적인 관계는 육체의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화학적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매개체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관계의 첫 번째 관문이라 생각한다. ‘색, 계’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은 억누르지만 항상 그리워하는 사랑이다. 보여지지 못했던 사랑이 전작인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면 그것을 부정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색계다. 한마디로 '브로크백 마운틴'은 천국의 사랑이요. 색계의 사랑은 지옥이다. -여주인공 탕웨이가 감독님의 분신이었다고 했는데 감독님이 지금까지 연출해왔던 작품중에 자신과 닮았거나. 그런 경험을 녹여낸 작품이 있는가. ▲와호장룡에 있는 주윤발과 가장 닮았다. 주인공은 항상 감독의 잘생긴 이상형이다. 이번에는 여자 배우를 통하니 기분이 조금은 야릇하다. ‘색, 계’의 세 등장인물은 다 나의 분신이다. 이성적인 면에서는 왕리홍, 감성적으로는 탕웨이 그리고 왕조위는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정사신을 연출할 때는 세사람의 분신이 겹쳐져서 매우 혼란스러웠다. 세 명의 캐릭터 중에서 나의 가장 외향적인 성향을 띄는 것은 탕웨이고 가끔 영화 작업을 할때는 스태프를 혹독하게 다그쳐 양조위의 악역처럼 포스가 나오기도 한다. -많은 감독들이 연륜이 쌓이면서 더 보수적이 되곤 하는데 감독님은 왜 더 자극적이고 힘든 감정의 영화를 만드는가. ▲젊었을 때는 소극적이고 대담하지 못해 숨겨진 자신의 모습을 꺼내지 못했다. 이제 중년을 넘어서는 표현하는데 있어 자연스러워졌다. 예전에는 말할 수 없던 것들을 지금 나이에 와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 처녀작은 황혼에 가까운 노인의 사랑이야기를 다뤘었다. 젋을 때 만들지 않은 극적인 영화를 이제서야 만들고 있는 나 자신은 내가 생각해봐도 남들과는 패턴이 다른 것 같긴 하다.(웃음) 돌이켜보면 많은 희생과 고통이 따르는 작품을 해왔고 무거운 소재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다보니까 어떨 때는 내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되지만 앞으로도 개인적인 욕망의 표출뿐만이 아닌 예술적으로도 승화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영화를 끝나고 나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체력이 고갈돼 두 배우와 나 또한 모두 한달 넘게 앓았다. -아카데미 외국어 상 카테고리에서 제외가 됐다. 탈락의 아쉬움이 있었을 것 같다. 미국 관객들에게 흥행이 될 수 있는 건데 아쉽지 않느냐. ▲미국 흥행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쉽다. 아카데미서는 대만과 홍콩, 미국 3개국 합작 영화이지 외국영화가 아니라 생각하는 것 때문에 제외가 된 것 같다. yu@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