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6경기 모두 등판했다. 그만큼 신뢰를 받았다. SK의 16년차 최고참 투수 가득염(38)은 지난해 이맘때 은퇴 위기에 몰렸다. 대전고 동국대를 거쳐 지난 1992년 입단, 고향팀처럼 생각하며 15년간 활약한 롯데에서는 이미 방출 통보를 받은 상황이었다. 롯데는 15년간 불펜을 지킨 가득염에게 은퇴와 함께 코치 연수를 제의했다. 그러나 보장된 길을 뒤로하고 가득염은 현역 생활 지속이라는 험난한 가시밭길을 택했다. 결국 롯데에 방출된 뒤 연봉 8000만 원을 받는 조건으로 SK에 입단했다. SK가 가득염을 영입할 때만 하더라도 말이 많았다. 이미 롯데에서도 전력 외로 판명한 선수였다. 프로 16년차 베테랑으로 미래가 기대되는 것도 아니었다. 롯데에서 15년간 불펜에 없어서는 안 될 소금과 같은 원포인트 릴리프로 활약했지만 어디까지나 롯데에 왼손 투수의 희소가치가 컸기 때문이었다. 지난해까지 가득염의 15년간 통산성적은 31승46패10세이브 방어율 4.54였다. 롯데에서 마지막이었던 지난해에도 3승3패 방어율 5.06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 시즌 가득염은 환골탈태했다. 우리나이 39살이 되어 생애 처음으로 팀을 옮겼지만 새로운 환경이 새로운 자극을 불어넣었다. 특히 김성근 감독과의 만남이 큰 전환점이 됐다. 김 감독은 남다른 자세로 전지훈련을 소화한 가득염을 주목했고 시즌 개막 후 중용했다. 올 시즌 SK에서 윤길현(71경기) 다음으로 많은 67경기에 구원등판한 ‘원포인트 릴리프’ 가득염은 1승12홀드 방어율 4.02를 기록했다. 4실점을 기록한 지난 6월8일 광주 KIA전을 빼면 방어율은 3.18로 내려간다. 한국시리즈에서도 가득염은 음지에서 찬란하게 빛났다. 가득염은 한국시리즈 1차전부터 6차전까지 모두 구원등판했다. 투구내용도 완벽했다. 4⅓이닝 1피안타 무실점. 좌타자 전문 스페셜리스트로서 맡은 바 임무를 100% 해냈다. 특히 두산이 자랑한 테이블세터 이종욱과 김현수를 12타수 1안타로 완벽히 묶었다. 특히 이종욱은 단 하나의 안타는 물론 볼넷도 얻어내지 못할 정도로 가득염에 당했다. 전력투구로 최고 140km대를 찍는 직구와 타자 뒤쪽에서 들어오는 슬라이더가 위력을 발휘했다. 한국시리즈에서 김광현과 함께 SK의 유이한 왼손 투수였던 가득염은 그만큼 활용가치가 컸고 등판할 때마다 완벽한 임무수행으로 제 역할을 다해냈다. 가득염에게 올 한국시리즈는 역대 세 번째였다. 롯데 입단 첫 해였던 1992년 빙그레와의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에서 3이닝 무실점이라는 평범한 기록을 남겼다. 1999년 한화와의 한국시리즈에는 1경기에서 1타자만을 상대한 것이 전부였다. 2차례 한국시리즈 모두 음지는 커녕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미미한 역할이었다. 하지만 불혹을 눈앞에 둔 올해 한국시리즈에서는 당당히 불펜의 핵으로 맹활약했다. 선수생활 지속 여부를 놓고 고민한 선수치곤 기대이상의 활약. 1992년 이후 두 번째였지만 더욱 더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는 우승이었다. 우승 후 가득염은 “롯데에서 방출된 후 힘든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할 수 있게 되어 정말 너부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가득염은 “던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즌이었다”고 올해를 되돌아봤다. 비록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없었지만, 불혹을 앞둔 나이에 현역생활을 포기하지 않은 채 음지에서 묵묵히 맡은 역할을 소화하며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일익을 담당한 가득염에게 2007년은 인간승리의 해로 기억될 만하다. 주장 김원형(가운데) 조웅천과 함께 선수단 대표로 시상식에 나선 가득염(왼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