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우승' 두산, 과제는 '미러클 지우기'
OSEN 기자
발행 2007.10.31 08: 14

[OSEN=이상학 객원기자] 포스트시즌에서 잠실구장을 장식한 대표적인 플래카드가 바로 ‘미러클 두산’이었다. 박철순의 기적적인 22연승으로 1982년 원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때부터 두산에게 미러클은 하나의 이음동의어였다. 1995년·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 1998년·2005년 포스트시즌 진출 과정 모두 기적적이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객관적인 전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시즌 내내 2위권을 지키더니 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 3연승하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SK에 사상 첫 2연패 후 4연승이라는 역전 우승의 희생양이 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한끗 부족한 미러클이었다. ▲ 원칙과 소신의 야구 두산 김경문 감독은 원칙을 강조한다. 한국시리즈에서 ‘철의 에이스’ 다니엘 리오스를 전천후로 돌릴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도 단호하게 “무조건 선발”이라고 잘라 말했다. 물론 벼랑 끝으로 몰린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는 셋업맨 임태훈을 선발로 기용하고, 리오스를 불펜에 대기시켰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최후의 열매가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는 다소 무리수를 두지 않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아직 감독으로서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는 김 감독이었기에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한국시리즈 내내 두산 타선에는 변화가 없었다. 선발 라인업에서는 1차전에서 부상이 덜 회복된 이대수 대신 오재원이, 3차전 이후에는 오른 손등이 골절되며 아웃된 안경현을 대신해 최준석이 주전으로 뛰었다. 5·6번 타순에 홍성흔과 최준석이 자리를 뒤바꾼 것을 제외하면 변화가 전무했다. 그렇다고 두산 야수들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다. 장원진·전상렬·유재웅·오재원 등이 있었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은 타순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김 감독이 끝까지 믿은 ‘쳐줘야 할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못 쳤다. 김 감독의 이 같은 무모하리 만큼 밀어붙이는 소신의 야구는 6차전 3회초에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았다. 1-0으로 앞서던 3회초 무사 1·2루 찬스에서 2번 김현수에게 번트를 지시하지 않고 강공책으로 나간 것. 김현수가 투수 앞 병살타로 물러나면서 흐름이 끊긴 두산은 결국 역전패했다. 5차전 패배 후에도 “타자들이 쳐야 이긴다. 공격적인 타격으로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 김 감독다운 결정이었지만 실패했다. 페넌트레이스에서는 척척 맞아떨어졌던 원칙과 소신의 야구가 한국시리즈에서는 안 통한 것이다. ▲ 젊은 피들의 휩쓸림 올 포스트시즌에서 두산에는 처녀 출전 선수들이 절대 다수였다.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포함된 26명 중 12명이 올해가 첫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중 6명이 주전 야수들로 채상병·이종욱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25세 이하의 젊은 선수들이었다. 임태훈과 김현수처럼 만 20살도 되지 않은 미성년자들도 포함돼 있었다. 한화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3연승으로 시리즈를 조기 종결시키며 기세를 올렸지만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는 2연승 후 4연패로 주저앉을 정도로 젊은 선수들이 한 순간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경향이 강했다. 두산으로서는 젊은 피들을 지탱해줄 베테랑들의 부재가 아쉬운 순간이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김동주·안경현·홍성흔은 물론 장원진까지 연이틀 대타로 등장해 적시타를 터뜨리며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 안경현은 몸에 맞는 공에 오른 손등이 골절되며 3차전부터 전력 외가 됐고, 김동주와 홍성흔의 방망이는 선풍기처럼 시원하게 돌았으나 허공만 갈랐다. 베테랑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이 젊은 피들도 함께 흔들렸다. 한국시리즈 3~6차전에서 두산의 팀 타율은 1할6푼8리였으며 득점은 단 3점뿐이었다. 한국시리즈에서 이슈가 된 몸쪽 승부도 결과적으로 두산에는 악재로 작용하고 말았다. 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 1·2차전까지 두산 타자들은 타석에 바짝 붙어 상대 투수들을 압박했다. 1·2차전에서 두산 타자들은 사구를 6개를 얻어냈다. SK 투수들의 제구 실수도 컸지만 그만큼 타석에 바짝 붙어 강하게 압박한 덕이었다. 그러나 이후 4경기에서 사구는 하나밖에 없었으며 SK 투수들의 몸쪽 제구도 되살아났다. 안경현의 부상 이후 두산 타자들이 위축된 감이 없지 않았다. 김경문 감독이 “몸쪽 공에 두려움을 느꼈는지 몰라도 예전보다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젊은 선수들이 분위기에서 말려들었다는 것을 잘 방증한다. ▲ 이제 미러클은 지워라 이제 한국시리즈는 끝났다. 지난 2005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4전 전패했지만 그래도 올해 한국시리즈에서는 2승을 올린 것이 위안거리라 할 만하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 부임 후 4년간 한국시리즈에 두 차례나 진출했지만 모두 결과는 좋지 못했다. 김경문 감독에게는 어쩌면 ‘준우승 감독’이라는 달갑지 않을 꼬리표가 붙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 두산이 우승한 이듬해 하나같이 성적이 추락한 것과 달리 김경문호 두산은 미래를 발견하고 가꾸는 데 성공했다. 이종욱은 이제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최강 톱타자로 완전하게 자리매김했다. 김현수는 제2의 장원진이 될 가능성을 보였다. 고영민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공수주에서 발군이었다. 채상병·최준석·민병헌 등도 각 포지션에서 확실한 주전감으로 다져졌다. 마운드로 눈길을 돌리면 임태훈과 이승학이라는 신성들을 발견했다. 김명제도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아직 젊디 젊은 이들이기에 경험이 더해지면 기량은 필히 발전하기 마련이다. 두산이 가장 크게 기대하는 대목이다. 두산으로서는 이음동의어가 된 미러클을 지우는 것이 과제가 될 전망이다. 기적은 놀랍고 아름답지만 의외이며 불안정하다. 두산이 미러클을 지워버린다면 진정한 강팀이 됐다는 것을 입증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김경문 감독의 말대로 두산은 젊으며 내년부터라도 치고 올라갈 힘이 있다. 물론 당장 올 겨울 리오스와 김동주를 잔류시키는 것이 가장 큰 과제지만, 진정으로 미러클이라는 이름을 지울 정도로 젊은 선수들이 강해진다면 한국시리즈 3수를 향한 ‘김경문호 두산’의 도전도 머지 않은 날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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