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신인왕 임태훈의 '특별함'
OSEN 기자
발행 2007.11.01 14: 00

[OSEN=이상학 객원기자] ‘김경문호 두산’은 원칙과 소신을 중시한다. 한 번 고정된 타순은 좀처럼 바꾸지 않으며 무리한 보직 파괴도 없다. 이런저런 작전을 걸기보다는 선수들에게 자율적으로 맡김으로써 창의적인 야구를 유도한다. 그런 두산에 ‘무원칙’이 하나 있었다. SK와의 2007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임태훈(19)을 선발로 올린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올 시즌 단 한 경기도 선발 등판 경험이 없는 고졸 신인 임태훈이었지만 두산의 견고한 원칙을 파괴시며 그 중요한 무대에서 데뷔 첫 선발 등판을 가졌다. 그만큼 임태훈은 특별했다. 그리고 당당히 2007년 신인왕에 올랐다. ▲ 투수 유망주 징크스 깨기 선수를 발굴하고 조련하는 데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두산이지만 투수 유망주들은 그렇지 않았다. 박명환(LG)이라는 성공 사례가 있지만 과거 류택현 손경수 문상호 황규택 노경은 김명제 서동환 등 1차 지명 또는 거액을 받은 투수들이 좀처럼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올해 계약금 4억 5000만 원을 받고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이용찬도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을 접었다. 물론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활약한 김명제나 서동환이용찬은 젊디 젊은 선수들로 여전히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스타트를 제대로 끊지 못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임태훈은 달랐다. 서울고를 졸업하고 두산에 1차 지명으로 계약금 4억2000만 원을 받으며 입단한 임태훈은 서울 지역을 대표하는 투수 유망주였다. 비록 계약금 3000만 원의 차이에서 나타나듯 1차 지명으로 두산에 함께 입단한 장충고 출신 이용찬보다 2% 정도 덜 주목받았지만 즉시전력감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2005년 김명제-서동환이라는 ‘11억 신인듀오’의 더딘 성장세에 속을 앓아야 했던 두산이었기에 기대만큼 불안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용찬의 팔꿈치 부상과 시즌-아웃은 그래서 더욱 착잡했다. 그러나 이 모든 불안과 그림자를 임태훈이 지웠다. 4월 8일 대구 삼성전에서 구원등판,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내려올 때만 하더라도 ‘괜찮네’ 수준이었다. 하지만 4월 11일 잠실 한화전에서 등판하자마자 볼넷과 안타로 위기를 자초했지만 후속 3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위기를 스스로 해결하며 위용을 뽐내기 시작했다. 이후 임태훈은 타이트한 상황에서 등판하는 경우가 늘어나더니 이윽고 프라이머리 셋업맨으로 중용됐다. 올 시즌 최종 성적은 64경기 7승3패1세이브20홀드. 홀드에서 전체 2위에 올랐으며 순수 셋업맨 중 유일하게 100이닝(101⅓)을 넘겼다. 두산의 오래된 투수 유망주 징크스를 지운 값진 성과였다. ▲ 아기곰 또는 포커페이스 두산의 어린 선수들에게는 으레 ‘아기곰’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외모에다 풋풋함마저 풍기는 모습에서는 겨울잠을 깨고 기지개를 켜는 아기곰을 연상시킨다. 올해 두산에 입단한 19살 임태훈도 당연히 아기곰이다. 그런데 조금 더 특별한 아기곰이다. 아직 어린티를 벗지 못한 외모에서는 분명 아기곰의 이미지가 풍겨진다. 하지만 마운드에만 올라가면 달라진다. 귀여운 아기곰이지만 그보다 더 성숙한 포커페이스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굳이 명명하자면 ‘귀여운 오승환’이라 할 만하다. 지난달 29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 임태훈은 4⅔이닝 5피안타 1볼넷으로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3회말 정근우와 김재현에게 맞은 홈런 두 방이 뼈아팠다. 데뷔 첫 선발등판을 큰 무대에서 가졌던 만큼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스스로 무너질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치명적인 홈런 2방을 맞고도 임태훈은 무너지지 않았다. 표정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경기 후 김경문 감독은 “어린 선수가 대관중 앞에서 제 실력을 보여줬다. 선배들도 배울만한 부분”이라고 칭찬했고, 다니엘 리오스도 “김재현에게 홈런을 맞았을 때 곧바로 잊어버리자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임태훈의 피칭도 아기곰과는 거리가 멀다. 공격적이고 거침이 없다. 이미 서울고 시절부터 묵직한 구위와 대담한 배짱을 높이 평가받았지만 생경한 프로무대에서도 이 같은 강점을 이어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앳된 외모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베테랑들을 능가하는 배짱과 포커페이스로 돌풍을 일으켰다. 하루가 다르게 불어난 체중처럼 마운드에서 공에 대한 자신감도 하루가 다르게 커졌다. SK 김광현이 마운드 위에서 미소와 함께 경기를 즐긴다면 임태훈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포커페이스로 승부한다. 묵직한 공이 더 무서운 이유다. ▲ 미래의 두산 에이스 임태훈은 지난달 31일 열린 프로야구 시상식에서 당당히 신인왕을 수상했다. 유효투표수 91표 중 무려 79표를 얻을 정도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투수로는 역대 14번째 신인왕 수상이었으며 1984년 신인왕을 수상한 윤석환 현 두산 투수코치에 이어 23년 만에 두산이 배출한 투수 신인왕이 됐다. 윤석환이 마무리투수였던 것에 반해 임태훈은 셋업맨이었다. 하지만 셋업맨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현대야구에서 보직은 부차적이었다. 무엇보다 임태훈이 웬만한 마무리투수들을 능가하는 위력을 보였다는 게 중요했다. 임태훈은 선발투수를 희망하고 있다. 한국시리즈 6차전 선발등판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컸다. 김경문 감독에게도 임태훈은 미래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모습이다. 한국시리즈 5차전을 패하며 벼랑 끝으로 몰렸을 때 김 감독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투수도 바로 임태훈이었다. 김명제도 있었지만 사람이 궁지로 내몰릴 경우에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카드를 꺼내기 마련이다. 그것이 임태훈이었다. 5차전에서 구원패를 떠안았지만 당시 김 감독은 “(임)태훈이는 잘 던졌다. (고)영민이가 호수비를 했는데 악송구가 됐다. 실책만 없었더라면 실점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친구가 무조건 막아야하는 마음이 컸던 모양”이라며 임태훈을 감쌌다. 임태훈은 신인왕 수상 소감으로 “내년에는 더 과감히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마운드에서 누구보다 당당하면서 위엄을 잃지 않는 임태훈다운 멘트였다. 여기에 신인왕 경합을 벌인 팀 선배 김현수에 대한 배려와 MVP를 차지한 리오스에 대한 깎듯한 예의도 잊지 않았다. 이제 겨우 19살 어린 투수지만 마운드에서는 물론 생활거지에서도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외모는 아직 아기곰이지만 마음은 이미 어른곰이 다 됐다. 미래의 두산 에이스로 성공적인 첫 발을 뗀 임태훈이 더욱 특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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