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도 계절 상품은 있다. 봄에는 가족, 여름에는 코믹, 가을에는 멜로, 겨울에는 철학(사상) 같은 분류가 그것이다. 그런데 갈수록 이런 계절 상품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특히 요즘같이 스산한 바람 부는 계절에는 가슴 아리는 멜로 드라마 한 편쯤 보고 싶은데 그게 영 여의치가 않다. 그 방송시기는 늦봄이었지만 ‘연애시대’ 같은 드라마를 이 가을에 볼 수는 없을까. 최근 드라마를 만드는 이들 사이에서 자조적으로 떠도는 말이 있다. “요즘 드라마는 세 장르 밖에 없다. 블록버스터이거나 사극이거나, 아니면 일일극 형태의 가족극이거나, 이 셋이 아니면 되는 게 없다”고 말한다. 기실 요즘 드라마의 판도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이 범주에 속한다. KBS 1TV 일일드라마 ‘미우나 고우나’와 KBS 2TV 주말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는 가족극에 속하고 KBS 1TV ‘대조영’과 SBS TV ‘왕과 나’, MBC TV ‘이산’은 사극의 범주에 해당한다. 또한 MBC TV ‘태왕사신기’와 SBS TV ‘로비스트’는 블록버스터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 작품 말고는 별로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도 없고, 시청률 또한 고만고만하다. 따라서 블록버스터, 사극, 가족극의 형태가 아닌 드라마는 아예 기획단계에서부터 배제되기 십상이다. 어느 인기 개그 프로의 대사처럼 “이걸로 되겠어? 사람들이 보겠어?”라는 짜증 섞인 말이 절로 튀어 나온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들이 한결같이 중장편극이라는 특징도 ‘계절 상품’의 출현을 어렵게 하고 있다. 몇 번의 연장을 거듭하고 있는 ‘대조영’, 그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는 ‘미우나 고우나’와 ‘며느리 전성시대’, 그리고 기본 50부작인 사극(왕과 나, 이산)과 최소 20부작을 넘어가는 블록버스터들…. 16부작 미니시리즈가 퇴조를 보이면서 계절적 요소를 감안해 작품을 기획하기에는 대작의 틈바구니가 너무나 비좁다. 그렇다고 이들 대작이 크게 시청자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것도 아니다. MBC ‘태왕사신기’ 정도가 대작 드라마 다운 웅장한 느낌을 줄 뿐, 나머지는 크게 새로운 감동은 없다. 대신 잘 익은 계절 과일을 맛보듯 ‘계절 드라마’를 만나는 풋풋한 즐거움은 잃어버렸다. 이에 반해 영화는 꾸준히 계절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난해 강동원 이나영이 주연해 가을 바람처럼 가슴에 파고들었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그렇고 올 가을, 마음을 살찌우고 있는 ‘행복’ ‘사랑’ 등이 그렇다. 경쟁이 되니까 대작드라마로 몰려가는 경향을 이해는 하겠으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뭔가 한 가지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 아쉽다. 이번 주말에는 영화관이나 가야겠다. 100c@osen.co.kr 요즘 드라마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대조영’ ‘태왕사신기’ ‘미우나 고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