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와 국제용 선수
OSEN 기자
발행 2007.11.03 11: 55

[OSEN=이상학 객원기자]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예선전을 준비하고 있는 김경문 대표팀 감독은 이병규에게 남다른 기대를 나타냈다. “재팬시리즈를 보고 기대가 커졌다. 스윙에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 김 감독의 말. 그러나 투수코치를 겸하고 있는 선동렬 수석코치는 부상으로 빠진 구대성의 공백을 우려했다. “구대성이 빠져 전력에 차질이 생긴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 선 감독의 말. 김 감독과 선 코치가 유독 이병규와 구대성을 놓고 남다른 기대와 아쉬움을 표한 데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이들이 이른바 ‘국제용 선수’이기 때문이다. ▲ 이병규-구대성, 대표적 국제용 선수 이병규는 야수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국제용 선수다. 왼쪽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하느라 불참한 2003년 삿포로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제외하면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부터 무려 6개 대회에서 37경기를 뛰었다. 투타를 통틀어 김동주·박재홍과 함께 가장 많은 국제대회에 참가했으며 경기출장수는 가장 많다. 무엇보다 성적이 좋다. 146타수 60안타, 타율 4할1푼1리를 기록했다. 3개 대회 이상 뛴 선수 중 가장 높은 타율이다. 게다가 15개의 사사구를 포함해 출루율도 4할6푼6리이며 2루타 8개, 3루타 3개, 홈런 4개로 장타율도 5할8푼9리에 달한다. 장타율과 출루율을 합한 OPS는 1.055로 역시 3개 대회 이상 뛴 선수 중 가장 높다. 물론 홈런 4개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한꺼번에 기록한 것이다. 이후 5개 대회에서는 홈런이 하나도 없었다. 무릎 부상 이후에는 주력도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상위타순이든, 중심타순이든 제 몫을 해낼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그만큼 국제용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돼 있다. 지난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26타수 5안타, 타율 1할9푼2리로 부진했지만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16타수 10안타로 팀 내 최고 타율(0.625)를 기록했다. 비록 대만전에서 4타수 1안타로 침묵했으나 여전히 타고난 타격감각으로 생경한 무대에서 낯선 투수들을 상대로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다. 야수 중 국제용 선수가 이병규라면, 투수 중에서는 주저할 것 없이 구대성이다. 1999년 서울 아시아선수권대회,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6년 WBC 등 3개 대회에서 10경기에 등판해 31이닝을 소화하며 3승 방어율 1.45를 기록했다. 탈삼진은 무려 34개였으며 볼넷은 7개밖에 되지 않았다. 9이닝으로 환산하면 9.9탈삼진-2.0볼넷이라는 환상의 비율이 나온다. 사실 국제대회 성적은 액면 그대로 믿을 것이 못 된다. 조용준이 3개 대회 6경기에서 방어율 제로를 자랑하며 3승을 올렸지만, 3승 모두 중국을 상대로 거둔 것이었다. 하지만 구대성은 다르다. 3승 모두 일본을 상대로 거둔 승리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두 최정예 일본이었다. 1999년 아시아선수권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정민철-문동환에 이어 3번째 투수로 7회 마운드에 오른 구대성은 3이닝 무실점으로 일본을 틀어 막고 구원승을 거두며 시드니 올림픽행 티켓 획득에 앞장섰다. 특히 8회와 9회에는 6타자 연속 삼진 처리할 정도로 위력을 떨쳤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3·4위 결정전에서는 선발 등판해 9이닝 5피안타 11탈삼진 1실점 완투승으로 마쓰자카 다이스케와의 선발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두며 한국의 동메달을 이끌었다. 구대성은 전성기를 지나 만난 지난해 일본과의 WBC 아시아라운드서도 7~8회 2이닝 퍼펙트 피칭으로 구원승을 따내며 다시 한 번 일본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전성기는 지났지만, 경험과 배짱으로 불펜에서 제 몫을 해낼 것으로 기대된 구대성이기에 대표팀으로서는 그의 공백이 아쉽게 느껴진다. ▲ 국제용 선수 세대교체 시점 도래 현재 대표팀 예비 엔트리에 포함돼 있는 선수는 모두 31명이다. 이승엽·김병현에 이어 구대성도 왼쪽 무릎 수술을 이유로 빠져 33명 중 실제로는 30명이 남았지만 여전히 베테랑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마운드에서는 박찬호·송진우·전병호·류택현 등 30대 베테랑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야수 중에는 이병규를 비롯해 박경완·진갑용·조인성·이호준·김동주·박진만·김민재·박재홍·장성호 등 상당수의 베테랑들이 남아있다. 지난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젊은 선수들 위주로 대표팀을 꾸렸다 실패를 한 데다 이번 대회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베테랑들이 중용될 가능성이 높다. 더이상 메이저리거 신분이 아닌 박찬호지만 국제용 선수로서 차지하는 메리트는 매우 크다. 방콕 아시안게임과 WBC에서 7경기에 등판해 2승3세이브 방어율 0.76을 기록했다. 특히 WBC에서는 10이닝 무실점으로 위력을 떨쳤다. 선발이든, 불펜이든 보직을 가리지 않으며 주장으로서 솔선수범할 것이라는 기대. 이외 ‘부동의 4번’ 김동주가 6개 대회 28경기에서 타율 2할9푼4리·3홈런·16타점으로 활약했다. 사사구도 대표팀에서 가장 많은 16개를 얻어냈다. ‘리틀쿠바’ 박재홍 역시 6개 대회 27경기에서 타율 3할4푼·4홈런·30타점으로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드러나는 기록은 크지 않지만 내야 수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유격수 박진만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국제용 선수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구대성·박찬호·이병규·박재홍·김동주 등 내로라하는 국제용 선수들 모두 서른 줄을 넘긴 지 오래다. 이번 대표팀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이승엽·서재응 김선우도 마찬가지다. 야구가 나이로 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젊은 선수들을 국제대회에서도 키울 필요성은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과거의 국제용 선수들은 아마추어 때 수준 높은 국제무대 경험을 수없이 쌓았지만 유망주들의 고교 졸업 후 프로 직행이 관례화되고 있는 지금은 사정이 그렇지 않다.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한 지난해 도하 아시안게임의 실패가 더욱 뼈아팠던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 젊은 선수들 중 국제용 선수로 불릴 만한 선수로는 3개 대회에서 14경기를 소화한 ‘국민 우익수’ 이진영 정도밖에 없다. 이진영 역시 타격 성적은 타율 2할9푼2리·5타점으로 평범했다. WBC에서 보여준 다이빙캐치와 홈 송구가 강렬한 크리스털이 돼 야구팬들에게 국제용 선수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하지만 실패로 규정되고 있는 지난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이대호가 22타수 9안타, 타율 4할9리·2홈런·10타점으로 위력을 떨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가장 중요했던 대만전에서도 이대호는 3루타 하나 포함해 4타수 3안타 2득점으로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류현진과 오승환에게는 그다지 떠올리기 싫은 악몽 같은 대회였다. 특히 아마추어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전에서 난타를 당한 류현진과 오승환은 국제용 선수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지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아직 최종 확정되는 않았지만 이번 대표팀에는 이대호를 비롯해 류현진·오승환·한기주·권혁·강민호·고영민·정근우·이종욱·이대형 등 젊은 선수들이 다수 포진돼 있다. 이번 대표팀을 통해 국제용 선수에도 자연스런 세대교체가 이뤄지길 팬들은 기대하고 있다. 국제용 선수도 그냥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병규-구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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