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스타 군단' SK의 환골탈태
OSEN 기자
발행 2007.11.04 09: 33

[OSEN=이상학 객원기자] 출발은 좋지 못했다. 방성윤은 또다시 난사 기미를 보였고 팀 조직력은 뒤죽박죽이었다. 홈 개막전에서부터 약체로 분류된 울산 모비스에 덜미를 잡히며 암운을 드리운 서울 SK. 그러나 더 이상 예전의 SK가 아니었다. 개막전 패배 후 파죽의 5연승을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5년 12월18일 이후 2년여 만의 5연승. 그러다보니 SK는 순위도 어느덧 2위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다. 겉멋만 잔뜩 든 스타군단이라는 평가도 이제는 옛말이다. 선수 전원이 제대로 된 하모니를 그리며 다함께 승리의 콧노래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활골탈태가 아닐 수 없다. ▲ '서장훈의 저주'는 있나? SK의 마지막 전성기는 2001-02시즌으로 기억된다. 창단 최다 11연승 행진을 벌이며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더니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대구 동양(현 오리온스)과 최종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치며 ‘아름다운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때 팀의 중심이 바로 서장훈(KCC)이었다. 서장훈이 FA가 되어 서울 삼성으로 이적한 후 SK는 5시즌 연속으로 6강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했다. 1997-98시즌부터 2001-02시즌까지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한 코리아텐더(현 KTF)와 함께 최다 기간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기록. 그래서 생긴 말이 ‘서장훈의 저주’였다. 하지만 서장훈이 나갔다고 해서 SK 전력이 약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물론 2002-03시즌에는 전력 누수가 심한 나머지 최하위로 추락했으며 2003-04시즌에도 7위에 그쳤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스타군단은 아니었으니 이해할 만했다. 하지만 2004-05시즌부터 전희철을 비롯해 조상현-임재현-황진원-전형수-박재헌 등 특급선수들이 처음부터 한솥밥을 먹으며 출발했다. 2005-06시즌 중에는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방성윤과 문경은이라는 당대 최고의 득점기계와 슈터를 차례로 데려왔다. 지난 시즌에도 유럽리그에서 명성을 떨친 루 로와 키부 스튜어트라는 특급들을 외국인선수로 영입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서장훈이 떠난 후 SK의 팀 순위는 ‘10-7-8-9-7’위였다. 10개 구단 중 6위 안에 드는 것도 SK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2004-05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계속된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는 멤버구성으로 볼 때 쉽게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조직력이 엉망이었다. 팀 야투성공률은 2004-05시즌부터 7-9-8위였으며, 트레이드마크였던 3점슛 성공률도 8-9-9위에 그칠 정도로 효율성 제로였다. 공격무기가 많은 만큼 상대보다 더 많은 득점을 넣는 공격농구를 펼쳤으나 결과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그러는 사이 감독도 연이어 교체됐다. 단순히 서장훈의 저주라기보다는 팀 전체의 문제였다. ▲ 김진 감독과 김태술의 영입 언제부턴가 SK에게는 비효율이라는 평가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아킬레스건은 가장 약한 곳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가장 강한 곳이 오히려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었다. 지난 시즌까지 SK가 그랬다. 넘치는 공격무기들을 효율적으로 분담하고 제어하지 못하는 바람에 공수에 걸쳐 뻑뻑함이 흘렀다.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오래된 격언은 농구에서도 그대로 통용됐다. 결국 SK는 지난 시즌이 끝나자마자 대구 오리온스에서 무려 6년 연속으로 6강 플레이오프에 오른 김진 감독을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우승청부사는 고사하고 6강 청부사라는 기대가 먼저 앞섰다. 그만큼 SK에게 6강의 벽은 험하고 높았다. 여기에 지난 2월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한 김태술도 가세했다. SK의 정통 포인트가드 부재를 씻어줄 카드로 드래프트 당시부터 기대를 모았다. SK는 황성인(전자랜드)-임재현(KCC) 등 전성기를 이끈 포인트가드들도 약속이라도 한듯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이후 제대로 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무엇보다 볼을 비교적 오래 끄는 그들의 성향이 공격 무기가 많은 팀의 슈터들과는 상극이었으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천재 포인트가드 6년 주기설'의 주인공 김태술의 가세는 그 자체만으로도 SK에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김진 감독과 김태술은 멤버 구성에서 지난 시즌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SK를 상위권으로 이끌며 기대치를 충족시키고 있다. 김진 감독은 오리온스 시절부터 이어온 스피드의 농구를 SK에서도 이어가고 있다. 1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경기당 평균 6.2개의 속공을 성공시키고 있는 것. 속공 허용도 평균 3.3개로 리그에서 3번째로 적을 정도로 공수전환이 빠른 팀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김태술이 있다. 달라진 SK의 업템포 농구를 선봉에서 주도하며 6경기에서 평균 12.0점·9.5어시스트·2.3스틸로 맹활약하고 있다. 어시스트와 스틸 모두 1위. 마치 김승현(오리온스)의 데뷔 시절을 연상시킨다. 공교롭게도 그 때 사령탑도 김진 감독이었으며 역시 스피드를 무기로 했다. ▲ 개인을 떠나 팀으로 이제 겨우 6경기를 치렀지만 SK는 경기당 평균 82.8득점으로 이 부문 전체 3위에 올라있다. SK가 평균 득점에서 상위권에 올라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팀 야투성공률 2위(51.5%), 팀 3점슛 성공률 1위(47.1%)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다. 특히 3점슛 시도 횟수가 경기당 평균 17.0회로 가장 적다는 것이 눈에 띈다. 확률 낮은 무리한 3점포를 남발하는 대신 한 템포 빠른 속공과 2차 속공 그리고 철저한 세트오펜스를 통해 확률 높은 공격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팀 어시스트에서 전체 2위(19.5개)에 오를 정도로 뒤얽힌 조직력이 어느새 자연의 순화주기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이어지고 있다. 김진 감독은 “비시즌에 중점을 둔 것이 속공이었다. 속공이 안 되면 2차 속공을 노리고 그것이 안 되면 세트오펜스를 시도하는 데 포인트를 맞췄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까지 SK는 공수전환이 평범했으며 중요할 때는 오히려 너무 늦었다. 그랬던 SK가 달라진 데는 이 같은 김진 감독의 주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김태술도 “대학 때는 득점에 욕심이 많았다. 패스보다 자신있는 것이 1대1 플레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팀에 슈팅력이 좋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그 선수들을 살리는 것이 임무라고 생각한다”며 정통 포인트가드의 임무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덕분에 SK는 그 어느 때보다 코트를 넓고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김진 감독과 김태술의 가세만으로 SK가 환골탈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존 선수들의 뼈를 깎는 노력과 변화에 대한 의지도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균 21.7점으로 득점랭킹 전체 4위에 랭크돼 있는 방성윤은 슛 욕심을 줄였다. 방성윤은 “득점보다는 경기 분위기에 신경쓰고 있다. 경기 흐름을 읽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득점에만 매몰된 종전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프로 3년차가 되면서 후배들도 의식하는 점도 팀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문경은-전희철 등 노장들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조커 역할에 충실한 것도 SK에는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불어넣고 있다. “어떤 선수가 더 주목받든 그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일단 팀이 주목받는 것이 중요하다. 팀이 승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전희철의 말이다. 사실 시즌 초반 성적은 믿을 것이 못 된다. 하지만 분명 SK는 지난 5시즌과는 다른 고무적인 스타트를 끊는 데 성공했다. 선수 개개인이 자신을 버리고 하나의 팀으로 뭉친 결과물이다. 최근 3경기도 모두 3점차 이내 접전 또는 3쿼터까지 뒤지던 경기를 뒤집은 승리였다. 경기 막판만 되면 허둥지둥 대다 경기를 그릇치는 SK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어졌다. 물론 외국인선수 래리 스미스와 트래비스 개리슨의 허술한 보드장악력에 따른 높이의 부재와 완전치 않은 수비조직력이 과제로 남아있지만, SK의 환골탈태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이미 충분해졌다. 김태술-김진 감독-방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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