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한국 타자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SK 신인 투수 김광현(19)의 말이다. 시즌 초반이었다면 무례하고 예의없는 기고만장한 신인의 치기로 치부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한국시리즈를 계기로 ‘큰 투수’가 된 김광현은 결국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에서도 일을 냈다. 지난 8일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 챔피언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코나미컵 예선 첫 경기에 선발 등판, 6⅔이닝 3피안타 3볼넷 5탈삼진 1실점으로 역투하며 선발승을 따낸 것이다. 한국시리즈에 이은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투구 패턴은 조금 달랐다. ‘투수 리드의 달인’ 박경완의 사인에 따라 김광현의 투구 패턴은 한국시리즈 때와는 또 달라져 있었다. ▲ 정통파와 기교파 사이 지난 10월26일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 김광현은 전형적인 파워피처였다. 2번 타자 김현수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을 때 구속이 시속 151km였다. 경기 초반부터 위력적인 직구로 승부했다. 이날 8회 1아웃까지 105개의 공을 던진 김광현은 145km 이상 강속구가 무려 39개였다. 최고 구속은 151km였으며 150km대 공도 7개나 달했다. 탈삼진 9개 가운데 6개를 강속구로 잡아냈다. 김광현에게 삼진을 두 차례나 빼앗긴 두산 김현수는 김광현에 대해 “무슨 아령을 던지는 것 같았다”고 말할 정도로 볼 끝에 힘이 넘치고 위력적이었다. 그러나 주니치전에서는 한국시리즈 때처럼 강속구가 많지는 않았다. 최고 구속은 148km를 찍었지만 145km 이상 강속구는 단 2개밖에 없었다. 140km대로 범위를 좁혀도 22개에 불과했다. 145km 강속구 비율이 무려 37.1%였던 한국시리즈 4차전과 달리 주니치전에서는 140km 이상 빠른 공의 비율이 22.4%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삼진 5개와 함께 안타는 3개만 허용해 투구 결과만을 놓고 볼 때에는 파워피처나 다름없었다. 볼 끝의 힘이 매우 좋은 것도 컸지만 박경완의 변화무쌍하고 노련한 투수 리드와 김광현의 로케이션이 효과적으로 먹혔다는 분석이다. 가장 돋보인 것은 역시 직구와 변화구의 적절한 배분이었다. 이날 김광현의 직구와 변화구 비율은 6대4였다. 변화구 비율이 생각보다 많았다. 101·104·106km 등 100km대 슬로커브도 3개나 던졌다. 1회말 1사 1·3루 위기에서 주니치 4번 나카무라 노리히로를 상대로 1~3구를 직구로 승부하다 4~6구는 모두 변화구로 바꿔 던져 구속의 가감 효과를 늘렸다. 결국 나카무라를 유격수 쪽 병살타로 처리하며 1회말 위기를 잘 넘겼다. 2회말에는 5번 이병규를 직구 4개로 스탠딩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7번 다니시게 모토노부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을 때에도 2구 연속 직구 승부 이후 포크볼처럼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유도해냈다. 1회말 좌전 2루타를 허용한 1번 아라키 마사히로를 3회말에는 직구 4개로 삼진 처리한 것도 백미였다. 모두 상하 높낮이와 좌우 코너워크를 제대로 활용한 삼진들이었다. 특히 몸쪽 코스를 찌르는 직구가 위력적이었다. 정통파는 물론 기교파까지 넘나든 변화무쌍한 피칭이었다. ▲ 위기 관리 능력도 향상 주니치전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강속구 비율이 줄어든 것만이 아니었다. 한국시리즈 4차전 때는 6회 1사까지 노히트노런으로 내달릴 정도로 이렇다 할 위기를 맞지 않았다. 그러나 주니치전에서는 2·3·6회말을 삼자범퇴로 처리했지만 나머지 이닝에는 매번 주자를 출루시키며 적잖은 출루와 득점권 상황을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김광현은 그동안 선보이지 못한 위기 관리 능력까지 과시했다. 안정된 수비를 자랑하는 수비수들과 박경완의 리드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고무적인 대목이다. 김광현은 1회말부터 위기를 맞았다. 1회말 선두타자 아라키에게 좌익선상 2루타를 맞으며 무사 2루로 경기를 시작했다. 2번 이바타 히로카즈 타석에서는 와일드피칭으로 아라키의 3루 진루까지 허용했다. 시작부터 무사 3루 위기가 겹쳤고 3번 모리노 마사히코에게는 스트레이트 볼넷까지 내줬다. 하지만 낙차 큰 커브로 내야땅볼을 유도해내며 위기를 슬기롭게 넘겼다. 고비였던 1회말을 성공적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1-0 리드를 안고 맞은 4회말 위기도 슬기롭게 넘겼다. 4회말 선두타자 이바타에게 좌전안타를 맞고 곧바로 도루까지 허용한 김광현은 3번 모리노를 3루 내야플라이로 처리했으나 4번 나카무라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며 주자를 늘렸다. 하지만 5번 이병규를 120km 커브로 유격수 땅볼, 6번 아라이 료타에게 이날 경기 최고 시속 148km로 윽박지르며 역시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는 능글맞음을 보였다. 김광현은 주니치의 득점권 상황에서 9타자를 맞아 볼넷 2개만을 허용했다. 안타는 하나도 맞지 않았다. 경기 전체로 넓혀도 연속 안타는 하나도 없었다. 산발 3안타로 주니치 타선을 묵었다. 힘을 넣고 빼는 완급의 조절이 훌륭했으며 위기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나가는 배짱도 돋보였다. 고교시절부터 큰 경기를 많이 치러본 ‘큰 투수’다운 면모였다. 일본 챔피언 주니치를 상대로도 주눅들지 않으며 위기 관리 능력까지 과시한 김광현. 일본 열도에서도 ‘큰 투수’가 탄생했음을 알렸다.
